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은 오늘도 바스티유의 돌멩이들을 적시며 흐른다(신영복)
-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 과거의 좌절, 실패를 기억하는 방법은 어떠해야 할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인류사가 겪었던 모든 혁명의 모든 국면과 명암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사회 모든 계급의 원망과 소망을 남김없이 분출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장대한 드라마로 진행되었습니다. 음모와 배신, 정의와 공포, 산악과 평원... 이 모든 것이 뒤엉켜 달리는 산맥의 질주였습니다. (p. 136)”
“콩코드 다리는 바스티유 감옥을 헐어 그 돌로 만든 다리입니다. 감옥의 벽이 되어 사람을 가두고 있던 돌들이 이제는 사람들을 건네주는 다리로 변해 있다는 사실에도 혁명의 의미는 담겨 있을 것입니다..”(138)
“혁명이란 당신의 말처럼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미지의 작업입니다. 따라서 인식의 혁명이 먼저 요구됩니다. 낡은 틀을 고수하려던 특권층이나 그 낡은 틀의 억압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인식은 확실한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특권층이나 농민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파의 구상은 당신의 말처럼 관념적으로 선취된 이상과 그 이상에 도취되고 있는 정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중략)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은 철학이 없고 권력 의지만 있는 힘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또 한 번의 교훈임은 물론입니다.”(139)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 이라는 시구가 생각납니다.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추락이 이상의 예정된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에 추락해야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픕니다.”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의 세례를 받았는가에 의해서 판가름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2300만명의 모든 프랑스 국민이 함께 일어선 프랑스 혁명은 실패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 점철되어 있는 숱한 좌절을 기억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기억하는 방법을 바꾸어 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입니다.”(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