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고교학점제는 고교 운영 체제 혁신의 하나로,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졸업요건과 수업·평가 방식의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의미가 교육 현장에서 실천되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교육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고교 교육 혁신 방향을 통해 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2025년에는 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시기로 새로운 제도에 대한 도전을 통한 모종의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의 경과와 의미,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성공 조건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의 경과와 의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를 말한다. 고교학점제의 개념 정의를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학생의 과목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학사 제도의 변화를 비롯해 수업 및 평가, 그리고 교육 여건의 정비에 이르는 학교 전반의 변화를 촉발하는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1년 8월 23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2025년 일반계고 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계획」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학점제 추진 단계를 제시하여 전면 적용까지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학점제 제도의 기반을 마련하는 단계로, 관련 법령 및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학교 간 공동교육과 학교 밖 교육 운영을 위한 시·도 공통 지침을 마련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2022년에는 고교학점제 운영 체제로 전환하는 단계로, 단위학교의 학점제 운영 준비를 지원하고, 교원의 학점제 운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하였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시기로, 2023년도 고교 1학년부터 교육과정에 학점제를 일부 적용하고, 연구·선도학교 중심으로 운영되던 최소 학업 성취수준 보장 지도를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5년에는 고교학점제의 단계적 이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교원 업무 경감을 위한 방안을 현장과 함께 마련,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 지원,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미래형 대입 방향을 마련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의 여러 방면에서 개혁을 요구하며, 단계적 이행을 통해 본격적으로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고등학교에서 학점제를 전면 시행한다는 것은 고등학교 학교 운영과 제도의 전반적 변화를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의 과목 선택 범위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수・학습과 교육 환경의 변화를 요구하는 고교 교육 혁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따른 다양성 교육이자 학생의 성장 가능성도 고려하여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학점제의 전면 시행은 학생의 필요에 기반한 교육 환경 조성의 체계화가 기대됨과 동시에 전면 시행에 따른 고충과 과제도 가져올 것이다.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과목 선택에 기초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구체화한 정책으로, 전면 도입은 전통적으로 획일화된 교육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단계적 이행 계획을 거쳐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가 고교 교육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는 교육의 세 주체로 학생, 교사, 교육과정과 이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교육을 둘러싼 환경적 측면으로 구분해 살펴보고자 한다.
- 학생의 자율과 책임의 강화: 학생이 자신의 필요와 진로에 맞는 학업 설계를 통해 과목 선택 및 이동 수업의 증가, 담임 역할의 변화 등 학생별 교육과정 운영에 따른 학생의 자율성 및 책임감을 제고할 수 있다.
- 교사의 역할 변화와 업무 부담에 따른 대응성 강화: 교사는 선택과목에 대한 학생의 요구 분석 및 수업 개선, 성취평가 전문성, 다과목 지도 역량 제고, 진로·적성에 따른 학업설계 지도 및 상담 등 담임 역할의 변화에 따른 대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것은 교사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업무 경감을 위한 새로운 교원 수급 기준을 마련하고, 전문성 지원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 체제로 변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과목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학생의 진로·적성에 따른 학업 설계 지도가 이루어지며, 학생이 희망하는 과목 이수를 최대한 보장하는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함으로써 학교가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학사 운영 구조와 달리 학생 주도형으로 변화가 된다.
- 학생 수업 및 평가의 내실화 도모: 선택과목 개설의 취지, 학생의 수요를 반영한 수업 설계, 배움 중심의 수업, 주제 중심의 교과 융합 수업, 블록 수업 등 다양한 수업을 구현할 수 있도록 개선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업과 연계한 과정 중심 평가를 강화하고 학생의 성장 과정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충실하게 기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 학점제형 학교 공간의 조성: 학생들이 선택 과목별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교과 수업이 가능한 교실 환경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수업 개설을 위한 가변형 교실 조성이 요청된다. 또한, 공간과 시간 측면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이나 휴식·모둠학습 등 복합적으로 활용가능한 홈베이스 조성과 도서관 활동 확대 등의 교육 여건에 대한 재구조화를 요청한다.
-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유형의 다양화: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진로를 고려하여 선택과목을 운영하는 것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희망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불가하여 학교 내 개설이 어려운 경우, 인근 학교와의 공동교육과정, 지역 내 교육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교육과정 개설 등을 통해 교육의 장을 확장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 교육격차의 발생: 농산어촌 지역 등 학교 인근에 활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 학생들의 선택과목 폭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교육에서의 기회가 불균등하게 될 여지가 있다. 이를 위해 순회 교사나 중・고 교원 겸임 활용 등으로 포함한 교원 추가 배치, 지역사회와 학부모 등의 협력적 학교 문화 조성 등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노력도 함께 하여야 할 것이다.
고교학점제 성공 조건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조건은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대응성 강화가 될 것이다. 중학교에서 진로연계학기 등의 충분한 활용을 통해 사전에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를 높이고, 고등학교에서는 내재적 조건과 외재적 조건으로 구분해 내실 있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내재적 조건은 교육과정, 교과서, 수업, 평가 등 직접적 교육활동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외재적 조건은 교사나 직원 등 인적 자원과 시설이나 공간 등 물적 자원을 통칭하는 간접적 교육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구분으로 보면, 고교학점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것으로 내재적 조건에 해당된다. 교육과정은 교육활동에서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육과정을 교육내용의 선정과 조직이라는 탈제도적 맥락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법이나 규칙 등에 근거해 마련되고 실천되는 제도적 맥락을 고려하게 되면, 외재적 조건을 배제하기는 어렵게 된다. 교육과정의 실천은 외재적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공급자 중심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능동적 학습자로서 학생의 수요나 필요를 존중하는 교육의 구현과 교육과정 이수에 대한 책무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에 추진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서 학생 수요를 존중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요에 대응하는 내용인 내재적 조건과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 환경(여건)인 외재적 조건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교육활동의 내재적 조건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조건으로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을 토대로 운영을 위해 수업을 한다고 할 때, 해당 과목을 담당하는 교원과 시설, 실험・실습 기자재 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되면 학생의 교과 선택권을 제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학습에 대한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내재적 조건에 대응한 외재적 조건이 정비되어야 비로소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은 내재적 조건에 부합하는 또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외재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하여야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제까지 교육과정 분야에서 내재적 조건에 대한 연구에 비해 외재적 조건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연구와 논의의 불균형은 교육 현장의 실제에서도 교육과정과 행정이 별개로 움직이거나 행정 중심의 학교 운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내재적 조건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지원·촉진하기 위한 외재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학생의 성장에 유의미한 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교학점제의 성공 조건은 공급자가 주도하는 행정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에서 수요자의 요구에 기반한 교육과정 중심의 행정을 구현하고자 하는 교육체제의 혁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