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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식(業識)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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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50) ]
20250428
오십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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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梵魚寺設禪社契誼序
釋迦氏以正法眼藏涅槃妙心付囑摩訶迦葉轉轉相授其道直截其原妙逈絕之理如百僚阿衡之於天子不可以三乘敎法比擬髣髴具在方策校量功理一似仙丹刀圭而起死若能實參實悟一念回光與古佛齊肩何用三秪枉功縱未有實溷沌於昏掉亦非他因果行門所到佛說一代藏教有半而未圓者權而未實者故佛自說依了義不依不了義其半也權也不可以依之也其理彰著而今觀修行者舉皆迷牛滯權誤了一生悲夫昔姑射仙人其心凝而萬物不疵淮南王安登仙而鷄犬乘雲鷄犬被其道化况其最靈於物者乎仙亦能使物不疵况佛無上正道乎故云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學而未成猶蓋人天之福故設同參契誼使共結最上因緣同臻壽域夫壽域者何也青山嶷嶷碧海蒼蒼片雲展張松聲蕭瑟無物非自己常光匝天匝地亘古亘今雖妙用恒沙能堅固如金剛故古德云般若上無虛棄之工夫若有成佛願者應發深心大願也哉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범어사에 선원을 시설한 계의서(契誼序)
석가세존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부족하시어 차례로 서로 전하였으니 그 도가 바로 끊고 원래 묘하여 아득한 이치가 저 백관의 대신과 만승의 천자와 같아서 가히 삼승의 교법으로 비유할 수 없으나 방편과 공력의 묘리가 갖추어 있음이라 마치 신선의 환단을 쓰면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과 같도다.
만일 능히 착실하게 참구하여 착실하게 깨달아 한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니 어찌 삼아승지겁의 공력을 허비하리오.
비록 착실하게 참구하지 못하여 혼침과 망상에 혼돈되더라도 또한 저 인과의 행문에 들어감이 아니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대장교(一代藏敎) 가운데 절반가량 원만 하지 못한 것은 방편설로서 실상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시니 그 반이란 방편설이라 의지할 것이 못되니 그 이치가 명백하도다.
이제 수행자들을 보건대 모두가 방편설에 미혹되어 일생을 그르치니 슬프다 예전에 고야선인(姑射仙人)이 "그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함에 만물이 병들지 않았다." 하였고 회남왕안(淮南王安) 이 신선이 됨에 닭과 개가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하니 닭과 개도 그 도의 교화를 입었거든 하물며 만물중에 가장 신령한 자일까보 냐.
신선도 또한 물건으로 병들지 않게 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무상정도(無上正道)일까보냐.
그러므로 이르기를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를 이룰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사람과 하늘의 복 보다 낫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참계를 베풀어서 함께 최상의 인연을 맺어 불생 불멸의 나라에 이르게 하노라.
무릇 불생 불멸의 나라라 함은 어떠한 곳인가?
"청산은 높이 솟고 벽해는 창창하며 조각구름은 떠있고 솔바람 은 소슬하며 어느것이 자기의 광명 아님이 없어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둘리었으며 예와 이제를 꿰뚫었도다. 비록 묘용(妙用)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으나 그 견고함도 능히 금강과 같도다. "하였다.
그래서 고덕이 이르기를 "반야(般若)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성불의 원력이 있는 이는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큰 원력을 발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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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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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내용이 좀 긴데요.^^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위에 내용 중 제목에서 梵魚寺設禪社契誼序(범어사설선사계의서)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요.
이 제목의 전체 내용을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해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불교 내에서만 통용되는 글자이거나 아니면 경허스님이 직접 뜻에 맞춰서 만든 글자일 수도 있겠는데요.
한문은 뜻글자라 뜻에 맞게 글자끼리 짜 맞추는 것이지요.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는 [범어사에 선원을 시설한 계의서(契誼序)]라고 해석을 하셨는데요.
이 말의 뜻은
범어사에 선원을 설립했는데 선원에서 옳은 질서를 새기라는 뜻이 담겨있답니다.
