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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은 간혹 여행을 망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기도 한다.
여행 가이드 북이나 티비를 통한 여행 프로그램이나 앞서서 현지를 다녀온 다른 여행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도록 부채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는 한다. 어떠어떠 했다더라나, 혹은 이미 들은 이야기에 기준해 어떠할 것이라는 짐작은 즐겁고 좋은 여행을 크게 방해한다.
직접 찾아가서 몸으로 부딪치고 열린 마음으로 그곳의 모든것들을 경험하고 알아가며 소중한 추억만큼이나 어떤 새로움들을 깨달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보람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유럽의 정원이라 불리는 토스카나 지방(Toscana)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지역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과 거장들의 예술품들이 즐비하고, 어디를 가나 푸치니의 오페라 선율이 브드럽게 흘러나온다.
토스카나에는 피렌체. 시에나. 피사. 루카 등의 중세도시들이 여전히 멋스런 자태를 뽐내며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피렌체나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의 인기에 눌려 시에나나 루카의 경우에는 조금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떤 여행가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이탈리아적이며 가장 토스카나적인 아름다움은 모두 시에나에 존재한다고......... 피렌체와 피사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기에 오히려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나는 오늘 시에나로 간다.
시에나 여행(Siena)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부채꼴 모양의 캄포 광장을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골목길 이라고 하겠다.
캄포 광장에 들어서면 단번에 시에나가 어떤 도시인가를 한 눈에 짐작할 수가 있다. 그만큼 매혹적이며 강렬하다. 광장에 인접해 있는 푸불리코 궁전을 중심으로 조가비 모양을 형상화 시킨 부채꼴 모양의 약간의 경사진 언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시야가 한곳으로 집중되고 여행자나 현지인들이 앉거나 드러누워서 따스한 햇쌀을 즐기기에 아주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 열리는 시에나 전통 경마대회인 팔리오(Palio) 기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섞여서 그야말로 한바탕 북새통을 이룬다. 축제 기간동안 시에나는 온통 깃발과 함성과 흥겨운 노래에 취한다.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축제는 17개의 콘트라다(지역)를 대표하는 기수들이 자신들의 구역을 대표하는 고유의 심벌과 색깔로 만들어진 기수복을 입고 경주에 참가한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다. 동정녀 마리아 상이 수놓인 깃발(팔리오)을 차지하기 위해 1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전력 질주를 한다.
그들의 질주가 가속이 붙고 선두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관중들의 함성 소리도 그만큼 높아만 간다.
그곳이 바로 시에나이다.
흔히 말하길 '시에나는 붉은 벽돌의 도시'라고 한다.
스페인이나 남미 여행에서 말하는 '뜨거운 정열을 상징'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느껴지는 그래서 여행자의 가슴속에 은근하게 파고드는 여운 같은 그런 '고혹적인 붉은색의 의미'를 말함이다.
캄포 광장을 중심으로한 한 장의 항공사진에서 미로속 같은 골목이 주는 묘한 이미지가 나를 시에나로 잡아끌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중세도시 특유의 고풍스런 느낌과 골목길에서 풍겨나오는 특유의 묘한 정서, 그런가 하면 여타의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 특히 피렌체와는 딱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다르게 느껴져오는 이질적인 느낌들, 시에나에서는 원숙하면서도 고즈넉한 여성의 분위기가 짙게 풍겨져 나온다.
시에나는 피렌체를 거점으로 두고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오기에 아주 적합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여행지이다.
기차나 버스가 모두 가능하지만, 일단 여행이 시작되는 시내 중심가까지 데려다 주는 버스 이용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 차도 건너편 골목 안쪽에 시에나로 가는 SITA 버스 정류장이 있다. 시에나 행 버스중에서 'Rapida'라고 적힌 버스를 타면 중간에 서지않고 곧장 시에나 산 도메니코광장(Piazza San Domenico )가지 태워다 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토스카나 지방의 전원 풍경이 여행자의 눈을 호강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맑은 날씨를 맞았다. 다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하루 종일 은근히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도메니코 광장에서 내려 마테오티 광장(Piazza Matteotti)을 지나 소프라 거리를 10분 정도 걸어가면 유명한 '캄포 광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시에나의 모든것이 이 마테오티 광장에서 캄포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 안에 숨어 있다.
이제 본격적인 시에나 여행을 시작해 보자.
고대 로마의 모든 중심거점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아르시아와 엘사 계곡 사이의 가파른 언덕 위에 생겨난 시에나는 도시로 성장하기에는 그리 썩 좋은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을 가지지 못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하지만 로마의 길은 시에나를 철저하게 외면 했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의 북쪽을 지나 유럽으로 퍼져나갔지만 로마가도는 시에나를 한참 벗어나 동쪽 아시시를 지나 베네치아. 밀라노 쪽으로 개통되었던 것이다. 피렌체가 로마를 수호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활성화 되고 점차 교역도시로 번영을 구가하게 되지만, 시에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소작농들의 산골마을로 전락한 것이다. 이따금씩 북쪽 롬바르드족의 약탈이 있었을 뿐이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 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서로마가 멸망하였다. 새롭게 들어선 비잔틴 제국은 옛 로마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겠다고 북쪽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때 비잔틴 군대가 이탈리아 반도의 북쪽을 지나 유럽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개척하면서 새로운 도로를 건설했는데, 이 도로가 시에나를 거쳐서 지나가게 되었다. 시에나는 이탈리아 반도의 대단히 중요한 고툥 요지이자 교역의 중심지로 새롭게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북쪽으로는 군대가 올라갔고 남쪽으로는 순례자들과 교역물품과 상인들이 내려왔다. 시에나는 무역을 비롯한 각종 상업활동의 중심지로 성장해 갔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의 대도시였던 피렌체와의 대립과 반목과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11세기에서 15세기에 시에나는 거대도시로 급성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교황(교권)과 황제(황권)이 극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스스로 영주를 선출하고 자립적으로 공화정부를 구성해 오던 시에나는 인접한 라이벌 도시 피렌체가 황권(황제)과 동맹(Ghibelline Florence)을 통해 세력 확장을 꿰하기 시작하자 보호책의 일환으로 시에나는 교황(교권)에 줄을 대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두 도시간의 영원히 숙적의 길로 가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12세기 초에 두 도시는 몬타페르티(Montaperti) 전투(1260)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일련의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초기전투에서 승리한 시에나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성모 마리아와 콜레 디 발 델사 대교구(Colle val d’Elsa, 1269)의 보호 하에 두게끔 하였으며, 이후 겔프파(Guelphs, 중세 이탈리아의 교황파)가 시에나에 설립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에나를 열광케 하였으며, 반대로 피렌체 시민들의 원성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에나는 로마 법왕청 귀족 가족들의 금융 활동, 특히 북유럽· 마르세유· 콤파냐· 런던에 있는 거대한 국제 시장 덕분에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비아 반치 디 소프라’와 ‘비아 반치 디 소토’라는 은행과 관련된 거리에서 과거의 번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세력을 장악한 상공인들의 압력으로 도시는 제2도로망과 고딕 양식의 공공 및 일반 건축물을 새롭게 갖추게 되었다. 시에나는 9인 정부(1287~1355)를 두는 정치제제를 갖게 되었고 이때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기를 누렸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캄포 광장의 평면배치와 푸블리코 궁전의 건축물과 같은 도시의 건축물에 지속적인 역사적 흔적을 남겼다.
시에나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420년과 1555년 사이에 정말로 많은 일이 벌어진다.
하여 결국은 시에나 공화국이 종언을 고하게 되고,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상인들이 정부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하게된다. 판돌포 페트루치(Pandolfo Petrucci, 1487~1525)가 귀족 정치를 도입하려고 시도하자 엎친데 덮친다고 황제 카를 5세(Charles V, 1530)는 시에나의 내정에 직접 간섭하였다. 내정 문제는 황제와 프랑스와의 관계를 점점 더 밀접하게 만들었다. 1552년 이미 시에나를 2년 동안 점령했던 제국의 군대는 프랑스 편에 충성을 바친 시에나 사람들에게 쫓겨났다. 시에나 시민들은 자치적인 방어군을 창설하고 도시 방어벽을 강화해 다시 쌓았으며 성문의 일부도 보강했다. 그리고 교회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1555년, 도시를 지키던 블레즈 데 몽뤼크(Blaise de Montluc)는 끝내 황제군에게 굴복해 도시를 넘겨주게 되었다. 점령자 필리프 2세는 시에나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반면 토스카나 주의 공작령을 합병시켰다. 이로써 도시의 금융과 상업 활동이 위기에 빠지면서 경기가 침체되었다.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후 도시는 주로 농업활동에 집중하였다.
