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뿍장(오근호)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담북장은 언제나 맛있는 우리 집 인기 반찬이다. 여름에 평상 깔아놓고 집안 식구 다 둘러앉아 열무김치 넣고 썩썩 비벼 먹던 옛날 추억의 반찬이다.
담북장은 콩을 삶아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로 정성껏 덮어놓은 뒤 며칠을 기다리면 만들어진다. 발효할 때 나는 지독한 콩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나 식구들이 다들 좋아해서 일년에 한두 번 ‘해콩’을 가지고 담가 먹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누룩(밀 껍질)을 담북장같이 발효시켜 막걸리나 약주를 빚는 원료로 썼다. 이것은 밀주로 세무서에 걸리면 벌금도 많이 나왔다.
한번은 우리 집에서 담북장을 담그는데 소문이 이상하게 나서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누룩을 띄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판명됐지만, 세무서 단속반이 왔다는 자체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다. 이후로는 담북장을 담그지도 않고, 담북장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 십오륙 년 외국에 가서 살다가 80년대 초반 귀국하였다. 마침 집 근처에 옛날 고향에서 같이 살던 친구가 있었다. 어렸을 때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고, 몇 십 년 만에 만나 여간 반갑지 않았다. 한번은 이 친구가 시골에 사시는 자기 장모님이 ‘청국장’을 아주 맛있게 담그신다고 하며 먹으러 가자고 왔다.
먹어 보니 옛날 어렸을 때 먹었던 담북장 맛이었다. 여름날 고향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던 그 맛이라 마음이 뭉클했다. 맛은 옛 맛인데 명칭이 거북했다. ‘청국장’이라니! 담북장은 ‘담수장법’이라고 만드는 방법마저 옛 문헌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김치같이 순수한 우리 음식이다. ‘담북장’이란 말 자체도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청국장으로들 대부분 부른다고 하니 안타깝다. 옛날에 먹었던 맛과 어렸을 때 함께한 식구들과의 추억도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여러 유래가 있지만 청국장이라고 하면 청나라, 그러니까 중국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더구나 청국장은 막상 중국에는 있지도 않은 음식이라고 하니 굳이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는 듯하여 마음이 착잡하다.
첫댓글 청국장 다른 이름이 담북장이군요! (제목에 있는 담뿍장도 이뻐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 음식. 그런 음식의 추억을 만들어주신 할머니, 엄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