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인가 두달인가에 로그인을 다시하라고 한다. 요즈음엔 곧잘 넘어가곤 했는데, 그제부터 도무지 먹히질 않아서 속이 부글거리고 머리는 터질듯 했고,,, 이게 뭐라고,,, 나는 컴맹수준이다. 알고있었던 것도 까마득하고, 알려줘도 금방 잊어버린다. 쉼표와 마침표를 구별 못하고, 영어의 대문자와 소문자도 머리속에서 확고하질 못하다. 내가 컴프터와 함께한지도 13년인가.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였으니까 대충 그렇게 된듯하다. 처음엔 아들이 쓰던 노트북을 주었는데, 주로 사진을 보관하거나 하며 가볍게 사용했는데,,, 복지관에서 컴프터를 조금 배우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는 부분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고, 지금에 와서는 그나마 알았던 부분도 깜깜하다. 조금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어보기도 하지만 실행하기에는 게으름이 너무 깊어서 용단을 내기지 못하고 있다. 게으른데다가 소극적인 내 성격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 말이 쉽지 이대로 살다가 죽는다는 것도 간단한게 아니다. 약을 먹어서 고칠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약으로 고친다면 또 약값이 아깝다고 투덜댈게다! 요즈음 자꾸 속이 메스껍다. 머리도 어찔어찔하다. 이런다고 죽는 것도 아닐게다. 그냥 불편할뿐이다. 병원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참, 큰병원들 난리도 아니다. 그러고보면 동내병원만 가는것도 다행아닌가 싶다. 사실 누구나 자기 밥그릇은 중요하다. 큰 밥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만끔 입이 많겠지. 깜량이 되니까. 그런데, 사실 깜량이 안되어서 작은 밥그릇 밖에 못가진 사람은 또 배가 고프다. 나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내 밥그릇 챙기기에도 온힘을 쏟아야하는 현 상황에서 남들의 한끼 식사를 위해 봉사하는 적지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나님은 반듯이 거기 계시지 않을까 싶다. 나는,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내 생각과 내 아이들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너무 좁다. 깜량이 안된다. 가장 가까운 며늘 한사람도 품질 못하고 있다. 며늘은 됐고, 내 자식에게도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을 인색하다. 엇그제도 손주들과 싸우고 나서 와버렸다. '니들끼리 알아서해! 나하고는 이제 끝이야! ㅎㅎㅎ 가관도 아니었다. 아, 훈계를 하는것은 당연하다. 아이들 야단 맞을만 했다. 큰아이가 지 동생에게 욕설을 내밷는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지 엄마하고 있을때는 안그런지 모르겠는데, 나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주 심하다. 스마트폰을 하는 동안에는 조용하게 잘 지내다가도 스마트폰은 내려놓으라고 하면 (식사하는 동안에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메번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광끼를 부리는 것은 늘 나였다. 어떻게 답을 찾을수는 없을까. 말로는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아이들이 맞다. 며늘은 책도 몇질씩 한꺼번에 사주고 있고, 아들은 장난감을 말이 아니게 사 드리더니 지금은 옷을 그렇게 산다. 정작 아이들은 취향에 안맞는지 입지 않는 옷이 대부분이다. 내 시각에는 하는짓거리들이 멍청하기 짝이없다. 아니,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보고만 있는데 그게더 웃기는 것 아닌가.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 부모가 가만 있는데 할미가 뭐라고 참견? 뛰처나와 집으로 오면서도 결코 경쾌할수는 없었다. 결국 아이들이 태권도장에 간후에 슬그머니 가보았다. 빨래는 널어놓았고, 식탁은 정리를 했다.ㅎㅎㅎ. 이정도면 할미가 없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대충 다시 정리해놓고 나왔다. 이제는 나도 은퇴(?)를 해야할까? 아이들을 위한다는 말은 핑개다. 날마다 아이들도 안보면 그야말로 왜 사는지가 절박하게 된다. 내가 늘 강조하는 '해야할일'과 '하고싶은 일'의 경계 같은것은 없다. 내게 무슨 해야할일이 있고, 하고싶은일이 있겠는가. 그나마 아이들과 만나는 짧은 시간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인데. 오히려 며늘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집 며늘이라면 벌써부터 '어머니 그만 오셔요' 하고도 남았을태니까. 듣기로는 멀리 이사까지 간다고하지 않던가. 나를 참아주는 것은 오히려 며늘이란 생각도 든다. ㅎㅎㅎ 아이러니다. 큰손주의 애로사항도 분명히 있을터였다. 어찌 그애 입장을 안다고 하겠는가. 욕설로라도 분노를 분출 시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고,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동생과 싸우지 않고, 욕설도 자제하겠다'는 답을 듣기위해서 였다. 그걸로 화해는 이루어진 샘인가. 사과의 말은 따로 하지않았다. 솔직히 할머니의 존제가 그애들에게는 고마운 존제는 아닐게다. 지 엄마가 좀더 지들을 보살피고 돌봐주길 갈망하는게 당연하다. 무늬만 엄마인 엄마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이 얼마나 절실할지는 짐작도 못할일이다. 내가 좋은 엄마였다는 생각은 안한다. 단지, 아이들을 우선시 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할까. 세상이 변했다. 아니, 자기 인생이 무엇보다도 귀한것은 시대불문인가. 부모 자식을 선택할수는 없지만, 잘 만난다는 것은 행운중에 행운임에는 틀림이 없다! 주님, 불쌍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를 배푸소서! 쉼표와 마침표도 구별 못하는 까막눈도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자꾸 어려워지는데 적응해서 살아가기가 버겁습니다. 부디 살펴주십시요.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