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라도 깨치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사용해 왔다.
누군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연구했고,
누군가는 땅을 바라보며 농사를 연구했으며,
누군가는 사람을 연구하고 삶을 연구했다.
그 많은 연구들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였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왜 그러한가?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는 양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먼 우주에서 날아온 빛을 연구하다 보니
각각의
빛은 서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는 고유한 틈과 흔적들이 존재했다.
그 흔적을 통해 인간은 저 별이 수소인지
헬륨인지, 탄소인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 또한 저마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물리학을 오래 연구했고,
어떤 사람은 농사를 오래 지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연구하며 살아왔고,
또 어떤 사람은 세상을 여행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각자 살아온 방향이 다르기에
모두 다른 흔적을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모르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면,
내가 수천 년을 다시 살아가며 배워야 할 것을
상대는 한 시간의 대화로 알려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만함이 아니라 겸손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도
수십 년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일이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연구하고,
한 사람이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후대가 이어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것을 서로 연결하고, 융합하고,
공유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내가 본 환경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철학으로 설명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역사와 인간의 삶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 많은 조각들은 어느 날 하나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왜 들었는지 몰랐던 말도
어느 날 다른 연구를 하다가
퍼즐 한 조각처럼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중첩이다.
중첩은 하나하나를 따로 외우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나온다.
양자역학도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방향을 먼저 제시했고,
후배들이 이어서 연구하며 의미를 만들어갔다.
그 시대에는 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드러난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은 자신이 역사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후대가 돌아보며 말한다.
"아, 그때가 변곡점이었구나."
오늘 우리는 어쩌면
또 하나의 변곡점 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고,
수많은 지식과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수천 년을 살아가며
다시 연구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질문하고, 누구나 공유하고, 누구나 이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해가 일어나면 공유가 생기고,
공유가 생기면 중첩이 일어나며,
중첩이 일어나면 얽힘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누군가는 먼저 보고,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움직인다.
그렇게 인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지금,
이해의 시대를 열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한다.
2026년 6월29일 사회 연구원 김수길
양자역학이라는 단어는 지금 나온것이지만
우리 민족은
이미 수천년전부터 사용한 말이다.
우리라는 단어안에
양자역학의 원리가 다 들어있다.
외아들이면서 우리아들이고
외동딸이면서 우리 딸이다.
나 너 우리이다.
초등학생이 처음 배우는 단어가
양자역학의 원리를 아는 것이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