유럽 대륙 전체를 참혹하게 할퀴고 지나간 흑사병이 시에나에도 1348년 찾아들자 도시 인구는 25,000명에서 16,000명으로 줄었다.
이후 시민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궁정과 교회와 수도원들을 재건하고 확충하려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457년 시에나는 이전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아 가게되었고,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Enea Silvio Piccolomini)가 교황 비오 2세(Pius II)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는 대외적으로 시에나에게 대단히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더하여 14세기엔 시에나의 상징적 존재이자 자부심인 프란치스칸 베르나르디노 알비체스키(Franciscan Bernardino Albizzeschi)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herina Benincasa)가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바야흐로 시에나는 명망과 존경을 받는 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면, 여기 시에나에도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려는 피콜로미니 가문의 노력으로 파파 로자(Loggia del papa), 피콜로미니(palazzo) 궁과 파페세(papesse) 궁 등의 뛰어난 건축물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렇지만 마르실리(Marsili) 궁(1458), 대주교의 궁(1718) 등 15세기와 그 이후의 많은 예술 작품에는 여전히 오랜 전통의 고딕 양식이 주요했다. 피렌체에 비하자면 여전히 시에나는 보수적이고 스스로 고립된 도시였다.
이후 시에나는 토스카나의 공작령 속했다가 1849년에 이탈리아 왕국으로 예속되었지만, 19세기의 산업 발달에 대해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도시는 성벽 바깥으로 분산되어 소규모로 확장되었으며, 때로는 역사 지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 잡기도 했다.
토스카나 지역은 가장 이탈리아적인 풍경과 역사적 배경을 지녔다고들 말한다. 그중에서도 시에나는 가장 토스카나 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시에나는 중세 시대의 특징과 가치를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이다.
이곳의 예술과 건축 그리고 중세 시대의 도시 설계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시에나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Siena)는 7㎞ 길이의 성벽(14~16세기)으로 구분되며, 성벽은 도시가 자리 잡은 3개 구릉의 등고선을 따라 이어진다. 피렌체의 거리에 있는 카몰리아 문(Porta Camollia)처럼, 전략적 지점에는 2개씩 문이 있는 성벽과 부속 포루와 망루들이 갖추어져 있다. 서쪽 편은 1560년 시에나가 몰락한 뒤 메디치에 의해 재건되고 1580년에 새로 건설된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요새를 에워싸듯 옛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확장이 된 역사 지구의 성벽은 25㎞ 거리의 갤러리 네트워크의 일부와 보티니(bottini)를 포함하고 있다. 보티니는 지하수로망으로 연결된 저수조로, 지하수를 보티니에 저장해두었다가 지상의 분수로 내보내 물을 이용하도록 하였다. 시에나는 노련한 산 갈가노(San Galgano) 수도사들의 경험 덕을 본 것으로 보여진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중앙 분수대들은 바로 고딕 양식의 포르티코(portico)와 유사한 건축물이다.
세 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있는 캄포 광장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멋들어지게 만들어진 개방형 광장 중 하나로 유명세를 떨친다. 이 광장은 중세 도시의 성장과 도시 공동체 권력의 대두와 때를 같이하여 형성되었다. 프란치제나 거리(Via Francigena)의 절반과 오늘날의 ‘비아 반치 디 소프라(Via Banchi di sopra)’와 ‘비아 반치 디 소토(Via Banchi di sotto)’ 거리의 전 구간에는 금융과 상업 활동이 집중되었으며, 캄포 광장에는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 시장이 들어섰다.
12세기 말, 도시자치 정부는 반원형(부채꼴 모양)의 개방형 광장을 만들기 위해 두 구획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련의 법령을 제정하여 상업 활동뿐 아니라 서비스나 일반 주택 건축에 있어 더블 아치형 창문 혹은 트리플 아치형 창문의 규모를 규제하기로 했다. 이는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의 외관에 통일성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 건물은 공동 정부 자리에 동시에 지었다. 이 궁전은 부드럽게 안쪽으로 굽고 총안(銃眼)이 있는 파사드(facade)로 되어 있으며, 고딕 트리플 아치형 창문으로 더욱 강조되었다. 궁전 안에는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의 《마에스타(Maestà)》와 암브로조 로렌체티(Ambrogio Lorenzetti)의 《사악한 정부의 알레고리(Allegoria del Buon Governo)》 등 수많은 중세 시대 회화 명작들이 있다.
토메이(Tomei) 궁전과 부온시뇨레(Buonsignore) 궁전 등 상공인이나 귀족 가족을 위한 고딕 양식 궁전은 폭을 넓히고 벽돌을 사용했다. 이들 건물은 이른바 ‘구엘프(Guelph)’ 크레닐레이션(crenellation, 건물 벽면에 부착하는 요철모양의 흉벽)이라고 불리는 큰 창문이 특징인 푸블리코 궁전을 모델로 삼았다.
일단 푸블리코 궁전 내에 공공 기관 을 설치하고 나서 광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광장의 바닥을 포장하고, 야코포 델라 퀘르차(Jacopo della Quercia)가 장식한 가이아 분수(Fonte Gaia)를 설치했다. 그리고 궁전의 맞은편에 만자의 탑(Torre del Mangia)과 광장 성당(Cappella della Piazza)을 세웠다.
코시모 메디치 1세의 침공에 의해서 시에나가 멸망단 후, 메디치 가문의 지배하에서의 광장은 멋진 축제를 위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 되었다. 광장에서는 시에나의 각 구역의 팀들이 겨루는 유명한 말달리기 시합인 팔리오(palio) 축제가 성황리에 거대한 행사로 자리잡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또한 고도의 기술과 테크닉이 가미된 새로운 통치 지배 수단 중의 하나였다.
영원한 맞수이자 숙적이었던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탄생했고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면 인근이자 변방으로 밀려났던 시에나에는 르네상스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피렌체의 르네상스가 번영을 구가하던 시장중심의 공화국가였으며 메디치라는 거대 자본가가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였었기에 찬란한 문화예술의 탑을 쌓았다면, 공화정이기는 하였으나 특정 영주를 중심으로 이제 막 도약하기 시작하던 시에나의 처지로서는 도시국가의 규모면에서도 결코 피렌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와 음악가와 조각가와 미술가와 건축가들이 피렌체로 몰려 들었다. 하지만 묘한 기질을 가진 시에나의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철저하게 자기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조에 한발 물러선 이들은 고향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에나 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의 위세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시에나 출신 토착 가문인 피콜로미니 가문이 시에나 학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에 이른것이다. 메디치가 은행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거대한 사업가 집안이라면, 피콜로미니 가문은 성직자. 군인. 정치가를 배출했다.
메디치 가문에서 두 명의 교황이 배출되었고, 여기 시에나의 피콜로미니 가문에서도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하였으니 (비오 2세)와 (비오 3세) 교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콜리미니 가문이 교황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제노바. 베네치아. 아퀼레이아. 트리에스테.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여러 도시에 무역사무실을 설치했다.
(피렌체)와 (시에나)라는 두 도시간의 과거로부터의 역사적인 대립. (메디치 가문)과 (피콜리미니 가문)이라는 신구 세력간의 전쟁은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결국 1555년 4월 17일.
메디치 가문의 야심만만한 새로운 지도자 '코시모 메디치 1세'는 스페인의 후원을 받으며 피렌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시에나를 함락시켰다. 영원한 숙적 시에나를 멸망 시켰다기 보다는 메디치 가문의 아성에 급성장세를 보이며 육박해 오는 피콜리미니 가문을 조기에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보여진다. 코지모 메디치 1세는 피콜리나 가문의 모든 상업적 권환과 권리를 박탈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재산과 영지는 보존해 주었다. 성과 궁전과 아말피를 비롯한 20여개의 영지는 그대로 보존시켜 주었다. 피콜리미니 가문은 그후로도 한동안은 그대로 시에나에 머물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변수가 생겼다.
생존한 피콜리미니 가문이 하나 둘 시에나를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일부가 따뜻한 나폴리로 이동해 머물렀다. 그리고 머잖아 가문 전체가 나폴리를 거쳐 밀라노로 이주했다. 나폴리는 곧 피렌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는 밀러노의 주요 해상무역 거점으로 발돋음 하게된다. 피콜리미니 가문은 밀라노의 통치자들과 어울리고 혼인을 통하여 인맥을 넓혀간다.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 메디치 가문이 종말을 고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콜리미니 가문은 밀라노로 이주한 후 승승장구하는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그들은 훗날 신성 로마제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귀족집안으로 오래오래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된다.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규모나 화려함에서는 비견할 바가 못되겠지만 시에나 학파에 대한 피콜로미니 가문의 후원 또한 지극히 헌신적이었다.
