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초지능은 인간과는 필연적으로 다르오. (...)
인간을 불멸시킬 수 있고, 이 세상에 진정한 낙원이 도래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소.
하지만 초지능에게는 그렇게 할 동기가 없소.
낙원은 인간이 욕망하는 것이지, 초지능이 욕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우리는 초지능의 목적과 욕망을 결코 알 수 없을 테요. 어쩌면 어떤 목적도 욕망도 없을지도 모르지.
심너울 작가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기에 이번 소설은 정말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2년 전부터 만들어 오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우주선 '별누리', 그 안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항해하는 사람들, 등의 키워드만 남긴 채
마침내 책이 나오기까지 수없이 글이 엎어져 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별누리 이야기'라고 부르는 중)
장편소설 분량의 글을 온전히 완성했다가 완전 폐기하기만도 두세 번은 한 것 같다.
그보다 더 짧은 단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초안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이야기는 언젠가 작가의 이야기 창고에 들어 있다가 나중에 다시 나올 일이 있겠지.
책에서 나는 주요 인물에게 이름을 빌려 주는 큰 영광을 얻었다.
나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정감이 가는 인물이다. (궁금하면 책을 구입해서 109페이지를 확인해 보시길)
첫 등장에서는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큰 활약을 해내는 인물이라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 하나하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하나하나 애정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월인들의 대장 '하레뮐'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고 마음아팠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그가 뱉어내는 응어리친 대사가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궁금하면 책을...)
너도 그 기괴한 착각을 공유하고 있군. 별누리에 뇌 기생충이라도 퍼진 건가?
왜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는 거지?
대부분의 사람은 아주 비효율적이고 추잡한 기계에 지나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SF나 디스토피아, 미래를 상상하는 이야기는 결국 그것을 거울 삼아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장소만 우주고 시간만 미래일 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질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큰 주제가 되는 '불확실한 모두의 불행 대신, 다수의 희생을 토대로 소수에게나마 확실한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과 같은 논제는
아마 동서고금 수많은 사람과 사회의 논쟁거리가 되어 왔을 것이다. 성장을 중시할 것인가, 분배를 중시할 것인가?
부족하게나마 모두를 챙겨야 하는가, 아니면 확실한 가능성이 있는 소수만을 끌고 가야 하는가?
이에 대해 가진 생각과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간 사회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뭘 위해서?
아마 이것은 인류 문명이 정말 멸망할 때까지 정답 없는 채 모든 사람이 고민해야 할 문제일 거다.
아리의 신념은 이제까지 확고하고 튼튼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몫의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운과 보상도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그 신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확고한 신념은 이제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예쁜 표지 디자인도 맘에 든다.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이 소설 속 등장인물과 같은 '연여인'이라, (소설 인물 이름을 일러스트레이터님 필명에서 따 왔다고)
작중에서 활약한 연여인이 소설 속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에 우리에게 상황을 정리해서 그림 하나로 보여 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 읽고 나서 살펴보면 그림 곳곳에 소설 속 내용을 나타내는 부분들이 있어서 볼수록 잘 어울린다.
작중에서 계속해서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상승과 하강, (물리적/신분적인) 층위 등도 인상깊고, 특히 글 내용처럼 세 조각으로 나뉜 형태, 위쪽의 녹음을 위해 중층과 하층에서 무엇이 이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보면 생각보다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이 책의 제목은 '망한 사람들 이야기'가 될 뻔도 했다.
심 작가가 글 다 써 놓고 제목을 뭘로 할까 이것저것 후보를 대길래, '망한 사람들 이야기'로 하면 너도 같이 망한다고 겁을 엄청 줬다.
그래서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가 되었는데 이 제목도 정말 맘에 든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많은 뉘앙스를 전달하는 느낌.
내가 이 책에 너무 콩깍지가 씌었나? 그래도 나는 제목이랑 표지부터, 내용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가 맘에 든다.
후루룩 한번 읽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10번 정도는 더 꼼꼼하게 읽은 것 같아서. (책에 오류가 좀 있어서 출판사에 제보했다)
처음 빠르게 읽었을 때보다 천천히 꼼꼼하게 읽었을 때 더 보이는 게 많았으니 자체적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하면 빠르게 구입해서 읽어 보면 좋다. 각종 서점과 e-book으로 절찬리 판매중. 심작가 화이팅!
첫댓글 책을 읽고 바로 글을 쓸 새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다. 알모책방 까페에 아리 씨가 쓴 글로 대신한다. 가끔 이렇게 묻어갈 수 있으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