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故 이충희 시인을 생각하며
임영석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 되는 거다
이충희 시인께서 내게 해 준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살아서는 얼굴
한 번 못 뵈었다. 이 세상 떠나기 전, 요양병원에서 계시다가 집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겠다고 하니, 몰골이 흉하
여 보여주기 싫다시며 극구 삼가셨다. 코로나로 조문마저 안 받겠다
고 하여, 「긴산꼬리풀꽃」 시가 생각나서 꽃바구니 조화를 보냈다. 강
릉과 원주는 두 시간이면 가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 많은 시간 동안
한 번도 못 뵈었는지, 전화로 목소리만 마른번개 소리 듣듯 들으면서
살았다. 시인의 시가 잡초처럼 흔하고 흔한 세상에 난초 같은 시가 아
니더라도, 매화 같은 시가 아니더라도, 쑥부쟁이꽃으로라도 피어야
한다는 말씀, 구절초꽃으로라도 피어야 한다는 말씀, 안개꽃 안개로
라도피어야 한다는 말씀, 내 귀에 못 박히게 해 주셨다. 그래서 아직
도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못 지운다. 시다운 시를 쓰며 살아가기 위해
직장도 때려치우고 백수가 되었는데, 선생님은 되레 나다운 행동이라
며 칭찬을 해 주셨다. 흠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세상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 되는 거다" 이 말씀 한마디, 내게 해 주시고 가셨다. 그래서 선
생님의 전화번호를 못 지운다. 결국 내 두손 두발 꽁꽁 묶어 놓고
달처럼 지구를 돌 듯
詩의 길만 따라 돈다
임영석 1985년 《현대시조》 천료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