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라종억)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6·25전쟁이 나자 어머니는 혼자서 우리 6남매를 데리고 피란하셨다. 외가 친척 집을 찾아 경남 하동 악양면 첩첩산중 두메로 향했다.
언제 남편을 다시 보려나? 피란 중 어머니는 6남매를 보살피고 생활 전선에 몰두하시느라 험난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나는 소변이 마려워 잠결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툇마루 끝에 앉아 꺼져가는 모기 쑥불을 보살피며 앞산에 걸려 있는 초승달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계셨다. 가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으시며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고즈넉이 앉아 계셨다.
한영 사전을 찾아보면 '고즈넉'은 'quietly(조용히)' 'gently(부드럽게)' 등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고즈넉'이라는 말의 깊고 함축된 의미를 나타내긴 어렵다. '고즈넉'은 단지 조용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아니다. 슬픔과 한, 세상에 대한 응시와 깊은 철학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숱한 시인이 그래서 이 말을 사랑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시인 김현승은 '나는 차를 앞에 놓고/ 고즈넉한 저녁에 호올로 마신다'('고독 이후')고 썼다. 박용래는 '고즈넉한 새벽/ 첫 번 닭이 울고/ 먼동이 트일 때'('계룡산')라 했고, 최승자는 '한세상 아득히 떨어져/ 고즈넉이 1세기를 울리고 있는/ 응답받지 못할 전화 벨소리'('수신인은 이미')라고 했다. 나태주는 '가을날 오후/ 고즈넉이 햇살을 받고 있는'('만약에 말야')이라 했고, 김남조는 '따스한 잠자리'/ 고즈넉한 탁상'('좋은 것')이라고 썼다.
고즈넉이란 말은 신비한 마술의 언어처럼 고요하고 아득한 풍경을 우리 마음으 로 전해준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드보르자크 신세계교향곡 2악장 라르고에서 흐르는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 같다. 고즈넉이란 말은 우리를 깊고 고요한 세계로 침잠하게 한다.
시끄러운 세상이다. 고즈넉이 생각을 추스르기보다 악다구니 쓰며 목소리를 높여야 똑똑한 줄 안다. 나도 반성한다. 70년 전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전쟁 중에도 고즈넉이 저녁 하늘을 바라보셨는데….
첫댓글 하동 악양,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 생각이 난다. 악양 벌판, 부부소나무, 최참판댁 마당에서 건네다 뵈던 지리산 줄기. 언젠가 시각장애인협회와 문학기행 갔을 때 나의 짝꿍이셨던 다정하고 따뜻하셨던 노부부 두 분 생각이 난다. 눈앞에 보이는, 젊었을 적 함께 가셨던 지리산이 저 건너에 있다고, 남편 분께 설명하시던 아내 분. 아름다운 노부부를 잊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