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일자 동아일보 신문을 보니 대검찰청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조봉암 사건에 대해 내린 재심권고 결정은 엄격한 증거 판단 없이 역사적,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50년이 지나 자료 찾기가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조봉암 사건 재심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하는군요.
이승만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인지... 답답하게 만든다.
근․현대사, 특히 해방정국 시기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조봉암이 간첩일 수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찌감치 해방정국 시기에 공산당의 전횡에 반대하다 당직까지 잃었고, 그 결과 조봉암이 공산당에 대해 비판한 글이 미군정에 의해 이용당할 정도였다. 조봉암이 간첩이라는 것은 이북에서 박헌영이 간첩이었다는 얘기와 같은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 당시 대한민국의 ‘영도자(사실상 임금)’ 이승만이 자기 자리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는데, 그 상황에서 조봉암을 사형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보는가?
필자가 이 사건을 답답하게 보는 것은 단지 이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당사자인 죽산 선생도 50여년 전에 이미 진상 따윈 포기하고 죽음을 택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재 시절에 일어난 사건마저도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과연 통일 이후 북한까지 포함한 과거사 진상 규명은 가능하겠는가? 필자가 단언하건대, 지금 이 모양 이 상태에서 통일이 일어나면(어차피 북한 주도의 통일은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 남한 주도의 통일을 의미) 필연적으로 내전이 발발하고 말 것이다.
독일이 서독 중심으로 흡수통일되었다고 그 사례를 본보기로 삼자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 한 마디 하자면, 서독은 이미 1960년대부터 나치 청산을 꾸준히 지속해왔고, 그 결과 통일 이후에 동독 지역의 나치와 공산 시절 청산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어떤가?
오늘의 사건을 본 죽산 선생이라면 역시 이를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이 나라의 상황(굳이 현 정권에 한정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이 필자가 보기에 상당히 역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그래도 조봉암이 한 말을 되새기며 나는 내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망우리 공동묘지의 조봉암 묘역임을 표시하는 비석에 새겨진 그의 말)
첫댓글 조봉암 간첩설은 거짓이지만, 박헌영 간첩설은 의외로 진실에 가깝다고 합니다. 박헌영 자신이 간첩이 아니었다 해도 박헌영의 동료나 그 밑 직원 중에 미국 간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네이버 지식인에서 본 거라 정확하진 않고 그냥 설로 보지만.. 그 근거는 1. 미국간첩 누명 씌울 정도로 박헌영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2. 당시 박헌영은 정치적 판단 착오로 인해 그냥 보내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3.소위 종파 사건을 제외하고 여러 숙청이 있었지만 저 정도 강한 죄목은 없었다 4. 박헌영은 당시 죄목을 순순히 자백했다 5. 다른 남로당원과는 달리 박헌영은 이년이나 질질 끌었다 입니다. 그래서 박헌영이 직접 스파이엿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잇고 아님 그 부하들이 스파이였고 박헌영은 묵인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본문의 주제가 박헌영 문제가 아닌데, 그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시는 것은 좀... 글에 대한 논의 전개나 비판은 큰 줄기를 먼저 잡고 논하는 것이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 박헌영 간첩설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대로 살펴본 바가 있는데, 간첩이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글을 언젠가 작성해보려고는 하는데, 지금 저에게 시급한 과제는 아닌지라 언제 하게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박헌영과 함께 거론되는 이승엽도 간첩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외의 사람들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게 쓰면, 박헌영의 일제강점기-해방정국 시기 행적으로 보아 그가 간첩행위를 할 까닭이 없었고, 북한측에서 그 공식문헌으로 내세운 간첩행위의 죄목들(일제강점기 무렵부터 미국인 선교사와 가까웠다는 등의 이유들)을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김일성과 더불어 한국전쟁 발발의 주창자였던 점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참, 해방정국 시기 행적에 대해 한 말씀 보태면 바로 저 조봉암의 조선공산당 이탈 사건을 미군정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도 미군정과 박헌영의 공산당이 적대적이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니 박헌영이 '미국과 짰네'라거나 '뒷거래를 했네'라는 주장이 설 자리가 없죠. 더군다나 박헌영은 이것보다도 미군정에게 '일생 최대의 정치적 타격'을 받은 사건이 있는지라, 간첩설은 박헌영에 대한 모독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 역시 보수정권의 한계인가요 조봉암 사건 재심을 반대합니까? 정말 이나라가 뉴라이트 손아귀에 들어가는건 아닌지 불안합니다..
