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바다
강병철 (소설가)
열일곱 살 옥이 이모가 걸렸다는 그 췌장암이란 병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없다. 다만 한머리 어른들이 ‘그 병에 걸리면 두 달 내에 죽는디. 어째 젊은 처자가.’하며 혀를 내두르던 쓸쓸한 눈빛만 떠오를 뿐이다. 박박 깎은 머리에 밀짚모자를 썼고 손목은 작대기처럼 깡마르고 얇아진다. 둘이서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해당화 사이로 썰물이 밀려가면서 갯벌이 드러났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이모가 허리를 구부려 집더니 풀섶에 던졌다. 작은 생명조차 살리려는 착한 심성이다. 소금창고 가던 누군가의 발바닥에 밟혀 죽을 수도 있으므로 풀속에 던져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고.
지금은 끝말 이어가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모가 먼저 시작했다.
“공기”
“기차.”
“찻집.”
ㅅ받침 하나 차이니까 괜찮다. 나도 단어를 살짝 변화시켜 말을 이었다.
“지붕.”
이모는‘지’ 다음에 ‘ㅂ’이 오니까 봐줄 만하다며 끄떡거렸다.
“붕어.”
“어사, 암행어사의 준말로 쓴 거여.”
“사부님.”
“님의 눈물.”
나는 눈물이 많아서 별명도 울보 대장이었다. 그런데 이모가.
“님의 눈물이란 말은 없어.”
“있어. 윤동주란 시인이 쓴 거여.”
“윤동주가 아니고 한용운이야. 님의 눈물이 아니고 님의 침묵이고. 좋아. ‘침묵’으로 고쳤다고 치고 나는……묵사발.”
“발자국.”
“국물.”
“물고기.”
“기총소사.”
“기총소사는 또 뭐야? 이몬 어려운 단어만 골라 쓰네.”
“전투기에서 땅바닥에 보이는 사람에게 총을 써는 거야. 재빨리 숨지 않으면 모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나는 ‘사이’를 내밀었고, 다시 ‘이발소- 소주- 주먹- 먹물- 이빨’ 이런 식으로 새로 나타난 단어를 떠올리는 재미도 있었다.
“빨간 수박.”
“박수희(이모 이름).”
“희망.”
“철아, 너는 희망이 뭐냐?”
“시인, 나는 시인이 되고 싶어.”
“배고픈 직업인데, 돈 버는 직업이 편하고 좋아.”
“그럼 선생님을 하면서 돈을 벌 거야. 그리고 방학 때마다 시를 쓰겠어. 근디 이모는 희망이 뭐야?”
“나, 희망, 그런 거 없어.”
“왜?”
“곧 죽게 되거든.”
순간 내 마음이 다급해지면서 어떡하든 달래고 싶어.
“숨만 쉬면 절대로 죽지 않아. 끝까지 공기를 들이마시는 거야. 걱정 말고 이몬 희망이나 얘기해.”
“……초록빛 바다.”
“바다가 된다구? 말이나 되능 겨?”
설레설레 도리질친 게 마지막이다. 저무는 노을 속으로 헤어진 옥이 이모는 스무날 뒤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처녀가 죽었다며 무덤을 만들지 않고 몸을 태워 뼛가루를 쇠절구에 쿵쿵 빻아서 바다에 뿌렸다. 이모는 실제로 초록빛 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