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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동화(童話)’를 찾으면,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이야기라는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을 전제로 해서 동화는 아름답고 순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모순되고 그릇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단지 동화라는 이유만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게 그려야만 하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그릇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른바 ‘잔혹 동시집’을 출간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해서 충분히 그러한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시를 쓴 초등학생은 물론 그 부모와 출판사까지 무차별적인 비난에 노출되어, 결국 그 시집을 폐기처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초등학생이 어떻게 그런 시를 쓰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거꾸로 보면 학교와 학원 그리고 성적으로 재단하는 현실이 더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를 그리라고 하지만, 이미 초등학생들에게조차 그만큼 잔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막무가내로 비난을 퍼붓는 대중들의 반응은 흡사 ‘광기’에 가까운 것이며,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더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왜 아이들을 어른들의 관념에 맞추어진 세상의 틀 속에 가두려고만 하는 것일까? 대중들의 비난에 노출된 그 학생이 앞으로 얼마나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알아주지 못하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과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내용이 떠올랐다. 제목은 <동화경제사>이지만, 실상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모두 동화라고 부를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 역사’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동화로 알고 있는 작품들은 창작될 당시의 작가와 세상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작품 속의 의미를 추출해서 그것이 자본주의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때로는 ‘돈과 욕망’의 문제가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15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각각의 작품에 드러난 소재와 의미를 중심으로 경제와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이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들에게 익숙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니, 나조차도 작품 그 자체를 본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된 내용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으며, 원작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을 좇아 그 내용과 줄거리를 더듬어 보면, 작품 속에 창작 당시의 사회 현실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한겨레’ 신문의 토요판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다시 정리하여 이 책으로 묶어냈다고 한다. 내가 정기구독 하는 신문이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연재 당시에는 그리 집중해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 일주>에는 당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욕망이 깃든 대규모 토목공사를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내기로 세계 일주에 나서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미 수에즈운하와 미국 횡단철도 등의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이기에 가능했으며, 애초에 작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세계 일주’라는 소재를 다룰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산업혁명기 도시의 빈민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 성냥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자본의 욕망이 숨어있다고 한다. 특히 안데르센이 소녀의 개인적인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는 빈곤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여 대비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몇 작품만을 예로 들었지만, 실상 대상 작품들은 단지 현실을 동심에 맞춰 아름답고 순수하게만 그려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의 줄거리와 의미들은 헐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보다 환상적으로 각색된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원작이 아닌 각색된 내용을 통해서,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만 기억되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비롯하여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비록 번역본이나마 원작으로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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