쉽게 말해 선원에서 꼭 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일들을 나열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범어사는 선원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만큼 경허스님 이전에는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없었다는 것이고요.
지금 스님들도 다시 경허스님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아무튼 범어사에 처음으로 선원이 세워져서 경허스님이 범어사 선원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은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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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세존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부족하시어 차례로 서로 전하였으니]
(이 말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대표적으로 묘하게 일어나는 두 가지의 현상들을 나열한 것인데요.
하나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이고 또 하나는 열반묘심(涅槃妙心)랍니다.
정법안장이란 말 그대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지혜의 눈이 열린다는 뜻이고,
열반묘심이란 말 그대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묘하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없는 쉽게 말해 마음이 엄청 고요해진다는 뜻인데요.
경허선사는 지금 범어사 선원에서는 앞으로 열심히 수행 정진을 해서 모두 깨닫고 증득들을 해서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을 증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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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가 바로 끊고 원래 묘하여 아득한 이치가 저 백관의 대신과 만승의 천자와 같아서 가히 삼승의 교법으로 비유할 수 없으나 방편과 공력의 묘리가 갖추어 있음이라 마치 신선의 환단(신선이 만든 약)을 쓰면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과 같도다.]
(이 말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묘하여 아득한 이치가" 즉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가 마치 저 백관의 대신과 만승의 천자와 같다는 뜻이고
"가히 삼승의 교법으로 비유할 수 없으나" 즉 성문, 연각, 보살승 같은 것으로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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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과 공력의 묘리가 갖추어 있음이라 마치 신선의 환단을 쓰면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과 같도다.]
(이 말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지혜가 드러나서 방편과 공력의 묘리(묘한이치)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마치 신선의 환단(신선이 만든 약)을 쓰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과 같다는 비유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이를 살린다는 뜻은 일제로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 아니라 어리석음에서 눈을 뜬다는 뜻이고요.)
그래서 우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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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능히 착실하게 참구하여 착실하게 깨달아 한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니 어찌 삼아승지겁의 공력을 허비하리오.]
(이 말은 우리들도 한 생각 돌이켜서 열심히 참구하면 누구나 깨달아 부처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다는 뜻이고 이것을 위해 어찌 삼아승지겁 즉 한량없는 무량한 시간을 허비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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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착실하게 참구하지 못하여 혼침과 망상에 혼돈되더라도 또한 저 인과의 행문에 들어감이 아니로다.]
(이 말은 열심히 참구하다가 비록 미혹해서 혼침과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현 생이나 다음 생에 인과에 빠지지는 않는다는다 뜻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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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설하신 일대장교(一代藏敎) 가운데 절반가량 원만 하지 못한 것은 방편설로서 실상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시니 그 반이란 방편설이라 의지할 것이 못되니 그 이치가 명백하도다.]
(이 말은 쉽게 말해 지금 어른들처럼 어디서 이상한 짝퉁 도인들을 만나 이것저것 어중이떠중이 가르침으로 절반만 알고 떠들어대는 방편 설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경(了義經) 즉 불법의 이치를 완전하게 설법한 경전에 의지해서 정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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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행자들을 보건대 모두가 방편설에 미혹되어 일생을 그르치니 슬프다 예전에 고야선인(姑射仙人)이 "그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함에 만물이 병들지 않았다." 하였고 회남왕안(淮南王安) 이 신선이 됨에 닭과 개가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하니 닭과 개도 그 도의 교화를 입었거든 하물며 만물중에 가장 신령한 자일까보 냐. 신선도 또한 물건으로 병들지 않게 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무상정도(無上正道)일까보냐.]
(이 내용도 위와 같은 내용인데요.
쉽게 말하면 개나 닭대가리들도 깨닫고 증득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선들도 한 물건(본성)으로 병들지 않게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뜻이고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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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르기를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를 이룰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사람과 하늘의 복 보다 낫다. "고 하였다.]
