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았습니다.
언제나 알뜰 살뜰 살아가시는
이유를요.
가까이서 검소함과 알뜰함을
잘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언제부턴가 무얼 덥석 사려면
수피아님을 떠올리게 된답니다.
가슴에 와 닿는 글, 새삼 많은 것을 떠 올리게
해 주셨군요.
늘 이래 저래 감사함 느낀답니다.
--------------------- [원본 메세지] ---------------------
퇴근길에 며칠 전부터 벼르던 정육점에 들르기 위해,
일부러 한 정거장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두부 몇 쪽만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전부인 저녁밥상에서
돼지고기가 조금만 들어가면 더 맛있겠다며 씩 웃던
남편의 말을 듣고서도 며칠을 망설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돼지고기조차 한 번 선뜻 살 수 없을만큼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삶이
조금은 서글펐지만, 그래도 늘어가는 저금통장을 위안으로 삼으며
생각해 낸 것이 고기를 대신한 돼지껍데기였다.
돼지껍데기는 한 근에 몇 백원이면 살 수 있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이 퍽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돼지껍데기를 사려니 왠지 창피함으로 용기가 나질 않아서,
고민끝에 매일 지나치는 동네 정육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일부러 한 정거장이나 더 가서 내린 것이었다.
정육점안에는 손님이 몇 있어서 그들이 다 나갈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가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때마침, 내 뒤로 50대 초반의 여자손님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가 그만 출입문 쪽으로 비켜섰을 때 그녀는 정육점 주인에게 주문을 하였다.
소 꼬리 한 벌, 사태 몇 근, 그리고...
우리집 한 달치 생활비도 더 됨직한 지폐를 세는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름모를 커다란 보석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만 나가려다 무얼 찾느냐는 정육점 주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더듬거리는 말로 돼지껍데기 한 근을 주문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정육점 주인은 무엇에 쓰려고 돼지껍데기는 찾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엉겹결에 누구 심부름인데
아마 약으로 쓰려는것 같다는 거짓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정육점 주인은 얼마 안되는 금액이니 그냥 가져가라며
한 쪽 옆에 모아 두었던 커다란 양철통에서
허연 돼지 비계를 한 봉지 가득 담아 주는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급히 정육점문을 나서니
밖은 이미 어두웠고 바람이 불면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네온사인과 온갖 장식으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더불어
캐롤송이 요란한 거리를 잰 걸음으로 바삐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돼지껍데기를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서 늦은
저녁상을 준비 했는데, 남편은 다른 날 보다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눈이 내리면서 추워지기에 그 날따라 입고가지 않은
내 오우버 코트를 들고, 내가 매일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지금껏 기다리다 돌아오는 길이라 했다.
돼지 껍데기를 사느라 한 정거장이나 더 가서 내렸다는 말 대신
다른 거짓말을 둘러 대면서, 김치찌개가 훨씬 맛있다며 두 공기째
밥그릇을 비우는 남편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저녁상을 내 가려는 내게, 남편은 꽃무늬 포장지의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의아해 하는 내 대신 남편이 포장지를 뜯고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거기엔 조그만 보석알이 박힌 실반지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게 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그래서 오래 전 부터 용돈을 모아서 마련했노라고,
잠든 나 몰래 손가락을 실로 재어 크기를 맞추었다고...
반지를 끼워주며 남편은 내 손등 위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뜨거웠다.
언제부턴가 퇴근시간이 한참씩 늦어진것도
버스비를 아끼느라 몇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왔음이라...
상추쌈보다 크고 딱딱한 것이 울컥 목에 걸렸다.
그런데 그런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내가 했던 한 마디는,
"이거 살 돈이면 한 달치 방세를 내고도 남을텐테..."였다.
바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