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가 궁금하고, 여자는 남자가 궁금하다. 연애란 건 어쩌면 이 못 말리는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 사람의 이름이 궁금하고, 다음엔 밥은 먹었는지가 궁금하고, 점점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고, 현재가 궁금하고, 미래가 궁금해진다. 모기에 잘 물리는 편인지 궁금해서 여름까지 못 헤어지겠고, 자는 모습이 궁금해서 잘 수도 있고, 늙어가는 모습이 궁금해서 결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배고프다”는 단순한 말 조차 580가지 함의가 응축된 빙산의 일각으로 CSI도 분석 못할, FBI도 풀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린다. 그러게. 한 때 이선희 언니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냐며,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하다며, 목에 핏줄을 세운 채 열창하지 않았던가.
지난 달 ‘필름포럼’에서 상영한 (최근에는 이스트빌리지에 위치한 ‘씨네마 빌리지’ 극장으로 옮겨서 상영 중이다) 장 뤽 고다르의 <남성/ 여성>은 제목과는 달리 남성, 여성에 대한 ‘호기심 천국’ 같은 명쾌한 답을 내놓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코카콜라와 막스의 아이들’이라고 명명한 60년대 중반의 젊은이들과 그 시대의 파편을 둘러싼 경쾌한 콜라주다. 산아제한. 디스코텍. 베트남 전쟁. 쥬크박스. 코카콜라. 밥 딜런. 막스. 그리고 남성과 여성.
“우리가 ‘사고’를 지배 할 수 있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대신 우리의 ‘감정’을 콘트롤할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거지.”라고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배우의 입을 빌어 말한다. 어떤 영화는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고’가 범람하고, 새로운 이론이 인정 받고, 새로운 문화로 전환이 되면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 또한 또 다른 심판대에 올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스와 코카콜라의 시대’에 살든, ‘부시와 ‘레드 불’ (박카스 맛이 나는 미국자양음료)의 시대’에 살든 그런 여러 가지 심판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 연애 이야기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시대를 통과해서 여전히 추앙받는 이유도 바로 인간의 가장 통속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에 대한 진지한 접근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장 유머러스 한 감독 푸피 아바티의 연애 이야기
BAM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3월 20일까지 열렸던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들 : 푸피 아바티>는 이탈리아 통속극의 대가 푸피 아바티 감독의 특별전이었다. ‘이탈리아의 트뤼포’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이 노장은 사실 베르톨루치나 안토니오니에 비하면 늘 저평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격변의 시대 속에서 그의 눈은 정치나 사회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나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운명,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유머에 더 집중해왔으니까. 그리고 한 시대는 그런 시선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으로, 혹은 비겁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특별전에 맞추어 이탈리아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그를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 한 감독 중 하나로 뽑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2003년 작 <마음은 어디에나>(Incantato)의 상영이 끝나고 관객 앞으로 나선 푸피 아바티는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통역하는 이를 제쳐두고 극장에 모인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대단한 쇼맨쉽을 펼쳤다. “나, 51년 동안 같은 여자랑 살아. 왜! 도대체 왜, 왜, 왜! (갑자기 통역자를 향해 침을 튀겨가며 울부짖듯 소리친다) 왜냐! 난 아직도 이 여자를 잘 모르겠어, 이 여자 영화도 안 좋아해요, 맨날 화만 내요. 여전히 내 마누라, 어떤 여자인지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어. 그러니까 못 헤어져.”
이 호탕하고 유쾌한 할아버지의 수다 속에 싱거운 질문에 현답이, 무거운 질문에 싱거운 대답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 영화, 궁금해? 나한테 물어봐도 나도 잘 몰라. 내가 좀 묻고 싶어.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사실 진짜 이상한 영화지. (웃음) 나 젊을 때, 정말, 수줍음 많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신들 본, 이 영화 이야기, 사실 내 이야기야. 소극적이던 남자, 한번 사랑에 빠져, 너무 강해, 스트롱~ 러브~. 그리고 바뀌는 거야. 연애는 그런 거거든. 나는 사랑이야기, 좋아요. 여자, 아직도 너무 궁금해.” 하하하, 저렇게 나이가 들수록 수도승이 아니라 탕아가 되어갈 수 있다면 늙는 것도 꽤나 재미난 일일 테다. 트로트 같은 통속극, 얼빠진 사랑 이야기인들 어떠랴? 저 궁금증이 식지 않는 한 그는 언제나 청년일 텐데.
남자와 여자, 그 뛰는 심장 한가운데 영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허진호 감독이 생각났다. 그는 이제 “시대가 강요하는 ‘쿨’이라는 단어 대신 ‘신파’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데뷔작부터 멀찌감치 죽음을 관조하던 이 애늙은이 같던 감독이 비로소 “울고 싶으면 울고 가슴이 아프면 아픈 대로 표출하는 그런 사랑을 그릴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잘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새 영화가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여전히 고다르도, 홍상수도 모르겠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지, 남자가 여자의 미래인지, 여자는 여자다라고 말할 수도, 남자는 남자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알겠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에 영화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뛰는 심장 한가운데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걸. 이성보다 감성의 뜻대로 계속 살아나갈 에너지를 언제라도 가질 수 있다면, 가슴 후벼 파는 트로트 가사가 몇 줄 쯤 나오는 중년을 살아낼 수 있다면, 어느 날 나 역시 이마무라 쇼헤이처럼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에 몸을 누이는 노년을 맞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 출처 씨네21, 글 사진 : 백은하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