(이 말은 비록 이번 생에 깨닫고 증득은 못했더라도 불법을 이룰 인연 만이라도 맺어둔다면 오히려 사람이나 하늘의 복보다는 훨씬 낫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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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동참계를 베풀어서 함께 최상의 인연을 맺어 불생 불멸의 나라에 이르게 하노라.]
(그러므로 동참계(同參契) 즉 수행을 하는 계를 만들어서 최상의 인연을 맺어 불생 불멸의 나라에 이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수행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연을 맺어 정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
[무릇 불생 불멸의 나라라 함은 어떠한 곳인가?
"청산은 높이 솟고 벽해는 창창하며 조각구름은 떠있고 솔바람 은 소슬하며 어느것이 자기의 광명 아님이 없어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둘리었으며 예와 이제를 꿰뚫었도다. 비록 묘용(妙用)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으나 그 견고함도 능히 금강과 같도다. "하였다.
그래서 고덕이 이르기를 "반야(般若)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성불의 원력이 있는 이는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큰 원력을 발할지니라.]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열심히 정진을 해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위와 같이 될 수 있다는 뜻이고 비록 묘용(妙用)이 즉 비록 신묘한 작용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으나 그 견고함도 능히 금강(다이아몬드)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반야(般若)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라는 뜻은 알아차림 수행을 개을리하지 않으면 지혜의 힘은 조금도 헛되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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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
오늘 내용 중에서 일반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시기 힘든 그런 내용들이 있으실 건데요.
예를 들면
정법안장(正法眼藏) 이니 열반묘십(涅槃妙心)이니 하는 문구나
한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니 어찌 삼아승지겁의 공력을 허비하리오.
라는 문구들이나,
묘용(妙用) 과 반야(般若) 와 같은 단어들이 그것인데요.
이러한 문구들은 깨닫고 증득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그런 문구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돌이키라는 말은 수행자들에게는 엄청 중요한 내용이고요.
뭐든지 자기가 직접 보고 체험하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라 그렇습니다.
오늘은 말이 나온 김에 지혜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일단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마음이 엄청 평온해지고 고요해진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들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열반묘십(涅槃妙心)이라는 것이고요.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불생불멸"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소멸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답니다.
그러나 도인들 끼리는 한 끗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본성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수 박에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열리는 것이 정법안장(正法眼藏)이나 반야(般若) 같은 것들인데요.
이것을 종교식 표현으로 하면 지혜(智慧/知慧)라고 한답니다.
이것은 지혜를 뜻한답니다.
그리고 이 지혜라는 단어는 불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다른 종교에서는 이것을 계시(啓示)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한답니다.
아무튼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문득문득 지혜의 눈이 열리게 되는데요.
그래서 지혜광불(智慧光佛)이라고도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 지혜는 경험에서 오는 거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들 본성에는 수십수백수천 억겁 동안 쌓여 있는 경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깨닫고서 쓰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종류도 아주 다양하답니다.
어떤 도인들은 전생을 아주 잘 알아차리는 지혜도 있고,
또 어떤 도인들은 현생을 아주 잘 알아차리는 지혜도 있고,
또 어떤 도인들은 미래를 아주 잘 알아차리는 지혜도 있고,
또 어떤 도인들은 지장보살처럼 법을 아주 잘 알아차리고 전하는 지혜도 있고,
또 어떤 도인들은 약사 보살처럼 몸의 병을 아주 잘 알아차리는 지혜도 있고,
이 외에도 각양각색이랍니다.
부처님 같은 경우는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잘 알아차리는 지혜이고요.
병원으로 비유하면 부처님 같은 경우는 종합병원으로 비유를 할 수가 있고 일반도인들은 내과나 안과와 같은 식으로 단과병원으로 비유를 할 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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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지식(知識)은 부모나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에게 배워서 익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지혜는 마음(불성/본성/성령)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을 쓰는 것이라면 지식은 머리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을 기억해 내서 쓰는 것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이 말은 지식은 몸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하는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불성/본성/성령)의 작용들을 업식(業識)이라 한답니다.