피렌체에는 비하지 못하겠으나 시에나에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렌체가 치마부에로 시작해 제자인 지오토로 이어지고, 다시 레오나드로 다빈치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을 배출한 르네상스의 산실 이었다면, 시에나에는 치마부에에 대적할만한 또 한명의 위대한 거장 두치오(Duccio)가 있었다. 그리고 두치오의 전통은 로렌제티 형제와 시모네 마르티니로 이어져 내려갔다. 이들의 중요성은 '시에나 학파를 제외한 르네상스를 상상할 수 없다'는 표현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시모네 마르티니作 (수태고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시모네 마르티니는 시에네 학파를 대표하는 미술가이다.
그런 그의 작품이 지금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그림은 애초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처음 그림이 완성되어 걸렸던 장소가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도 시에나 대성당에 걸려있어야만 했다.
시에나 대성당이 돈이 필요해서 메디치 가문에 제단화를 꺼내서 팔았을리도 만무하다.
아마도........(기록에는 없지만) 1555년 시에나로 쳐들어가서 멸망시킨 코시모 1세가 시에나 대성당에 들려보았는데, 수많은 그림중에서 유독 이 그림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 집과 집무실(팔라초 베키오)에 이미 레오나드로 다빈치. 보티첼리 등등의(현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수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처지였음에도 유독 이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가 마음에 들었거나 탐이나서 얻어갔는지 뺏어갔는지 아니면 훔치거나 강탈해 갔는지....... 양도 양수 기록이 없이 느닷없이 어엿한 남의 교회 제단에 있던 그림이 메디치 가문 손에 들어가게 된것이다.
--- 두치오作 (도마의 의심)
--- 두치오作 (옥좌의 성모) 항상 같은 제목의 치마부에 작품과 비교되는 아주 유명한 작품.
--- 암브로조 로렌제티作 (종은 정부 나쁜 정부. 프레스코화)
--- 기를란다요作 (최후의 만찬)
시에나의 마테오티 광장에서 캄포 광장에 이르는 길게 늘어진 골목길이 소프라 거리다. 이 거리가 바로 시에나의 중심이자 번화가이다.
다양한 명품 매장들은 물론이고 슈퍼마켙과 서점, 그리고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유럽의 이런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항상 가지게 되는 생각이........ '이런 쬐끄마한 시골읍내에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숍이라니....... 이게 과연 팔릴까?' 하는 궁금증을 항상 가지고 있다. 최소 우리나라 광영시 정도는 되어야 들어서는 명품 브랜드 말씀이다. 브랜드는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인데 매장은 우리나라 중저가 남성복 매장처럼 그저 그렇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왜 우리나라 매장은 그리도 뻐쩍찌근 해야만 하는지 말이다.
시에나의 골목길은 왠지모르게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
익히 도심이 형성된 구조를 나름 알고 있기때문인지...... 사방에 나붙어 있는 이정표를 부러 무시하고 지나쳐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안도감에서일까?
캄포 광장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시에나의 골목길은 똑바로 된 골목이 거의 없고 반듯이 휘어져 있다. 그리고 한쪽으로 경사가 져 있는데, 높은 곳으로 나가면 언덕 위에서 토스카나를 바라보는 풍경이 기다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항상 캄포 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시에나의 상징이자 핵심은 캄포 광장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명소다.
처음 시야에 꽉차게 들어 오는 경관은 한마디로 '역시나' 였다.
'광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다. 그 광장에서 사람들이 만나 대화와 토론을 거쳐서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다.
광장은 곧 인간들의 삶 자체이다.
시에나의 광장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캄포 광장에 서 있다.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잠시도 떠나지를 않았다.
누군가가 숙소에 놓아둔 짐보따리에 손을 댄 느낌이 들었다.
짐보따리래 보았자 장기 여행을 위한 옷가지 약간 뿐이었다. 길드에 관한 문서나 물품들을 허투로 두고 다닐 정도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온 서신과 서류는 확인한 후에 곧바로 불태웠고, 계약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서류는 따로 피렌체 상인조합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베네치아로 보내는 마지막 통신이 사흘전에 떠났다.
이제 피렌체에서의 나의 임무는 모두 끝이 났다.
벌써 떠났어야만 했지만, 팔라초 베키오로부터 오늘쯤 알렉산드로 메디치가 한번 만나기를 원한다는 기별을 받았던 것이다. 인사를 나눌 기회를 잡은것이겠구나 했다. 그 내용 또한 사흘전에 베네치아로 떠나는 보고서 편에 적어 보냈다.
마지막 보고서를 보내고 난 후에 곧바로 나섰다면 혹시나 한 이틀쯤 시에나를 방문하여 에라스무스를 만나고 서둘러 베네치아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바램을 가졌었는데, 갑작스레 메디치의 연락을 받고 아쉽니만 시에나 방문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상한 느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팔라초 베키오로 가기 위하여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시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을 세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감시의 눈길이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도대체 누구인가?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부러 발걸음을 빨리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골목길을 이리저리 우회도 해보았다. 상대는 한 두명이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팔라초 베키오 건물에 들어가 메디치의 집무실 앞에서 서기관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밀랍으로 봉인된 위에는 메디치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피안재씨.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약속대로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고 있는것에 대해 메디치 공께서 매우 흡족해 하고 계십니다. 메디치 공께서는 오늘 마키아벨리를 석방하기 위하여 출타중이시라 부득이 피안재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봉인된 서류는 베네치아 길드 앞으로 보내는 공문서로서 내용은....... 내년에 다시 한번 당신을 피렌체에서 만나고 싶다는 초청장이 들어있습니다. 피안재씨와 직인 두 명 정도를 초대해서 도자기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앞선 도자기 기술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혹시나 피렌체 인근에서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의 도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는 없겠는가 생각하고 계시거든요. 부디 내년에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먼 길에 살펴 가십시요.'
'마키아벨리 선생이 석방되는구나? 에라스무스 선생님과 홀바인에게 서둘러 이 소식을 알려야 겠구나.'
서기관의 작별 인사는 듣는둥 마는둥 나의 생각과 신경은 온통 마키아벨리 석방 소식에 쏠리고 있었다.
초청장을 건네받아 갈무리 하고는 팔라초 베키오를 벗어났다. 피렌체 상공인 조합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네치아 길드에 할당된 금고에서 몇가지 서류를 꺼내 초청장과 함께 어깨걸이 가죽 가방에 잘 갈무리를 했다.
길드 직원으로부터 필기구를 빌려서 급하게 홀바인 앞으로 마키아벨리의 석방을 알리는 짧은 통신문을 적었다.
그리고는 여러날을 맡겨두었던 베네치아에서 타고 온 말을 건네 받았다. 한동안 잘 쉬고 좋은 관리를 받았음인지 흑갈색의 말은 기운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옷가지를 갈무리 하고나서, 점원에게 누군가를 통해 시에나의 홀바인에게 보내는 서신을 부탁하고나면 곧바로 피렌체를 떠나 북쪽으로 힘차게 말을 달리게 되면 될이었다.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 토르나부오니 거리를 돌아 숙소가 있는 골목에 막 들어설 즈음이었다.
'피융'
지극히 짧은 파공음과 함께 검은빛의 바람줄기 하나가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각궁의 화살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마키아벨리 선생의 석방 소식에 몰두한 나머지 아까 전의 수상하고 불길한 느낌들에 대해 가졌던 긴장을 잠시 까먹고 말았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골목 안쪽의 저만치에 낯선 한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면서 또다시 두번째 석궁을 날리려고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바닥으로 끌고온 말의 엉덩짝을 후려 쳤다. 말이 놀라며 골목길을 달려 나갔다. 그리고 순간처럼 몸을 돌려 골목길쪽으로 난 어느 저택의 문 앞으로 몸을 숨겼다.
'피융'
두번 째 화살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 저만치 돌담벼락에 부딪혀서 부러졌다.
어쩐다. 심각한 위기였다.
이런때를 대비해서 늘 검을 휴대해 왔었지만 이번의 피렌체를 방문해 메디치 가문과의 거래 특성상 일체 무기를 휴대하지 않았던 것이 그만 이 꼴을 당하게 된것이다. 골목 안쪽 저만치 다시 석궁을 장전한 자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로도 다른 사내가 하나 더 있었다.
