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중과 물숨(강여울)
오늘 새롭게 만난 단어다. ‘물마중과 물숨’이다. 물마중은 마중물을 잘못 표기한 것이거나 같은 말이지 않을까 했다. 어릴 때 마당에 펌프가 있었다. 펌프질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 했다. 그러나 물마중은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들을 갯바위 사이에서 마중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해녀들이 평균 서너 시간씩 바다에서 채집한 해산물을 망사자루에 모으는데 그 무게가 이삼십 킬로그램은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해녀들이 고령인데다 몇 시간의 물질로 지친 상태에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져 다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때 물 밖에서 물마중 나온 이를 보면 반갑고 힘이 나 피로를 잊게 한다.
물마중이 반갑고 힘을 주는 말인 반면 물숨이라는 말은 물마중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물숨은 ‘떨어지거나 내뿜는 물의 힘’으로 나온다. 그러나 제주도나 해녀들에게 물숨은 ‘물속에서 참는 숨’이란 뜻이다. 물속에서 숨을 조금만조금만 하며 참다가 숨을 쉬는 순간 물을 많이 마시게 되어 죽는다는 경고의 말이다. 욕심을 부리다 생명을 잃지 말라는 말이 된다.
물마중과 물숨, 나의 삶은 어느 쪽일까 생각해본다.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주어진 유능성과 기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는 문장 앞에 한참 서성거렸다. 나에게 주어진 유능성과 기능성은 뭘까? 글쓰기와 어르신을 섬기는 마음이 맞다면 나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 못된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백 날 쓰기가 나의 유능성과 기능성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쓰레기일지 모르는 이 쓰기가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쌓여서 나의 글이 점점 더 좋아지게 하지 않을까. 꿈을 꾼다. 나의 삶이 이 사회에 어떻게든 선한 영향력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오늘도 이렇게 몇 줄이든 썼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어쨌든 나는 웃음레크 강사로는 그래도 닮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또 나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웃는 어르신들이 계시고, 갈 때마다 또 오라고 해주시기에 또 힘을 얻는다. 기쁘고 감사하다. 다만 내가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글에만 올인 한 적이 없는 만큼 내 존재를 내가 떠난 후에도 증명해 줄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는 사실은 부끄럽다. 비록 글이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뒤죽박죽 두서없이 쓰는 이 백날 글쓰기가 내 문장력에 물마중이며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물숨을 경계하여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계속 쓰다 보면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듯 나의 문장도 생명을 갖게 되는 날 오리라.
첫댓글 '나의 유능성과 기능성은 뭘까?'
궁금하다 알고 싶다. 그래서 자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