이 말은 마음(불성/본성/성령)은 이미 지난 과거 생들의 일(業)들을 알고(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업식이 일반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답니다.
그것도 태어나서 대게는 4세까지가 그러하고 길게는 14세 15세까지도 지속되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예를 들면 피아노나 외국어나 수학이나 같은 것들을 단 한 번도 안 배운 어린아이가 어른들 보다 더 잘하는 경우가 그렇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거나 아주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본성)에서 지혜가 일어나서 살아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들도 모르게 본성의 작용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은 비록 깨닫지는 못했어도 누구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요.
그래서 경허스님도 오늘
[비록 착실하게 참구하지 못하여 혼침과 망상에 혼돈되더라도 또한 저 인과의 행문에 들어감이 아니로다.]
라고 하신 거랍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시대라 해도 본성이 작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본성은 이미 수십수백수천 억겁의 과거 생을 통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과학들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문사과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말입니다.
오늘 경허스님 말씀도 이런 이야기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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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랜만에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하고 끝낼까요?^^
예전에도 가끔 했었던 내용인데요.
저에 대한 업식 이야기인데요.
여러분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아주 간단하게 요점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업식들이 있을 것인데요.
그리고 깨닫고 보면 이러한 것들은 누구나 알 수가 있답니다.(진실)
제 경우는 그때는 몰랐지만 어려서부터 아주 진하게 한 경우라 여러분들이 믿지 못할 그런 황당한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여러번 있었는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머리에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순간적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그런 것이라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마음에서 알아차리는 그런 것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예를 들면 마치 예전에 목수였던 사람이라면 지금도 손에 망치와 못만 쥐어주면 아주 자연스럽고 유능하게 못을 박듯이
신기하게도 불교 용어로 하면 아주 묘하게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린아이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굳이 내가 노력을 안 해도 예전에 늘 해왔던 것처럼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지혜에 속한 다는 것이고 업식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생부터 이미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고 하고 있었던 일들이라 그렇습니다.
제 경우는 수행자의 길과 법에 대한 업식이 있었다고 보시면 되고 여러분들도 각자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에 관심을 두시는 것이고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절대로 쉽게 보지를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 중에는 분명히 엄청나게 큰 도인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도 어렸을 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깨닫고 보니까 그때 그런 일들이 모두 다 이 법과 연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런 저의 이야기인데요.
제 경우는 특이하게도 네 살 때 일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 경우는 어렸을 때 제가 감당하기 힘든 그런 충격적인 일들이 제게는 많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이 법을 깨닫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인데요.
아무튼 그래서 저 때문에 부모님들은 파주로 이사를 하셨던 것인데요.
왜냐하면 부모님들은 재산보다는 제가 더 중요했으니까요.
아무튼 그런 일들이 제게는 많이 있었는데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말문이 트이면서 막 이상한 소리들도 많이 했었다고 하고요.
다들 그렇잖아요?
아무리 오래된 일들도 그 당시에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것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제 경우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친인척이나 집안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부모님의 일들이라 여기서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제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그런 환경에서 영등포 대방동에서 태어난 경우인데요.
제가 네 살 때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잊을 수 없는 일이 저에게는 있었답니다.
하루는 제가 네 살 때 한 할아버지를 보고 크게 놀라서 거의 죽다가 살아난 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 할아버지 때문에 제가 너무 놀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눈이 돌아가서 죽어가고 있었으니?
어머니를 비롯해 동내 아줌마들이 저를 들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 다 돌아다녀 봐도 증상을 모르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제가 죽는 줄 알고 병원에서 울고불고하니까 병원에 왔던 한 할머니가 유명한 침쟁이 할아버지 집에 가보라고 해서
제가 거기서 대침을 맞고 "헉!" 하면서 숨통이 트이는 바람에 제가 다시 살아났다고 어머니가 두고두고 저에게 들려주셨던 그런 이야기가 저에게는 있는데요.
