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최정훈)
'잔나비' 보컬 최정훈
저는 걷기를 무지 좋아합니다. 걷다 보면 생각을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생각은 꼬리 물기를 잘해서 되레 좀 산만하다면,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그저 걸음에 나와 같이 태우면 되는 느낌이랄까.
친구와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서로 눈을 맞추지는 못하지만 호흡과 보폭과 시선을 맞추면 되니까요. 친구를 불러내서 어릴 적 누비던 동네 길을 같이 걷는 건 제가 세상에서 무척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예요.
세상만사 모든 일을 걸음에 빗대는 것도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좋아합니다.
아장아장, 뚜벅뚜벅, 사뿐사뿐, 성큼성큼, 터벅터벅, 살금살금…. 저는 이 중에서 뚜벅뚜벅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뚜벅뚜벅 걷듯이 담대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로 어려운 기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터벅터벅이 가장 값져 보여요. '터벅터벅'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많은 탓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걸음걸이를 하고 있을까. 어떤 날엔 호기롭게 성큼 걸어보았다가 다리가 분질러진 적도 있고, 또 어떤 날엔 눈치 보며 살금살금 걷다가 우연히 멋진 길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아장아장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히 걸어온 것 같네요. 제 또래들이 그러는 것처럼.
2021년에 저는 서른 살이 됩니다. 뜻 모르고 불러댔던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되는 거죠. 이즈음이 되니 그 가사 한 줄 한 줄이 식은땀처럼 등으로 줄줄 흐르네요.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하루가 멀어져 가는데 나는 또 어디로부터 멀어지며 어디를 향해 가까워지는지. 걸음만이 답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터벅터벅'
왠지 애잔한 느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