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7.4.18.수
덕수장씨(德水張氏)
시조 장백창(張伯昌)은 아랍(이슬람)계 사람으로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라는 벼슬을 지냈다. 일명 장순용(張舜龍.시호는 공숙)으로 불리는 그는 1275년(고려 충렬왕 1년) 충렬왕비인 제국공주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했다.
그 뒤 여러 벼슬을 지내고 덕수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덕수를 본관으로 했다. 덕수는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지명이다.
시조의 맏아들 양(良)은 판사(判事)를 지냈으며, 둘째 아들 운(芸)은 신호위대장군을 역임했다. 시조의 손자 우(羽)는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형조판서 운익(雲翼)은 공조좌랑, 장령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운익의 아들 장유는 조선 중엽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조 후기 실학의 한 갈래인 양명학의 대가다. 천문. 지리. 의술. 병학 등 다방면에 두루 박식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최초의 애연가로도 전한다. 왕 앞에서도 장죽을 물고 다니며 담배를 즐겼다고 자신의 수필집 "계곡만필(谿谷漫筆)"에 적고 있다.
조선의 무신으로 이름난 정(珽)은 8세손으로 무예에 뛰어나 성종 때 선전관에 뽑혔다. 1504년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장록수가 부당하게 차지한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주고 폐단을 제거했으나 이로 인해 파직된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송화리. 대사리. 석근리,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전남 강진군 성전면, 경북 예천군 감천면, 전남 보성군 회천면, 경북 영주시가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21,006명이 있다. 주요파는 ▲참판공파 ▲수사공파 ▲소감공파 ▲하원군파 ▲정랑공파 ▲한림공파 ▲참의공파 ▲영공파 ▲유정공파 ▲좌랑공파 ▲도사공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