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나라를 가든지, 여행이나 혹은 어학연수라고 해도 그 나라의 언어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의 문화를 처음 접하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면들도 있지만 그러나 조금만 깊이들어가 보면 결국은 그들의 삶도 다 똑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흔히 필리핀 사람들의 사회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이런 관계가 그들의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교과서 적이고 (왜냐하면 이것은 세계 공통이니 말입니다) 지극히 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리핀의 문화는 넓은 영토와 수 많은 섬을 가진 나라답게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잘 융화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더 나아가 필리핀 문화는 자기 가족에 대한 애착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하여 그들이 삶을 들여다보면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족의 중요성이 항상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리핀 문화의 가장 근본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참 이상적인 문화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과거에는 한국도 이런 형태의 문화를 가졌고 그 근본을 소중하게 지켜옴으로써 무언가 바로 서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붕괴 되어버린 지금은 지극히 개인주의로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하여간 필리핀의 어린이들은 성장과 더불어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주변 친인척들에 대해서 전적으로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을 배우면서 생활하고 성장해 나갑니다. 그뿐 아니라 자녀들이 성장해서 그 부모와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일 또한 필리핀 사람들 에게는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 집니다.
가족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자녀의 대모와 대부(꿈빠드레)를 정하는 일 등을 통해 타 가족과도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는 가운데 그 범위를 계속 확장해 나가게 됩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로는 우땅 나우웁(Utang na loob)이라는 것으로 굳이 풀이하자면 은혜의 빚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즉 한국의 두레와 같은 문화인 것입니다.
우땅 나우웁은 이웃이나 타인들에게서 받은 은혜를 자기가 받았던 그대로 또는 다른 형태로 갚아나가며 은혜를 베푼 이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의 문화 속에는 타인의 도움과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이를 보답하며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문화가 그들의 사회,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것으로는 문화라기 보다는 그냥 그들의 생각이나 특징 정도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만 필리핀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로 말해주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면 바로 히야(Hiya)일 것입니다. 히야는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는 필리핀 사람들만의 고유한 사고방식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야의 밑 바탕을 보면 원래 그 뜻은 타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기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야는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의 편안함과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억제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주장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을 삼가하고 자신의 의견을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히야 입니다.
필리핀 말로 나빠히야(Napahiya)는 자존심을 잃었다 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지 못하여 자존심이 상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라 하는 말도 자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나빠히야 외에 까히히얀(Kahihiyan)으로 필리핀 사람들의 특징을 말할 때도 많이 있는데 이는 예를 한번 들어 보면 낯선 곳에서 길을 물어 볼 경우,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을 잘 하지 않고 자신 있게 방향을 알려 주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다 보면 엉뚱한 길을 알려주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것을 한 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까히히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자존심 상하게 여겨서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 낯선 곳에서 길을 물어볼 일이 생기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지 마시고 되도록이면 건물이나 콘도의 가드들에게 물어 보시는 것이 그나마 낭패를 면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 문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로 바할라 나(Bahala na)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을 땐 참으로 무책임하고 자포자기 하는 모습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데 바로 ‘될 대로 되라’ 하는 문화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포자기 라기 보다는 자기가 애써도 안 되는 일에 힘들어하며 애쓰지 말고 지금은 포기하지만 곧 더 좋은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인 필리핀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에게 모두 맡기고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것 안에서 충분히 행복해하고 즐기며 살아가자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좋은 미래라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 하지도 않고, 딱히 미래에 대해 별다른 준비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편안하게 생활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 바할라나 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필리핀 사람들의 낙천적인 생각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겪었던 침략과 식민지 생활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내며 웃음을 잃지 않는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필리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