급한대로 대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요지부동이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벽 뒤에 숨어서 힐끗 골목을 내다 보았다. 아뿔싸.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골목의 반대편에서도 손에 칼을 뽑아든 자객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꼼짝없이 갇히고 만 신세였다. 손에 땀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배웠고 늘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자신의 안위보다는 길드를 먼저 생각해야만 했다. 최악의 경우 저들로 부터 서류만은 안전하게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좁은 공간에 갇혀버렸고 불에 태우고 싶어도 당장 불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서 도망쳐야만 한다는 결론 뿐이었다.
맨손이기는 했지만 골목을 막아선 사내 하나쯤은 어떻게든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자면 반대쪽에서 활을 들고 다가오는 자객에게 잠시라도 무방비 상태로 등을 내주어야만 한다. 날아드는 화살에 치명상만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만, 혹시나 그 한발의 화살에 치명상을 입게된다면...........
더 이상 따지고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골목을 막어서고 다가온 자객의 그림자가 대문 담벼락 안으로 비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자객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치기 전에 고개를 숙여 그의 복부를 감싸 안고 온 힘을 가해 앞으로 밀고 나갔다. 뜻밖의 기습에 자객은 더 이상 칼을 내려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담벼락에 자객의 흐트러진 몸을 세차가 부딪쳤다. 퍽 소리와 함께 자객이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나 역시 자세가 흐트러졌던 터라 그대로 저만치 나뒹굴었다. 서둘러 신체를 바로잡으며 고개를 올려보니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또다른 자객의 석궁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피융'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더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나에게 석궁르 겨누던 사내의 이마에 보기 좋게 화살이 박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객을 따라오던 다른 자객과 어떤 남자가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후다닥 소리와 함께 나의 기습으로 나동그랐던 자객이 골목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칼싸움을 하던 다른 자객도 몸을 돌려 골목 안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문단속을 잘하고 계시요. 함부로 혼자 움직이는것은 위험합니다.'
장사꾼의 차림새를 한 젊은 사내였다. 나 보다도 훨씬 어려보였다. 젊은 사내는 도망친 자를 쫓아 골목 안쪽으로 뛰어갔다.
'자신이 누군지나 알려주던지.........'
가죽 가방을 살펴보니 서류는 무사했다.
골목 밖으로 나오니 앞서 도망친 자객은 이미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거리 저만치 멈춰 서 있던 말을 끌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머물던 방을 건네다 볼 수 있는 구석진 곳의 방을 얻었다. 밖을 살피면서 갑작스레 벌어진 일들과 주변의 정황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피렌체 길드에 구호 요청을 해야만 할까?'
밤이 깊었다.
'똑똑똑'
어디선가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시요?'
'마리오 살비니 라고 합니다. 베네치아에서 왔습니다.'
'목소리를 들이니 낮에 만낮던 사람이 맞는것 같습니다. 구은을 입어 감사합니다만 이 시간에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명을 따랐다고요? 당신도 나를 감시하던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낮에 당신이 해치운 사람들은 누구란 말씀입니까?'
'피안재님을 은밀하게 살핀것은 어제 저녁부터 였습니다. 저는 혹시나 피안재님께서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으시거나 적당들과 한편이 아닐까를 살폈던 것입니다.'
'이미 어제부터 나를 뒤쫓았단 말씀입니까? 도망친 자들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슨 사건이 났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그냥 장사꾼일 뿐입니다.'
'지금 상황이 급박하고 위험하다는 것 외에 더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무슨 명령이란 말씀입니까?'
'적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확인이 되면 은밀하게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적들과 한패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내가 적들과 한패였다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마리오 살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슨 뜻인지 이내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명령이었습니까?'
'이것을 보여드리면 아실거라고 했습니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주시면.........'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커튼을 걷어재치고 창문을 조금 밀쳐냈다.
사내가 내민것은 작은 단검이었다. 단검을 받아든 나는 곧바로 책상위의 촛불로 다가갔다. 이내 나는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온통 은으로 만든 검집과 손잡이에 베네치아의 문장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손잡이 끝에 붉은 루비가 박혀있는 이런 단검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베네치아 안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단검의 끝에 박힌 루비나 사파이어의 크기로도 그 사람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증표였던 것이다. 이 단검의 소유자는 베네치아의 최고위층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레 단검을 뽑아들었다. 찬란한 광채로 번쩍이는 검날을 촛불에 가까이 대어보았다.
'마태오 몬티.(가명)'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마태오 몬티라고 새겨져 있었다.
베네치아 사람치고 마태오 몬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베네치아 무역상단의 호위무사에서 시작하여 베네치아 최고의 실력자이자 도제(총독)로 부터도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때 도제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한사코 거절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도제의 신변을 호위하는 책임자이자 정책자문을 아끼지 않는 입지전적인 놀라운 인물이다. 그동안 베네치아가 관여된 모든 전쟁과 전투에 직접 참여해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던바 있는 이제 곧 나이 칠십줄을 바라보고있는 스스로를 노병(老兵)이라 부르는 신사였다. 그는 이제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서 엔리코 단돌로를 모시고 십자군 전쟁에 참여해서 살인과 약탈을 자행했던 지난 시절을 가장 치욕스럽게 여기고 참회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몬티님께서 지금 피렌체에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따라 나서신다면 만나시게 될것입니다.'
'그분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찾아뵈어야지요. 잠깐이면 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의 이목을 피하셔야만 합니다. 한시간쯤 뒤에 산타크로체 광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말에도 재갈을 물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밤길이 대단히 춥습니다. 다행이 보름달이 밝아서 서두를 수는 있겠으나......... 먼길을 밤새 달려여만 합니다. 채비를 단단히 하십시요.'
말을 마친 살비니는 지붕을 타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서둘러 밤을 재촉해 먼길을 가야하는 채비를 서둘렀다.
밤길을 재촉해 말을 달렸다.
다소 을씬년스럽지만 그렇다해도 휘영청 밝은 달빛은 말을 달리기에도 충분할 만큼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리오 살비니는 군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군인 중에서도 틀림없이 기병이리라. 그는 황량한 들판도 어두운 숲길도 가파른 언덕도 거침없이 질주해 나갔다.
춥다. 뼛속까지 으스러질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전신을 엄습해 왔다.
잠시 말도 쉬게 할 겸해서 가파른 언덕은 걸어서 올랐는데 그때마다 살비니는 추위를 견뎌보라며 양가죽에 든 와인을 권했다. 술기운에 힘입어 추위를 이겨보겠다고 마셔보지만........ 와인인 목구멍에 닿는 순간 이미 몸서리가 쳐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안장에서 모포를 한장 꺼내 건네주었다. 사양할 상황이 잘대 아니었다. 몸을 둘둘 말듯이 모포로 감쌌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멋쩍게 잠시 웃음을 보이던 살비니는 다시 말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와인을 마셔두면 그나마 몸이 좀 따뜻해질거라는 한마디 농담섞인 말 이외에는 그 어떤말도 더 이상 살비니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일절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입을 열어 물어볼 낌새라도 느껴지면 그는 채찍을 휘둘러 저만치 더 앞서 달려 나갔다. 하여 나도 뒤질세라 부지런히 그의 뒤를 따랐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새벽의 여명아래 일렁이는 운무 너머로 저만치 구릉 위의 산언덕에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에나 였다.
밤길을 재촉해 이백리 길을 달려온 것이다.
성문을 지키던 근위병은 이내 살비니를 알아보더니 안쪽으로 소리쳐 굳게 잠겨있던 성문을 열었다.
살비니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시에나의 높고 좁은 골목길을 꺼리낌 없이 숲을 헤치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치형 골목을 끝으로 캄포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장의 건너편에 푸불리코 궁전이 나타났다.
살비니가 말을 멈춘곳은 푸불리코 궁전의 정문이었다. 나도 그를 따라 궁전 정문 앞에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말에서 내린 우리는 단 한걸음도 떼어 놓지 못했다.
온몸이 추위에 꽁꽁 얼어있어서 발걸음이 옮겨지지가 않았다.
궁전의 안쪽에서 한무리의 남자들이 몰려 나와서 두사람을 부축해서 궁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모두 베네치아의 군인들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는가? 직접 살펴 보시게.'
전형적인 베네치아 기사의 멋진 차림을 갖추고 나타난 길게 늘어트린 회색 수염이 멋진 노신사는 화려한 테이블 모서리에 앉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건네다보면서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순간 하마터면 비명 소리를 내지를뻔 하였다. 극도의 충격과 공포가 페부를 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부르르 떨게 만들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문장이 선명한 서류 봉투들은 모두 봉인이 열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모드 꺼내서 보았다는 결론이었다.
