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멀미, 쑥부쟁이(구효서)
소설가 구효서
꽃멀미든 사랑해든 고작 세 글자로 어떻게 모든 사람 각각의 혼란스럽고 까다롭고 뒤숭숭한 감정과 다단한 느낌을 표현해낼까 싶지만 언어라는 말에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꽃멀미든 사랑해든 고작 세 글자로 어떻게 모든 사람 각각의 혼란스럽고 까다롭고 뒤숭숭한 감정과 다단한 느낌을 표현해낼까 싶지만 언어라는 말에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꽃멀미라는 말이 있어 나는 한껏 꽃멀미를 느낀다. 그 말을 알기 전에는 아름다운 꽃과 꽃의 무리를 보아도 벅차고 어지럽다가 끝내는 답답해져 버리고 말았을 뿐인데 그 말을 알고부터 아, 꽃멀미 난다! 외치면 어딘가 남김없이 후련해지곤 한다.
사랑해라는 말이 없었다면 그 복잡 미묘한 환희의 감정을 어떻게 달랬을까 싶어 아찔해지다가 사랑해라는 말이 있어 정말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멀미라는 말도 내겐 그러하다.
꽃멀미든 사랑해든 고작 세 글자로 어떻게 모든 사람 각각의 혼란스럽고 까다롭고 뒤숭숭한 감정과 다단한 느낌을 표현해낼까 싶지만 언어라는 말에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세 글자로 되었다는 것은 다만 그릇의 모양일 뿐 그릇의 크기와 색깔은 한이 없기 때문이다. 꽃멀미도, 사랑해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억양은 물론 어조와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고 보면 세상의 모든 꽃멀미와 사랑해라는 말은 엄격히 말해 매번 처음 발화되는 말일 수밖에 없다.
독자에게 사인을 요청받을 때마다 반드시 함께 그려주는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꽃 쑥부쟁이다. 그러나 쑥부쟁이는 보기 드물어 알아보는 사람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구절초나 벌개미취와 자주 혼동한다. 그러니 쑥부쟁이 꽃멀미는 좀처럼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이태 전 꼬막재와 규봉암, 서석대와 원효사로 이어지는 무등산 순환 등산로에서 일곱 시간 반 동안 끊이지 않고 어지러이 쑥부쟁이를 만났다. 꽃멀미라는 말을 몰랐다면 과연 그토록 지독한 꽃멀미를 오래오래 느낄 수 있었을까.
지독하다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올해 9월 불갑사와 선운사에 다녀온 지인에게서 꽃지옥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곳 사찰 경내에 흐드러진 꽃무릇에 꽃멀미를 느꼈다는 뜻이었을 텐데 꽃지옥이라는 그의 말에는 모든 걸 무릅쓰고라도 언제든 얼마든지 그런 곳에 가고 싶다는 주문과 지독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말에는 주문이 담기기도 하여 말의 뜻에 신묘한 힘을 더할 때도 있으니, 사랑한다 말하면 사랑이 싹트고 꽃멀미 난다 말하면 후련한 만끽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것이다. 꽃멀미라는 말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