저는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들에게 '보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보수'나 '보수주의'는 유럽에서 엄연히 역사적인 뿌리가 있는 사상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런게 없습니다. 장차 유럽사를 공부하시게 되면 보수주의에 대해 접하실 기회가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들을 '극우' 내지 '냉전세력'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수정권이라 한이유는 지금 x나라당이 자신들이 보수라고 떠들어 대서 보수라고 했는데 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그럼 신나치주의나 일본 자민당,뉴라이트,뉴데일리도 극우 보수파 인가요?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것은 바로 '입장'의 차이 때문이지요. 자신들 스스로는 '보수'라느니, '자유주의'라느니 하는 명칭을 붙이는데 정작 그 단체에 진정한 '자유주의'는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그들을 부를 때 저는 '자칭 ~'라고 씁니다. 당연하게도 나치즘은 보수주의가 아니고, 일본 자민당의 경우도 보수로는 볼 수 없습니다.
좋은지적 감사합니다^^
박헌영 간첩설은 언급되어 있기에 한 번 언급한 것이지요. 저도 박헌영 개인은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밑의 부하들은....
제가 마지막에 달아드린 '해방정국 시기'의 문제는 비단 박헌영 개인과 미군정의 대립이 아닙니다. 조선공산당과 미군정의 대립인 것입니다. 저도 남로당파의 인물들을 모두 조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어 그렇지, 남로당파의 1, 2인자였던 박헌영과 이승엽이 간첩이 아니었다면 나머지도 솔직히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승엽을 비롯해서 남로당 계열이 문제가 된 것은 사실 '친일 행적'에서 비롯합니다. 분명 이점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할 점이 있지만, 미국 간첩설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씀은 드려도 북한측 자료의 제한으로 현재로서는 접근에 한계가 있습니다;;).
박헌영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문서에서도 밝혔듯이...한국전쟁의 실패의 책임을 가지고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고 봐야죠...
빨갱이 놀이를 지금도 하고 있는게 좀 그렇군요 -_-;; 언제까지 간첩, 빨갱이, 반공법위반을 법적으로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진보당 조봉암은 우리 나라에서 진보세력은 좌파, 공산당,빨갱이 ..첫 단추처럼 여겨지는데..과연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가스통 할배들이 얼마나 무서운줄을 모르시는군요....^^ 다만. 지식인과 언론에서는 조봉암을 간첩이라고 말하지는 않죠..
제가 그거 무서운 줄을 왜 모르겠습니까? 알아도 할 말은 하는 거죠. 그래야 '자유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 조봉암이 진보당 시절에 내걸었던 정강은 사민주의였기에 좌파라고는 부를 수 있을망정, 공산당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고 하면 되는 겁니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재심 자체를 거의 항상 반대하곤 합니다. 어짜피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건는 검찰청의 권한이 아니라 대법원의 권한이기 때문에 검찰 의견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조봉암 사건의 경우에는 워낙 현대사 쪽에서 그 동안 학자들이 비중있게 다뤄왔던 '정치적 희생' 의 사례였기에 당연히 재심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지만... 재심이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데, 신농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보다는 조금 다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지금 법원의 성향이 조봉암 사건 재심을 못할 정도로 꽉 막히고 좌파 쪽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빨갱이로 치부해 탄압하는 반공주의적 성향은
아닙니다. 다만, 법원, 검찰 쪽은 '선배' 들에 대한 예우가 상당한 경우가 많은 데다가 조봉암 사건의 경우 당시 주심판사였던 사람이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일부 잡지(예: <신동아> 1965년 10월호) 등에 '당시 정치적 판결이 아니었다' 라는 취지로 강하게 자기옹호 주장을 한 바도 있는데 과연 이런 선배들을 '밟고' 갈 수 있을 지가 의문스럽긴 합니다.
저도 이 사건이 반공주의 때문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런 시대는 지났고, 지나야 정상이지요. 하지만 결국 이런 사건들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결국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할 뿐입니다. 검찰이 조봉암 사건을 반대한답시고 내놓은 논리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독일 사례를 든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북한 인권론을 들먹일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우선 남한의 구 독재 하 인권 문제부터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당장 자기부터 못하는 것을 남한테 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라가 민주주의를 국호앞에 표기하면서 행동은 독재체제를 향해 달리고 있지요. 역사를 주제로 하는 까페에서 정치이야기는 하기 싫지만 조봉암선생의 진보당사건은 충분히 조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휴... 허기사 장준하선생사건도 그냥 잊혀지는 판인데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