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의 세계 : 구심력보다 더 커지는 원심력
스페인은 유럽 내 최고 부자 나라는 아니지만, 축구에서만큼은 레알(=Royal)마드리드의 호날두나 FC바르셀로나의 메시처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상대방 지역 팀에는 결코 질 수 없다는 자존심, 지역갈등 때문이다. 국토가 넓지 않은 벨기에에서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장관을 두 명, 즉 지역별로 각각 한 명씩 두고 있다. 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뿌리 깊은 갈등 때문이다.
한 동안 세계는 미국제국, 중국제국, 유럽연합처럼 거대한 정치·경제 공동체로 통합해 나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벨기에, 스페인, 코르시카, 쿠르드, 신장 위구르처럼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한 지역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보호무역을 강하게 주장하는 미국의 트럼프나 중동의 IS처럼 공동체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영국의 EU탈퇴(Brexit)에 이어 프랑스도 떨어져 나가면서 유럽연합이 붕괴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2. 중동發 원심력 강화 : 무지와 불관용이 증오, 분노, 배타를 초래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하느님(여호와=알라)을 믿지만 예수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다. 기독교에서의 예수는 여호와라는 신성(神性)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성(人性)을 모두 가진 어떤 존재(성령, 말씀의 주체?)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이런 삼위일체설을 믿지 않는다. 삼위일체설은 로마시대의 니케아 공회에서 결정되었다. 니케아 공회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데에는 로마제국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 로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신들을 섬기는 나라에서 출발했다. 다신교 나라였으므로 이웃 국가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이민족들이 믿는 신에도 관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통일성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유일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예수는 당시 세계 유일의 일신교이자 민족 종교였던 유대교의 폐쇄성을 비판한 실존 인물이었다. 로마는 예수를 통해 개방성 - 기독교의 초기 이름인 "catholic"은 “열린 교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과 유일신 사상을 동시에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기독교를 공인하되 삼위일체론을 채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랍인들은 유일신 체계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예수에게 신격을 부여해야 할 만큼의 정치적 필요성은 없었다. AD 600년경 부자 미망인과 결혼한 15세 연하남인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는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들었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알라(하느님)는 한 분이시고 그 이외의 신은 없다”. 즉 예수는 신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신의 사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삼위일체설에 대한 부정을 핵심교리로 하여 탄생한 이슬람교는 아랍 세계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그러다가 무함마드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둘로 갈라진다. 수니파는 선출을 통해 후계자를 뽑는 방식을 지지하는 집단이다. 이들에게 후계자는 “앞선 자”라는 의미일 뿐 종교 지도자라는 의미는 없다. 오늘날 수니파는 전체 이슬람교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반면, 시아파는 후계자 자격은 핏줄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룹이다. 그들에게 후계자는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종교 지도자이어야 한다. 오늘날 시아파는 이슬람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나중에 생긴 종교인만큼 좀 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슬람교는 서구의 입장에서 볼 때 전쟁과 테러의 대명사다.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서방이 멋대로 분할한 국경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유럽 정치세력들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면서 임의로 국경선을 만들었다. 각 국경선 내의 정치 세력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공화국이나 왕국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일머니를 독점할 수 있는 독재 체제로 흘러갔다. 부족, 문화, 종교 계파 간 갈등은 국경선과 관계없이 복잡하게 나타났지만 서구에서는 자신의 입장에 맞는 독재 체제를 지원했다. 이슬람 저항 세력들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화합할 수 없는 종교관을 가진) 서구 세력의 전횡에 대한 분노를 부추긴다. 종교 갈등은 명분에 불과하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무지와 불관용의 충돌이다.