그 중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윗쪽의 봉투 세개가 바로 내가 작성해서 베네치아의 길드로 보냈던 보고서들 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이 서류들이 어찌하여 마태오 몬티의 손에 들어가 있으며 봉인이 모두 열려있단 말인가?'
그것은 베네치아 소상공인 조합(길드)의 기밀이자 상황에 따라서는 베네치아의 기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세 통은 제가 베네치아의 길드에 보낸 보고서들 입니다. 가장 앞선것이 보름전의 보고서로서 이미 길드에 도착했어야 하는 서류들입니다. 하온데 어덯게 이 서류들을 몬티님께서......... 더우기 이 먼곳 시에나에까지 몬티님께서 직접 오시다니요? 무슨 일입니까? 중대한 변란이라도 일어난 것입니까?"
'자네가 피렌체에 두달 가까이를 머문것은 자네가 속한 길드와 알렉산드로 메디치와의 거래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베네치아의 유리와 도자기가 열대의 수레에 실려 배송 되었지. 거기에는 최고급 거울도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 실로 금액이 어마어마한 커다란 거래이지. 더군다나 이번 한번의 거래가 아니라 앞으로 적어도 서너번은 더 거래가 이루어질 예정이지. 자네가 피렌체에 머물면서 1차분 물품이 무사히 도착해서 메디치에게 양도됨으로 무사히 거래가 마무리된 것이지. 자네는 이제 다음번 거래 품목과 물량에 대해서 예비주문서를 받았고 이제 베네치아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안 그런가?'
'어떻게 그런것까지를 소상하게..........'
'내가 자네의 보고서를 모두 읽어보았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부러 개봉한 것은 아니었네. 이미 서류들이 모두 뜯겨져 있었네.'
'그것은 베네치아 상단의 공문서입니다. 누가 감히..........'
'자네가 메디치에게 납품한 그 유리와 도자기와 거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물론 그 물품들은 메디치가 자신이 사용하려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테고......... 알렉산드로 메디치가 피렌체에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삼촌뻘인 교황에게(클레멘스 7세)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 내지는 뇌물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을테고......... 순리대로라면 지금쯤 피렌체를 떠나 열심히 로마로 운송되고 있다고 생각할테지?'
'물량이 많고 파손을 우려하다 보니 운송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게 됩니다. 로마까지는 아직 여러날이 더 걸릴것입니다.'
'그 물건들이 로마에 도착할 수 없다면?'
'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물론 자네나 베네치아의 길드는 아무런 책임이 없겠지. 피렌체에서 메디치에게 물품을 인도했고 영수중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 일로 상단의 거래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도시와 국가간의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차고 넘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자네의 길드는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저는 길드에 속한 일개 직원일 뿐이고 제가 많았던 거래에만 충실하려 했을 뿐......... 주변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어지하여 제가 보낸 업무 보고서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놓였는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자네가 메디치에게 납품한 물품은 피렌체를 떠난지 이틀 후에 어떤 무리들에 의해서 모두 약탈되었네. 호위를 맡았던 피렌체의 군대 14명은 모조리 참살 당했다네. 교황청에 설치 작업을 맡았던 무라노의 장인 셋은 모두 무사하네만 여전히 물품과 함께 불손한 무리의 수중에 잡혀 있다네.'
'네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이쯤에서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라노의 규율대로라면 물품은 모두 빼앗기거나 부서져도 상관 없겠지만 유리공예 장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유리공예의 비밀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지옥 끝가지 쫓아가서라도 장인들을 무사히 구출해아먄 합니다.'
'자네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자네는 무리노 유리공방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
'소상공인 길드의 이름으로 제가 요청한 사항을 무라노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곧 제 책임인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입니까? 누구이기에 감히 베네치아 상인조합과 피렌체 메디치 가문에게 손을 댄다는 말씀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요. 그들이 대체 누구입니까?'
'피렌체의 군인 14명을 모두 참살했네. 그리고 교황의 물건을 중간에서 강탈했다는 결론일세. 감히 그럴 수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겠는가?'
'밀라노 입니까? 프랑스가 이 일에 끼어들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사단의 파장이 너무나 클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나폴리?'
'시에나가 저지른 일이었네.'
'교역품 강탈 사건이 모두 여기 시에나의 짓이란 말씀입니까? 그 정도의 물품때문에 시에나의 운명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을 자행했다는 말씀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시에나가 그렇게 어리석다니요?'
'다분히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사건이라네.'
'정치적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격동하고 있는 유럽의 정세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가 있단 말씀입니까? 시에나에 주변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그렇게 유능한 인물이 하나도 없었단 말씀입니까?'
'시에나 정부가 나서서 생긴 일은 아니라네. 시에나에 그렇게 어리석은 인물로만 가득찬것도 절대로 아니고......... 피안재 군이라 했던가? 몬티 경에게서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정도 들었고......... 시에나의 일부 우국충정이 넘치는 일부 군인들이 정치적인 음모를 가진 일부 정부의 반대파들과 배후에 숨어 있는 밀라노의 첩자들 흉계에 속아서 생겨난 일이라네. 우리는 서둘러 이 일을 마무리해서 본래대로 되돌려 놓고자 하네. 그리고 더하여서는 간계를 꾸민 밀라노에게 몇갑절로 앙갚품을 되돌려 주고 싶네. 자네가 좀 힘을 보내주었으면 고맙겠네. 나는 로베르토 라치라 하네.'
터이블 저만치 무심한 듯 걸치고 앉아 있던 기사복 차림의 오십줄은 되어 보이는 건장한 신사가 자신을 로베르토 라치라 소개하면서 다가왔다.
'로베르토 라치라........ 라치라........ 라치.......'
바로 시에나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비록 강력한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시에나의 비중은 지극히 미미하였지만 나름으로 시에나 군대의 용맹은 정평이 나 있었으며 그 중심에 라치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로베르토 라치가 나타난 것이다. 라치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철저히 계산된 흉계를 가지고 밀라노의 첩자들이 시에나에서 추방된 자들에게 접근을 해왔네.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클레멘스 7세)이 새로 등극하였으니 곧 시에나에 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일세. 아니나 다를까? 교황이 직접 나서서 쫓겨났던 메디치 가문의 조카에게 교황청의 군대까지 붙여주면서 피렌체로 복귀하도록 도와주었네. 메디치는 피렌체에 당당하게 복귀했고 공화정부는 뿔뿔히 흩어져 도망을 쳤네. 당연히 첩자들의 말 처럼 우리 시에나에게는 커다란 위기가 닥친 것이지. 주변 정세가 이렇게 혼돈속으로 빠져들듯이 급작스럽게 변해가게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 시간 피렌체 공화정부가 제국의 황제들과 연합을 주도하였을 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열악한 교황의 편에 서서 고군부투를 했었네. 그런데 이번에 피렌체 출신 교황이 탄생하게 도리 줄이야. 그것도 메디치 핏줄의 교황이라니........ 베네치아가 위세를 떨치자 위기를 느낀 밀라노가 샤를을(프랑스 샤를 8세) 끌어들여서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했지. 밀라노가 벌인 치졸한 전쟁으로 베네치아는 물론 이탈리아 전체가 치룬 댓가가 얼마나 컸었는가? 하지만 교황은 버젓이 살아 남았지. 샤를이 물러가자 밀라노는 또 일을 저질렀지. 이번엔 막시밀리안(신성로마제국 황제)을 끌어들였지. 피렌체로 가던 중에 피사의 저항이 너무도 거세자 지레 겁을 먹고 물러가기는 하였지만 말씀일세. 이 틈을 노려서 교황은 세력을 급속도로 넓혀가게 된 것이지. 스위스 용병으로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게된 교황의 위세는 거의 프랑스에 육박할 정도였네. 그때 프랑스에 구세주가 등장한 것이지. 프랑스와 말일세.(프랑스 프랑스와즈 1세) 교황은 프랑스를 이길것이라 자신했지. 하지만 프랑스와 베네치아 연합군에게 철저하게 격파당하고 말았지. 이 사태의 주범인 밀라노는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고 교황은 날개가 꺽이고 말았네. 프랑스와 베네치아의 동맹세력이 위세를 떨치자 이번에도 밀라노는 간계를 꾸며 이번엔 교황에게 다가가 카알(스페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알 5세)을 끌어들이자고 제안을 한 것이지. 시기만을 기다리던 카알이 기다렸다는 듯이 쳐들어 와서 밀라노를 점령해 버렸지. 그리고 교황을 응징하겠다고 로마로 향했네. 카알은 제대로 전투도 치뤄보지 않고 교황청을 접수하였지. 하지만 여전히 교황은 무너지지 않았네. 어찌어찌해서 많은 것을 내주어야만 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교황은 자신의 지역과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일세. 교황이 어덯게 카알을 꼬득였는지는 나로서도 정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네. 카알이 물러갔지. 왜냐면 리베리아 반도의 이교도 소탕이 완전히 마무리가 되지 않았거든. 스페인으로 돌아가 잔당 소탕을 마무리한 카알은 지금 이베리아 반도 남부 톨레도에서 이슬람군의 성채였던 알카사르를 자신의 궁전으로 개축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있지.'
