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동물 전문 작은출판사 책공장더불어에서 나온 신간,
거기다가 관심이 큰 분야인 동물원 동물과 야생동물 보호 등에 대한 내용이라 빨리 읽어 보고 리뷰를 쓰고 싶어서 연휴가 끝나자마자 후딱 주문해서 읽어 보았다.
표지에 크게 써 있는 것처럼, 동물원에서 근무하던 수의사 선생님이 세계의 여러 동물원, 보호구역 등을 보며 보고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기록한 책이다. 사진도 정말 풍부하게 많이 수록되어 있어 여행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든다.
서점을 하는 우리 가족이 어느 나라에 가든 결국은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서점과 헌책방, 북카페로 홀린 듯 끌려드는 것처럼 수의사 선생님도 어디를 가든 그 나라의 동물이 있는 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방문하나 보다.
나도 너무 관심이 많고 궁금한 곳들인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나라 시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동물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 전문 보호센터 등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을 텐데 귀중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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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에는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으나,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열악한 사설 동물원이 하나 있다.
소위 말하는 '스타 동물'이 하나 있었는데 2010년대 이후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동물 학대나 열악한 시설 관련으로도 여러 번 뉴스에 나온 동물원이다.
초등학교 때인가 그 동물원에 갔을 때 웬 사슴 하나가 다리가 5개 달려있어서 엥?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상태에서 새끼를 출산하고 있어서 다리부터 나오던 새끼 사슴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다리가 여러 개로 보인 것이었다.
어린 나는 근처에 있던 동물원 직원한테 알려주었는데 그 직원이 기겁하며 허겁지겁 판때기 같은 걸로 우리를 가리던 게 기억난다.
그 이후 동물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사슴 우리 쪽으로 돌아오니까 새끼 사슴이 한 마리 늘어 있었다.
그 때는 어린 마음에 재미있고 신기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서 즐겁게 일기에 썼는데, 좀 더 큰 다음에 생각하니
분만일이 다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관리도, 격리 조치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수많은 관람객 앞에서
새끼를 낳아야 했을 어미 사슴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에 비해 열한 살 때 난생처음 떠난 해외 여행에서 방문한 하와이 동물원은 놀라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거기도 지금 기준으로는 수준 미달일 수 있지만, 말도 못하게 열악한 한국 동물원만 보다가 '동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조금이나마 동물들의 서식지 모양새처럼 갖추어 놓은 동물원을 처음 가 보았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사육장 유리를 등지고 앉아 있다가 등 뒤로 스윽 지나가는 재규어의 기색에 엄청 놀라 소리지르기도 하고(...) 높은 철조망으로 해서 원숭이들이 사람보다 높이 솟은 나무들 위에 몰려다니며 앉아 있다가 엄마 쪽으로 소리치며 뛰어내리는 바람에 기겁하기도 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는데도 그 때부터 하와이에서 봤던 그 동물원이 '이래야 되는구나' 하는 인상을 줬던 것 같다.
뒤늦게 한국 동물원들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000년대 초반 그 때 하와이에서 봤던 그 동물원만큼 와! 하는 동물원은 한국에 아직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와이와 한국의 기후 차이 문제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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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글 앞부분에서 여행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든다고도 했는데, 전문가가 쓴 책이니만큼 충분한 전문성이 돋보인다.
동물원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수의사로서, 그리고 동물과 자연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동물 관련 시설에 방문했을 때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은 아쉬웠는지, 만약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 해외에서는 어떤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사람들은 어떤 방면에 주로 집중하고 있는지 등등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는 게 좋았다.
막연하게 '해외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우리도 이렇게 하자'가 아니라(비전문가인 내가 열심히 희망만 하듯), 호주에서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자원봉사가가 이렇게 활동하고 정부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며(혹은 안 주며), 직원/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은 이렇게, 일반 시민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게 좋았다.
나처럼 관심은 크지만 실제로 정부나 시민사회에 어떤 부분을 요구하면 좋을지, 무엇부터 살펴보면 좋을지 잘 모르겠을 때
이 책에 소개된 여러 나라 여러 시설의 운영 방식을 살펴보며 아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해외 시설들을 소개하면서도 그 내용은 2022년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이슈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결코 도시 속 우리의 삶이 자연 환경이나 야생 동물, 동물원 동물들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풀어내는 방식도 좋았다.
예를 들면 호주의 박쥐 생추어리를 소개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불명예스러운 멍에를 쓰게 된 박쥐 이야기를 하거나,
한국에서 동물원 관련해서 안타까운 소식이었던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의 죽음,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말레이곰 '꼬마',
귀여운 새끼 판다로 엄청난 화제를 몰았던 국내 1호 새끼판다 '푸바오'와 중국 판다외교 등...
사람들이 겉으로 보는 것 한 단계 이상 깊이 들어가 우리가 더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소개해 주는 방식이 정말 의미있다.
https://blog.naver.com/naturebook/220472059077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인 <비숲>과 함께 읽어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위는 예전에 내가 쓴 리뷰)
<비숲>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짜 숲, 진짜 야생 동물을 삶 속에 들여놓는 경험은 비가역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번 야생을 경험하고 느껴 본 사람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아직 그래 본 적은 없지만 사실이라는 점을 안다.
저자가 농장에서 일하며 푹 누워 쉬는 돼지 배를 긁어 주던 생각을 하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처럼,
내가 열한 살 때 하와이 동물원에서 무성한 나무 속에서 놀던 원숭이 우리를 본 이후에 한국 동물원에서 다시는 즐거울 수 없던 것처럼, 한번 우리 주변의 동물과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럴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동물 따라 세계여행>은 여행 일지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까 하나의 경험담을 들여다보는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와 인류문명 멸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비숲>과 <동물 따라 세계여행>을 같이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