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다(네이버지식백과)
집터에는 터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남을 비방할 때,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욕을 먹을 때, 무엇을 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쓸 때 우리는 흔히 ‘터무니없다’라는 말을 쓴다. ‘터무니없는 거짓말’, ‘터무니없는 억지’ 등에 쓰인 ‘터무니없다’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이렇듯 ‘터무니없다’는 ‘허황하여 전혀 근거가 없다’의 뜻이다.
‘터무니없다’는 ‘터무니가 없다’라는 표현에서 주격의 ‘-가’가 생략된 뒤 축약된 어형이다. 그러므로 ‘터무니없다’의 어원 설명은 ‘터무니’가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나 ‘터무니’의 어원 해석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터무니’의 사전적 의미는 ‘터를 잡은 자취’이다. 이러한 의미는 ‘터무니’의 어원 풀이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터무니’는 일단 ‘터’와 ‘무니’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터’는 ‘터를 잡은 자취’라는 전체 의미를 고려하면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라는 의미임에 틀림이 없다. ‘터무니’의 어원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보인다.
문제는 ‘무니’이다. ‘무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 가지 정도의 어원설이 있다. 첫째는 ‘무니’를 단순한 접미사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접미사 ‘-무니’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는 ‘무니’를 ‘무어니’와 관련시켜 ‘터무니’를 ‘터니 무어니’가 줄어든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터’가 무엇을 세울 수 있는 자리, 즉 ‘근거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므로 ‘터무니’를 ‘근거니 무어니’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터니 무어니’라는 표현을 내세우는 것도 확실치 않거니와 이것이 줄어들어 ‘터무니’가 될 수 있는지도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셋째는 ‘무니’를 ‘무늬(물건의 거죽에 어룽져 나타난 어떤 모양)’의 변화형으로 보는 것이다. ‘무니’를 ‘무늬’로 보면 ‘터무니’가 ‘터의 무늬’ 즉 ‘터의 자취’로 해석되어 그 실제 의미와 부합된다. 그러나 ‘무늬’가 ‘ㅢ〉ㅣ’ 변화에서 비껴나 언제나 ‘무늬’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터무니’의 ‘무니’를 ‘무늬’와 직접 연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렇게 보면 ‘무니’의 어원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혹시 ‘터무니’를 ‘터’와 ‘무니’로 분석하지 않고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 분석하면 ‘무니’의 정체를 밝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사전에 ‘터무니’가 ‘터문이’로 표기되어 나오는 것은 ‘터무니’가 본래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지금 북한에서 ‘터무니’를 ‘터문’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터문’의 ‘터’는 물론 ‘자리’라는 뜻이다. ‘문’은 아마도 한자 ‘紋’이 아닌가 한다. ‘문’은 ‘무늬’와 같은 뜻이니, ‘터문’은 ‘터의 무늬’라는 뜻이다. 이것은 ‘터의 자취’라는 뜻과도 통한다. 이는 ‘터무늬’의 의미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같더라도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것과 ‘터무늬’의 변화형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설명 방식이다.
집이나 건물을 세웠던 ‘터’를 보면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의 흔적이 남게 된다. 바로 그것을 ‘터문’ 또는 ‘터문’에 ‘-이’를 결합해 ‘터무니’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의미한다. 주춧돌이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는 터의 중심이자 근간이다. ‘중심’이나 ‘근간’이라는 특성이 크게 강조되어 ‘터무니’에 ‘정당한 근거나 이유’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터무니없다’의 ‘터무니’도 그와 같다. 그리하여 ‘터무니없다’는 ‘허황하여 전혀 근거가 없다’의 뜻을 갖는다. ‘터무니’는 주로 ‘없다’와 결합된 ‘터무니없다’의 구성 요소로 쓰이지만, 아직 ‘없다’에 전염(傳染)되어 부정적 의미로 변하지는 않았다.
첫댓글 아하! 터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