'세세한 정황까지 모두 꿰고 계시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밀라노가 시에나를 시켜서 교황에게 가는 교역품을 강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스페인을 자극해서 교황과의 사이에 분란을 조성하려는 것이지. 로마로 향하던 강탈된 교역품은 지금 오르비에토에 숨겨져 있네. 밀라노 첩자의 명이 떨어지면 가장 가까운 타르퀴니아 항구에서 배에 실려 스페인으로 향할 계획일세. 시에나에서 추방당한 세력들이 카알의 궁전 건축에 받치는 선물이 되는 것이네. 댓가로 카알은 교황과 피렌체로 부터 시에나를 보호해 주십사 하는 요청을 전해야 하겠지. 더하여 지금의 시에나 정부를 몰아내고 자신들을 복귀시켜 달라고 요정하겠지.'
'제국의 황제가 과연 이 작은 도시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제국을 거느린 카알에게 시에나 정도는 별것이 아닐것이네. 하지만 피렌체가 끊임없이 시에나를 탐내고 있고, 그 배후에 교황이 막강한 후원자로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합심해 시에나를 노린다면 우리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 와중에 카알이 지나가는 말로 시에나는 내가 아끼는 우방이다 라고 한마디 해 놓는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겠는가? 교황이나 피렌체가 우리 시에나를 쳐들어 온다면....... 즉시 막강한 제국의 군대를 이끌고 카알이 다시 이탈리아 전역을 점령하려 들테니 말씀일세.'
'전혀 다른 상황으로 확장되는 군요. 그렇다면 이 간계가 시에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혹 할 수 있는 조건이긴 합니다. 하지만 밀라노에겐 별반 이득이 될것이 없지않습니까?"
그때, 이번엔 마태오 몬티가 끼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서 나머지 모든 퍼즐이 맞춰지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시에나의 몫인 것이지. 나머지 진작 의도는 이제 밀라노의 몫으로 남게되는 것이라네.'
'그럼 벌어진 사태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자네가 담당했던 교역품은 메디치에게 인도한 후에 교황에게 가는 도중에 강탈되어서 지금 오르비에토에 있는 것이네. 곧 배에 실려서 교황의 정적인 제국의 황제에게로 보내질 예정이지. 하지만 제네의 길드에겐 이번 거래만 있는것이 아니지 않았는가?'
'뭐라고요? 그렇다면 스페인이 주문한 교역품까지................ 세상에나............'
키안티 지역의 국경으로 순찰을 나갔던 로베르토 라치는 일련의 무리들이 베네치아 휘장이 걸린 행랑운송마차가 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다섯명의 부랑자들이 지나가는 마차를 뒤쫓아가 마부를 살해하고 마차 안에서 행랑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부랑자들은 곧 숲속으로 도망쳤다. 라치는 부하들을 풀어서 그들을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라치의 군대는 밤이 깊어 토스카나 지역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한 농장을 포위하고는 급습했다. 라치는 창고에서 여섯명의 사내들을 체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랑자 다섯명이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군대의 최고 하위직 군인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밀라노의 상인조합 소속이었다.
첩자는 촛불 아래서 피렌체에서 발송해 베네치아로 향하던 보고서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바로 밀라노의 첩자 중 한명이었다.
로베르토 라치는 곧 사태의 전모를 모두 알 수 있었다.
곧바로 시에나 총독에게 보고를 했다. 그리고는 최측근 정예부대 일부를 오르비에토로 은밀하게 파견했다.
그들의 목표는 교황에게 향하는 교역품을 강탈한 무리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오르비에토의 은밀한 장소에 숨어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서둘러 장문의 서신을 작성해 베네치아로 파발을 띄워 보냈다. 수취인은 바로 마태오 몬티였다.
한편 마태오 몬티 또한 뜻하지 않은 일로 베네치아를 떠나 있었다. 그는 지금 파도바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베네치아 군인중에 나이는 어리지만 잘생긴 바람둥이가 한명 있었다. 그는 나이 많은 여인들을 꼬득여서 가끔씩 정을 통하고는 댓가로 용돈을 타서 생활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는 이 돈으로 더 젊고 예쁜 아가씨나 젊은 귀부인 여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옷이나 선물을 사는데 주로 써버렸다. 하여 늘 그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를 가장 아껴주고 용돈을 푸짐하게 주는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파도바에서 포주이면서 창녀로 일을 하고 있는 나이 많은 과부였다.
돈이 궁해진 사내가 파도바의 창녀를 찾았을때 창녀는 말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에겐가 엄청나게 얻어 맞은 모양이었다. 젊은 사내가 묻자 창녀는 그간에 벌어진 일을 소상하게 털어 놓았다. 분노한 사내가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창녀가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그녀를 두둘겨 팬 부랑자가 하나가 아니라 열 명이 넘는 무뢰배들 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돈을 다른때 보다도 많이 건네주면서 어서 떠나라고 재촉을 했다. 처음으로 창녀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 젊은 사내는 섣뿔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녀의 입에서 한서린 푸념들이 흘러 나왔다.
일주일 전쯤에 불쑥 열댓명의 사내들이 창녀촌을 찾아들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장사가 잘 되지 않던 시기에 왼 횡재인가 싶었다. 거기에다 그들은 가진 돈이 많았는지 씀씀이도 넉넉해 보였다.그날 이후 그들은 아예 창녀의 가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장기 투숙에 들어갔다. 돈은 사흘에 한번씩 꼬박꼬박 이곳을 수시로 드나드는 멀쑥한 다른 사내가 지불을 했다. 다른 손님이 지나는 말로 그 멀쑥한 사내를 밀라노에서 본 적이 있다고 아마도 밀라노 상인일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들이 거칠어 졌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으며 자기들 기리 주먹질을 해 대는가 하면 시중드는 창녀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화가 난 포주가 항의를 하자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뱃사람이라는 사내가 나이든 창년를 아예 혼줄나게 주먹질을 날려버린 것이다.
딱정이가 나붙은 상처를 긁어대면서 과부 창녀는 괴상한 소리들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놈들은 대부분은 뱃놈들이래. 그런데 뱃놈이라는 놈들이 바닷가에서 일거리는 찾지않고 여기 한참 내륙에서 허구헌날 술 쳐먹고 쌈질이나 하는 거여. 저 죽일 놈들이. 그런대도 돈은 꼬박꼬박 후하게 내놓는단 말이야. 말썽 생기지 않게 해달라면서 말이야. 털북숭이 놈이 우리 계집에게 술기운에 그렇게 말했다지 아마? 머지않아 자기들은 베네치아 상선을 타고 멀리 떠날 것이라고. 그리고 프랑스엔가 어딘가를 한번 다녀오기만 하면 팔자가 늘어지게 펴질것이라고 하더라지 아마? 저놈들 사방에서 꾸역꾸역 모여든 놈들이지 누구 하나 가족이나 친구나 가까운 사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제각각 따로 놀아. 도대체 뭐하려는 놈들인지 모르겠어. 그 밀라노에서 누군가 봤다는 놈만 술도 안마시고 허구한날 수시로 어딘가를 쏘다니고 있지. 암튼 이상한 놈들이야. 돈만 펑펑 내지르지 않았다면 벌써 내쫓았을 것이야. 그러니 여기는 신경쓰지 말고 어서 떠나. 제놈들이 곧 떠나겠지 뭐. 그 다음에 다시 와. 알았지?'
베네치아로 돌아온 젊은 병사는 늙은 창녀의 요상한 푸념들이 이상하게 잊혀지지가 않았다. 하여 이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상관에게 보고했고, 이 이야기는 마침내 마태오 몬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몬티는 곧바로 자신의 측근부대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직접 파도바로 달려갔다.