지금도 저는 그때 그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아무튼 그날 저는 온몸 전체가 하얗고 수염이 길게 난 한 할아버지가 저를 보고 있기에 저도 같이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할아버지가 저를 보고 웃기에 저는 기겁을 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그 뒤로 입에 거품을 물면서 눈이 돌아가서 숨을 "컥"컥" 대고 있으니까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그날 이후로 저는 그 할아버지의 얼굴과 모습이 지금까지 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경우였고요.
그리고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항상 제 오른쪽 옆구리 근처에는 저만 알고 있는 그런 무언가가 항상 내 옆에서 따라다니는 그런 인기척을 저는 늘 느끼면서 자랐답니다.
어쩔 때는 그 존재에게 내가 부탁을 하면 들어준 적도 많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십 대에 접어들면서는 없어졌답니다.
그리고 제가 오십이 될 무렵 비자 때문에 한국에 나와서 서초동에 있는 대성사라는 절에 일이 있어서 갔는데요.
이 절은 제가 사채업과 야매로 변호사 사무원증을 임대해서 변호사업을 했을 때 서초동에 법원이 있었기 때문에 심 뭐시기라는 사무장 친구와 여러 번 갔었던 절이지만 법당 안에는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날은 일이 있어서 갔었기 때문에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당이라는 곳을 들어갔고
그곳에서 제가 네 살 때 보았던 그 할아버지가 나한으로 있기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앉아서 그 나한과 한참을 대면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할아버지 왜 거기 계세요?"
하면서 한참을 그 나한을 보고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요.
그날도 얼마나 놀랐는지 8월 여름에 엄청 더운 날씨에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법당 안에서 오돌오돌 떨 정도로 너무 춥기에 법당에서 나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렇지 않았겠어요?
제가 네 살 때 보았던 똑같이 생긴 그 할아버지가 대성사 법당에서 떡하니 그때처럼 나를 보고 웃고 있었으니 저로서는 온몸이 오싹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앉았으니 저로서는 신기할 수 박에요?
그날 찍은 그 나한 사진도 지금 제 앞에 있고요.
아무튼 그날 저는 산을 내려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내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에 있는 한 한인 교회 도서관에서 법화경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법화경 내용이 꼭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책과 비슷하기에 친근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2년 조금 넘게 단 하루도 안 거르고 한 번에서 한번 반가량을 매일 보고 듣고 풀이를 하면서 보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대략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법화경을 그때 아무리 못해도 칠백 번 이상은 보고 들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뒤로 나도 염불이나 하나 외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검색창을 뒤져보니까
반야심경이 제일로 짧기에 그것을 골라서 외우고 해석해 가면서 (색불이공공불이색) 부분을 따라 하다가 밑창이 빠지는 체험을 아주 진하게 하고
갑자기 마음이 엄청 고요하기에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 뒤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스님들을 찾아다녔던 것인데요.
그 이유는 다시 예전 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만큼 제 경우는 불교에 불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법을 혼자서 경전을 보면서 공부를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깨닫게 되면 경전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모든 것들이 열리고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전혀 그렇지가 않답니다.
이 내용은 부처님과 사리불과의 대화에서도 나오는데요.
아무튼 아무리 깨달았어도 완전한 부처가 되기 이전까지는 부처님 같은 안내자가 있어야 후 공부가 가능한 것이랍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 뒤로 그날도 비자 때문에 한국에 나와서 불교 방송을 보고 있는데 재가자들에게 법문을 하고 있는 스님이 계시기에
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남양주에 있는 선재사에 청운 스님을 찾아뵙고
"아, 이것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았는데요.
그리고 팔 개월 후쯤에 오산에 있는 일물선원이라는 곳에서 구담 스님을 처음으로 뵙고 그 뒤로 일 년 정도 수행자가 해야 할 일들을 많이 귀담아듣고 지금도 저 혼자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 두 분이 제 경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눠본 경우였답니다.
그래봐야 불과 5~6년 전 일이고요.
물론 그 뒤로 지금은 많은 스님들과 교류를 하고는 있지만 초기에는 불교 쪽으로는 너무 아는 사람들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 법을 깨닫고 보니까 그때 그 할아버지나 그동안 제게 있었던 수많은 인연들이 좋은 인연이나 나쁜 인연이나 모두가 이 법을 깨닫고 증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나도 모르게 참회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인데요.