3. 프랑스發 구심력 약화 :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증오와 분노로 표출
프랑스는 시민의 힘으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최초의 나라이고,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보다 먼저 사회주의 정부(파리 꼬뮌)를 세운 나라이기도 하다. 또 프랑스는 (바쁘게 사느라 점심도 대충 때우며 사는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삶 자체가 예술(Savoir vivre)인 나라이기도 하고, (公私가 구별만 된다면) 공인인 대통령의 사생활조차 철저히 지켜주고자 하는 자유와 똘레랑스의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혼자 있으면 에스프리(≒사유)하고 둘이 있으면 사랑을 하고 셋이 있으면 혁명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에는 닭, 아스테릭스, 마리안느가 있다. 닭은 프랑스판 세종대왕, 즉 낭트칙령으로 종교 갈등을 해소하고 프랑스 경제부흥을 일으켰으며 연인만 50여명을 거드린 앙리4세가 “매주 일요일에는 국민들이 꼭 닭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말에서 유래되어 프랑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아스테릭스는 미국의 디즈니 만화 등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크게 유행한 프랑스 만화이다. 아스테릭스가 자국 내 인기를 넘어 프랑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미국 문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한다. 마리안느는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녀는 자유, 평등, 박애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상으로서 그녀가 쓴 프리기아 모자는 니카라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국기와 미국 상원의 문장(紋章)에도 나타나 있다. 프랑스에서는 몇 년마다 한 번씩 마리안느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을 뽑는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안느로는 1968년에 선정된 브리짓 바르도와 2000년에 마르안느로 뽑인 소피마르소가 있다. (주 : 잔다르크가 왕실 수호에 앞장선 우파 여성상이라면 마리안느는 민중의 자유 수호에 앞장 선 좌파 여성상이라고 한다)
브리짓 바르도는 보신탕 문제로 한국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한 때 프랑스에서 모던(modern)함과 동물 보호의 선구자, 여성 해방운동의 상징이었다. 전위적이고 육감적이며 자유로운 여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녀는 1973년 40세 되던 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다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과거와 너무나도 달라졌다. 그녀는 反이슬람주의, 反동성애, 反글로벌화, 反유럽연합, 反국경개방, 反다문화, 反다민족공존주의자로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유럽도 브리짓 바르도와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극우정당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전선이 25%의 지지를 얻어 제1당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브랙시트를 주장한 영국독립당(UKIP)이 28%의 지지로 제1당이 되었다. 덴마크에서도 극우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브리짓 바르도와 프랑스의 변신에는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숨어 있다. 프랑스는 산업 경쟁력 약화로 전통산업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문에 고용개혁은 자꾸 늦어지고 포퓰리즘이 설친다. 정부는 빚이 많아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다. 일자리를 잃은 분노와 증오와 배타는 극우주의의 득세로 이어진다. 많은 이들은 프랑스의 EU 탈퇴(FREXIT)와 유럽제국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4. 한국의 내재된 원심력
최근 일본에서도 극우세력인 아베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 하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 현상의 여파다. 불안과 공포는 분노와 증오로 이어진다.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혐한” 분위기도 그 중 하나다.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가 통일되는 일일 것이다. 한국은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의 경제·외교적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는 한국의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국의 통일을 싫어하는 것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복잡한 국경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은 동북쪽 국경에 통일 친미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싫어한다. 미국은 분단된 상태의 확실한 친미정권이 통일된 후의 변심 가능한 친미정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꽃놀이 패, 즉 다양한 외교 카드가 가능한 분열 구도를 선호한다. 6자 회담국(남한,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들은 남북의 통일보다 분열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내부적으로도 분열의 불씨, 즉 분노와 증오의 폭탄을 안고 있다. 20년 전까지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통해 안정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못한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 증가, 대졸자의 중소기업 기피로 인한 외국인 노동자 수입 과정에서 외국인이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그들도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5. 마치며
이원복 교수님은 독일 유학 중 중고차이기는 하지만 자동차 6대를 갈아치워야 했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visual communication”이라는 전공을 익히기 위해 닫힌 도서관보다는 유럽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경험하셨다고 하네요. 현직 총장으로 많이 바쁘실 텐데 귀쫑을 사랑하는 임광기 고문님의 마수(?)에 걸려 결국 강의를 수락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고양 시민들은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우리는 분노와 증오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 ,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이러려고 어른이 됐나, 하는 자책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도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보지 못해 궁금했는데 강의 내용을 이렇게 자세하게 정리해주셔서 궁금증이 풀렸네요. 감사드립니다. 저부터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후기를 썼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직접 와서 들으시는 게 더 좋죠. ^^
고주백님 훌륭한 강의 정리 감사^^```
진호님의 이원복 총장님 강의내용 잘 읽었습니다. ^^
진호님 덕에 복습시스템이 계속되길 희망하며 … ^^;;;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되고 보니 이원복총장님 강의 내용이 더 깊이 새겨지네요.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