며칠동안 창녀의 집을 감시하던 중에 베네치아를 향해 달려가던 로베르토 라치의 전령을 만나게 되었다. 이내 이번 시태의 진면목을 낱낱이 파악할 수가 있게되었다. 베네치아의 군대가 창녀의 집을 습격해 열두명의 부랑자들을 모두 체포했다. 다만 밀라노 상인이라 지목되었던 자는 마침 이곳으로 들어 오던 중 베네치아 군대가 습격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길로 죽어라 도망을 쳤다. 몬티는 곧바로 추격대를 보냈고 전 지역에 수배령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베네치아에서 스페인으로 떠날 교역 물품을 싫은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내일이 출발 예정일이었던 것이다.
빠른 소형 어선을 가지고 베네치아 무역선을 뒤쫓다가 시칠리아 해협 인근에서 배를 나포해서 물품을 빼앗고 배는 침몰 시킨 후에 프랑스로 이동할 계획이 첫번째 안이었다. 두번째로는 베네치아에서 출발하자마자 배를 나포해서 물품을 육지로 이송하고는 배를 침몰 시키는 방법이었다. 육로로 파도바를 거쳐 친퀘테레에서 배에 싣고 프랑스로 곧바로 이동할 계획안이 두번째 였다.
이들은 스페인 카알 5세의 궁전에 사용될 유리와 도자기와 거울 등을 약탈해 적국인 프랑스의 국왕 프랑스와 1세에게 받침으로서 양대 강국의 전쟁을 틈타 밀라노의 재기를 도모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시에나를 통해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스페인 포함)을 분쟁속으로 휘말리게 하고, 프랑스를 끌어들여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이게 만든다면, 프랑스와 동맹인 베네치아로서도 전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신성로마제국이 움직인다면 교황으로서도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게될 것이다. 교황의 지지기반인 피렌체도 결코 이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에게 점령되어 호되게 혼이 났고, 지금은 프랑스의 그늘에 있으면서도 전혀 자율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밀라노의 처지에선 어느쪽이든 한번 도박을 걸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지중해의 전성시대는 한참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대양의 시대였다.
스페인이던 프랑스던 상관이 없었다. 이제 밀라노가 스스로 자유로운 몸으로 지중해를 거쳐 대양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뿐이었다.
그러자면 유럽의 분쟁이 밀라노는 간절하게 필요했다.
그길로 마태오 몬티는 군대를 이끌고 시에나로 달려 왔다. 마태오 몬티와 로베르토 라치는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았다.
그들은 행랑속에서 발견된 보고서를 읽었으며 마리오 실비니를 보내 피안재를 감시하다가 그에게 하자가 없다 싶어지면 소환하도록 보냈던 것이다.
'두 분께서 저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마태오 몬티와 로베르토 라치는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하에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하나가 이닌 몇몇의 내부 동조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짧게나마 저를 살피셨고........ 저를 이리로 소환하셨다면....... 분명 제가 맡아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소상공인 길드에 속한 신분이고 길드는 베네치아 공국에 속한 단체입니다. 아울러 몬티님께서는 베네치아의 통치자 중에 한분이십니다. 도제(총독)님의 직접 결재를 요하는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어떤 일에건 독자적인 결재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지금 저에게 하달하시고자 하는 명령이 있어서 저를 급하게 이리로 소환하신것이 아닙니까?'
'자네의 목숨을 나에게 주게. 그러면 나의 목숨도 자네에게 담보로 주겠네.'
'네?'
'오래전에 자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빚을 졌으니 언제고 목숨으로라도 꼭 갚겠다고 말일세.'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길드의 일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대로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필요하네............ 길드의 일은 내가 잘 마무리 하겠다는 것을 약속하겠네.'
'그럼 지금 드리겠습니다. 어디에 쓰시고자 하십니까?'
'카알(스페인 국왕. 신성로마제국 황제)을 죽여 주게. 그러면 베네치아는 물론 이탈리아 전체와 유럽에 평화가 찾아들걸세.'
'제 능력이 거기까지는..........'
'조금 쉬운 방법도 있네. 부르고뉴로 가서 카를의 고모인 마르가레테를 죽여주게. 그것도 아니면 독일로 가서 페르난도(페르디난트 1세)를 죽여 주게. 이 세사람은 완벽한 트라앵글 구조로 서로를 지탱해 주지. 이들 중 하나만 쓰러진다면 신성로마제국도 별로 힘을 쓸 수가 없을 것이네. 이들 중 하나만 죽여주게.'
'저는 암살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닙니다. 그런 저에게.........'
'저 세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나?'
'카를 5세는 당면하는 유럽 최고의 군주가 아니겠습니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이며 또한 시칠리아와 나폴리의 군주입니다.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수년 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를 포로로 잡았다가 협상을 통해 풀어주었습니다. 오스만의 술레이만이 아니고는 감히 그에게 대적할 사람이 유럽에는 당장 없어보입니다.'
'페르난도에 대해서는?'
'특별하고 현명한 군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거나 고모인 마르가레테만 없었다면 충분히 스페인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카알 황제 대신 신성로마제국의 군주도 되었을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그는 과묵하게 자신의 처지와 자리를 지켰습니다. 카알이 이런 동생을 어여삐 여겨서 독일 왕에 앉힌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명망이 높은 동생을 죽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계속 스페인 영토 안에 둘 수도 없어서 부득이 멀리 독일로 내친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르난드는 그런것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순순히 독일로 갔고, 그곳에서 독자적인 자신의 통치력을 멋지게 성공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현재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 신분도 겸하고 있습니다. 후계자이지요. 시간이 흘러 카알이 자식을 낳게되면 장차 다음 후계구도가 또 어덯게 될지는 알 수 없겠으나........ 페르난도는 분명 이탈리아나 온 유럽에 상당히 위협이 되는 훌륭한 군주입니다. 지금의 페르난도라도 충분히 프랑수와 1세를 능가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알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말씀이군. 그럼 마르가레테는?'
'셋 중에 가장 위험한 정치가라면 당연히 마르가레테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 이상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노령입니다. 오늘의 카알 황제를 있게한 은인이자 훌륭한 정치가이지요. 스페인에겐 정말로 커다란 축복인 위대한 여성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적에게 존경까지라........ 가서 만나 보겠는가?'
'하나같이 유럽 최고의 황족분들 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자네가 찾아가면 기꺼이 만나 줄것일세. 더 이상 분쟁이나 전쟁이 없었으면 한다고 중재에 나서주지 않겠는가?'
'저는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른........ 아주 먼 동양에서 흘러 들어온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자유인이라고는 하나 카톨릭 왕국에서 보자면 해괴한 이교도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처지로 어떻게..........'
'베네치아 상인 조합의 훌륭한 장사꾼이 아닌가? 저들이 그렇게 원하는 거울과 유리 공예품을 자네를 통하면 살 수 있는데도? 거기에다가 아주 훌륭한 추천장까지 소지를 한다면 저들 모두가 자네를 만나 줄것일세.'
'초청장이라면? 신성로마제국에서 통할 추천장이 도대체.........'
'카알은 부친으로 부터 스페인을 물려받을 왕족의 혈통을 선물 받았네.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 정신병에 시달렸지. 아버지 필리페는 스페인을 물려받아 부루고뉴를 떠나면서 아직 어린 카알을 데려갈 수가 없었지. 그래서 여동생에게 아들의 훈육을 부탁하게 되었으니 바로 마르가레테 고모인 것이지. 마르가레테는 카알에게 은인이기도 하고 어머니이기도 하지. 고모는 조카에게 어려서 부터 군주로서의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네. 여러 외국어에서 부터 정치학 외교학 철학 인문학을 골고루 가르쳤지. 훌륭한 사람들을 개인 가정교사로 초빙했네. 마르가레테가 가장 공을 들여서 초빙한 가정교사가 누구였는지 자네는 아는가? 신학과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쳤던 사람이 바로 에라스무스 일세.'
'에라스무스 선생님이 카알 황제의 스승이었다고요? 선생님은 지금...........'
'자네가 이곳에서 약속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네. 지난 이틀간 나는 에라스무스 선생과 유럽의 정세와 신.구교 간의 갈등 문제와 자네에 대해서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네. 마키아벨리가 석방된 것도 포함해서 말일세.'
'그분의 석방 소식도 벌써 아시고 계셨단 말씀이십니까?'
'정보란것이 본래 시간을 다툴수록 귀하고 값진것이 아닌가?'
'제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십시요.'
