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떤 가지인가?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가곤 했던 외삼촌집 뒤뜰에는 커다란 배나무와 두어 그루의 커다란 포도 덩굴이 있었다. 수십 그루의 밤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우물가에 앵두나무, 밭 가장자리로 자두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도 수십 그루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나무들을 놔두고서 내가 즐겨 찾았던 나무는 포도나무였다. 그런데 이른 봄만 되면 외삼촌은 포도나무의 줄기를 너무 많이 잘라내셔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외삼촌께 너무 많이 자르지 말라고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은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이런 가지는 그냥 놔두어야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굵은 가지라고 하더라도 겨울에 얼어 죽었거나 했으면 열매는커녕 이파리도 나지 않는다.”라고 하시며 사정없이 잘라버리셨다. 또 어떤 가지는 살아있긴 해도 영양분만 빨아먹을 뿐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맺더라도 쭉정이를 맺게 된다고 하시면서 잘라버리셨다. 결과적으로 남아있는 가지들은 많은 열매를 맺어 외삼촌집은 물론 동네의 많은 사람들, 특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신 집, 선생님 가정, 착하게 열심히 사시지만 너무 가난하게 사는 집들의 좋은 간식이 되었다. 외삼촌께서는 모든 나무의 열매들을 그분들을 위해서 언제나 따로 준비하시고 자주 선물로 보내시곤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잘려져 땅에 떨어진 가족들은 며칠 후 모두 아궁이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 말씀 중, 잘려나간 가지는 결국 불에 던져진다는 말씀이 시골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도 생생한 체험처럼 느껴진다.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는 이른 봄만 되면 틀림없이 가지치기를 한다. 쓸데없는 가지, 말라버린 가지는 가지치기할 때 희생될 수밖에 없다. 독불장군처럼 제 고집만 부리면서 주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이는 결국 자기의 잘못 때문에 주님께 버림받는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첫째,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 주님과 일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라도 해야 한다. 만일 게으르거나 교만하거나 자기의 일 때문에, 혹은 기타 다른 어떤 이유에서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될 경우에는 포도원 주인인 농부가 희망 없는 가지, 생명력이 없는 가지, 죽어버린 가지를 잘라 불어 던져버리듯 주님께로부터 잘림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기도와 사랑의 생활이다. 기도와 사랑의 생활이 없으면, 그래서 말과 혀로써만 사는 삶이 라면 그것은 생명력이 없고 희망이 없는 죽은 가지와 같은 삶인 것이다.
둘째,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는 언제나 일치를 생각하며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있어도 되고, 어디까지나 마음으로만 주님과 일치되어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는 그릇된 판단이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몸이기에 떨어져 나가는 것만큼 주님을 불구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알았기에 유대교 율법에 충실하여 천주교 신자를 죽이던 바울로는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후, 개종하여 새로운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같은 일원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성당을 오고가다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는 봄의 자연을 상상해보자. 어떤 가지에서는 잎이 이미 돋아났고, 어떤 가지는 막 잎이 싹트려고 붉게 물들었으며, 어떤 가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즉 영영 잎이 달릴 것을 포기한 나뭇가지가 있다. 비교해보자. 나는 어느 나뭇가지에 속하는 신앙인인가? 이미 푸른 잎이 돋아난 신앙인인가? 아직은 안 돋았지만 곧 푸른 잎을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신앙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영영 열매는커녕 잎사귀조차 피울 수 없는 죽어버린 신앙인인가?
첫댓글 숨속에 있으니 생명이네요
감사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