이 외에도 제 경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그렇고, 결혼을 할 때도 그렇고, 우연히 박수무당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문이 트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요.
지면이 부족해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두 지혜에 해당된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세상을 보면
모르고 살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들이
깨닫고서 알고 세상을 보게 되면
언행 하나하나가 엄청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워진답니다.
알면 알수록 더 조심하게 되고 더 신중하게 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해서 업식에 또다시 얽매이게 되면 그 업식을 빠져나오는데 또 수십수백억 겁에 걸린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과거 생에는 그중에 하나였고요.
제가 지금 어른들에게 천도재 같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기껏해야 여기서 살아갈 시간은 고작해야 20년 남짓 한 시간인데 그 시간을 위해 수십수백 억겁 이상의 행복과 평안을 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경허스님도 지금 동참계를 베풀어서 함께 최상의 인연을 맺어 불생 불멸의 나라에 이르게 하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경허스님도 지금 비록 부처를 이룰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사람과 하늘의 복 보다 낫다 하신 거랍니다.
이 말을 그대로 요즘 어른들 이야기로 옮기면 비록 아직은 깨닫지 못해서 그런 짓들을 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일들이 본인들에게 얼마나 큰 업식으로 남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너의 과거 생을 알고 싶으면 너의 현재 생을 보면 알 수 있다고요.
이 말의 뜻은 현재 너의 생을 보면 너의 미래 생도 알 수가 있다는 얘기와 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깨닫고서 이 말씀을 되새겨보면 백번 천 번 맞는 말씀이랍니다.
그래서 제 경우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랍니다.
제 경우도 지금 이 법과 상관없는 사람들과는 철저하게 인연들을 끊고 있거나 가족이라도 일부러 멀리하고 있는 중인데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쪽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수행자의 길이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냉정하고 냉혹한 길이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 길을 부처님처럼 가족들과 같이는 갈 수는 있어도 따로는 갈 수는 없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나 깨닫게 되면 수행자의 길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하셔야 한답니다.
세상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수행자의 길을 가느냐?
세상에서 적을 두고는 있지만 의식을 세상에 두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마음(본성)에 두고 살아가느냐?의 차이랍니다.
가끔 말씀드립니다만 저도 오죽했으면 제 카톡 머리글자에도 [現中百尺竿頭進一步(精進)]이라고 적어 놓고 이 길을 가겠습니까?
그만큼 저도 이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출가를 하셨다는 분들이 수행을 하지 않고 있다니요?
이것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랍니다.
스님들이 이래서는 안 된답니다.
어제 27일에는 박헌영 아들이라는 분이 주지로 있는 절과 얼마 전에 자승 스님이 불살아 죽은 사찰을 다녀왔는데요.
어찌 된 일인지 두 곳 다 법회가 없더라고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는 사찰에서는 법문 대신 천도재를 지내고 있었고요?
이래서는 안 된답니다.
지금 한국불교는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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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지금 문명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지금 이 문명이 끝나면 곧 생명이 하나도 없는 암혹기로 접어들어서 세월이 수십억 년을 또 지나야 다시 이 법을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아무쪼록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도 오늘 경허스님 말씀처럼 이쪽으로 발만이라도 담가두시고 죽더라도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허스님 말씀처럼..
[비록 착실하게 참구하지 못하여 혼침과 망상에 혼돈되더라도 또한 저 인과의 행문에 들어감이 아니로다.]
할 수가 있게 된답니다.(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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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 한 번 진심내면.. 경허선사
https://youtube.com/shorts/iKJLY2fs5dw?si=kRMn59ToLCEpgs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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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꼭 성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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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말씀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
늘 건강관리 잘하시고 늘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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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셔요_()_
감사합니다. 스님..😁🙏🏻
늘 건강관리 잘하시고 늘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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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
늘 건강관리 잘하시고 늘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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