'피렌체에 자네가 인도한 교역 물품은 예정대로 교황에게 전달 될 것이네. 밀라노가 노렸던 물품도 예정대로 베네치아 선박을 이용해 스페인으로 카알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것이야. 그리고 이 일은 여기서 그대로 가라앉아 잊혀질 것이네. 다만 스페인으로 가는 배편은 아주 천천히 이동해 충분한 시간을 벌것이네. 그리고 그 시간은 자네를 위한 것이 될것이고......... 자네는 육로를 통해 리베리아 반도로 가 주시게. 마리오 살비니가 성지 순례자로 위장해서 자네 뒤를 쫓으며 지켜줄 것이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그가 챙겨줄 것이며, 오가는 소식 또한 그를 통해 보내고 받게될 것이네. 그의 아버지는 베네치아의 선원이었고 어머니가계는 포루투갈의 상인이었네. 외조부가 리스본에 생존해 계시다네. 현지 상황이나 의사소통 등에서 그가 크게 힘이 되어 줄 것일세..
'물품을 본래대로 보내줄 것이라면 그냥 배편으로 보내시면 될 것을, 지연을 시키면서 까지 저를 육로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정탐을 하라는 뜻일세.'
'저에게 첩자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첩자가 되어 첩보를 올리라는 말은 아닐세. 자네는 그냥 평소처럼 장사를 하는 것이야. 장사를 하면서 보고 느낀것을 길드에 보내는 보고서 처럼 몇자식 적어주면 되는 것이야. 그래야 의심 받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몬티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에라스무스 선생께서 자네를 추천하는 추천장을 써 줄것이야. 그것을 가지고 부르고뉴로 가서 마르가레테를 만나게. 그리고 이번에 밀라노의 간계로 인해서 크게 어려움을 겪었으나 차질없이 물품은 보내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면 되는 것이야. 장차 밀라노에 대해서 징벌을 가하던 안하던은 상관이 없네. 다만 모든 정황을 확실하게 밝히고 그때문에 시간에 차질이 생기는 것에 말썽이 생기지 않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하게. 혹시 고모가 조카에게 당부하는 편지라도 적어 자네편에 보낼지 알겠는가? 그러면서 거울도 팔고 유리도 팔고 도자기도 팔고 장사를 하면 되는것이야? 주문서에는 거래 당사자인 마르가레테의 건강이나 근황이나 부르고뉴의 분위기를 좀 첨가해주면 되는 것이고..........다음에 독일을 지나면서 페르난도를 만나 다시 똑 같이 행동하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가서, 그때쯤 도착하는 베네치아 상선을 만나서 카알에게 가 물품을 전달하고 추가 주문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게 다야.'
'그러니까........ 멀리 스페인까지 삥 돌아가서 물건 건네주고 새로 주문 받아서 배를 타고 돌아온다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다른건?'
'그게 다야. 그러고 돌아오면 돼. 다만.........'
'다만 이라니요? 아직 뭔가가 남았군요. 그렇지요?'
'만약에 말일세. 만약에......... 마르가레테를 만나고 페르난도를 만나고 마지막에 카알을 만나고 났는데 말일세......... 이거 영락없이 또 한번 이탈리아로 치고 들어 올 기세더라 이러면........ 당장 프랑스를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이러면...........'
'그렇게 되면......... 어떤 방책이..........'
'셋 중에 하나를 죽이면 당장 전쟁은 안벌어진다니까? 아무나 하나를 죽여.'
'차라리 지금 여기서 제 목을 가져 가십시요.'
'전쟁은 벌어지겠는데........ 누구도 죽이지도 못하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말씀해 주세요.'
'그런 상황이다 싶으면....... 선장이 자네에게 봉투 하나를 은밀하게 건네 줄것일세. 그 봉투를 가지고 스페인을 벗어나 포루투갈로 가게.'
'포루투갈이요?'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동봉하는 서신에 자세하게 알려 주겠네. 포루투갈에서 한 사람을 만나면 되는 일일세.'
'그게 전쟁을 막는 방법입니까?'
'막지 못했으니 피해는 줄여봐야 하지 않겠는가?'
'포루투갈이 스페인의 후방을 들이칠 군사력을 갖추고 있겠습니까?'
'벌써 깨달았구만. 오랜 세월동안 스페인은 끊임없이 포루투갈을 억압하고 내정까지 간섭해 왔네. 카알 황제도 장기간 자기 영토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그나마 그동안은 고모가 국제 여론을 무마시키려 애쓰고, 공백이 생긴 스페인을 동생인 페르난도가 잘 다독거려 주었었지. 스페인 국민들의 페르난도에 대한 신망은 카알에 못지 않네. 그런데 요즘들어 독일 백성들의 지대한 관심이 페르난도에게 집중적으로 쏠려있단 말이네. 혹시나 페르난도가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를 염려하고 있다네. 이런 상황에서 카알이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넘어 온다면......... 포루투갈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침공한다면.......... 독일 백성들이 페르난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카알 황제는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포루투갈은 신성로마제국과 혈연이 얽혀 있어서 쉽게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엔 그러했지. 하지만 대항해 시대를 맞이해서 남미의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막대한 부가 쏟아져 들어왔고 군비도 확충 되었다네. 그리고..... 그럴만한 능력을 겸비한 새로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다네.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네. 때가 되면 알게 될것이야.'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에라스무스 선생께서는 지금 두오모에 계시네. 자네가 온것을 아셨을 것이야. 가서 만나보게. 우리는 저녁 식사때나 다시 모여서 논의를 좀 더 해보기로 하고....... 내일 아침에 자네는 출발해야만 할걸세. 밖에 나가면 살비니가 이제부터 모든 길을 안내해 줄것일세. 저녁에 만나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고딕양식의 건축물은 당연히 밀라노 대성당이다.
가히 그 웅장함과 화려함은 더 말할것도 없이 세계적이다 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고딕 건축물로 밀라노 대성당을 최고로 꼽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밀라노 대성당은 매너리즘적인, 너무나 지나치리만큼 화려함에만 치우치고 인위적인 멋의 과시에만 중점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적어도 내 주관하에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고댁 건축물로 (시에나 대성당)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즈음에서 나는 시에나 대성당과 너무도 닮은 또 하나의 고딕 건축물을 떠올리게 된다. 하여 (이탈리아 최고의 고딕 성당은 시에나 대성당) 이라고 전제 하면서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고딕 건축물은 오**** 대성당)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여 곧 (오****토 성당) 편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기로 하고 대충 시에나 대성당을 넘어가기로 한다.
비가 멈추기는 하였어도 세찬 바람이 계속 불어대고 오늘따라 쌀쌀하게 느껴지는 체감온도 덕분에 시에나 방문은 다소 힘에 겨웠다.
못물에 몸살 기운까지 펴지기 시작했다.
하여 산 도미니코 성당을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했고, 교황청을 아비뇽에서 현재의 바티칸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성녀 카테리나의 집은 골목 어귀에서 그만 아쉽지만 돌아서야만 했다.
터르미니 거리를 통해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의 처음 보는 악기가 매우 이채로웠다. 신기한 소리가 난다. 연주하는 여자도 여행자 이리라. 선뜻 1 유로로 감사를 표하고 마테오티 광장에 도달할 즈음에 오면서 보아두었던 예쁜 마켓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들어가 사진들을 살펴보니 아마도 중세때부터 두오모와 성당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모두 공급하던 그런 장소로 느껴졌다. 아주아주 다양한 품목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스페인의 하몽을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슈트라 부르는데 맛도 만드는 방법도 거의 똑 같았다. 다만 한쪽은 돼지 뒷다리의 허벅지 부분만을 사용하고, 한쪽은 발목에서 허벅지를 모두 사용하는 점만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와인과 포도와 하몽이 아니겠는가?
정말로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시에나는 내거 머무는 거점이 아니었던 이유로 그날 나는 끝내 시에나에서 프로슈트 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쪽 코너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따끈한 빵과 따끈한 카푸치노로 허기를 때우기는 했다.
다음 시에나를 다시 오게될 대에는 꼭 이곳에서 시에나 프로슈트를 먹고야 말리라...........
오! 마이 갓!!!
시에나 여행을 마치고 피렌체로 돌아오는 길.
교통체증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전유물인줄 알았다.
동남아의 교통체증이란 때가 되면 행위예술처럼 저절로 신기하게 술술 풀려가는 법인데, 피렌체 입구에서의 체증은 대한민국을 방불케 한다.
이거 이거~~~~~~~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저만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코 앞이 버스 터미널인데......... 걸어가도 벌써 갔겠는데........ 꼼짝을 안한다.
미티미티.
'집 나오면 쌩고생' 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난다.
어디 그뿐인가?
씨잘데 없이 좋은 기억력은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 했던 여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했던 (인페르노)에서의 한 장면을 기어코 떠올리고 말았다.
이런 기억력은 이제 떨어져도 되는데........
ㅎㅎㅎ
이렇게 시에나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겠지...........
----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피렌체를 떠나 (오르비에토 여행)으로 이어가겠습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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