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인가 민족반역자처단협회란 카페에 정모가 있어서 참여했습니다
그때 독립유공자 후손인 분을 초대했었는데요
그 어르신이 하신 말씀중 독립군의 김좌진은 변절자라고 하시더군요
저와 다른 분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랐죠
독립운동에 절대적 위치에 있는 분이니까요
그 정모에 독립유공자의 증손자 쯤 되시는 분들도 2명 참여했었어요
그분들은 알고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의 말씀이 어느 대학 교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발표는 못한다고....왜냐면
절대적인 독립운동가로 되여있어서...거기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워서..협박이나 등등
김좌진이 만주에서 방앗간을 하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암살당하죠
그렇게 배웠어요 교과서에서도요
의문스러운게 어떻게 독립운동가의 절대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일본군이 점령하고있었던 만주에서 방앗간을 할 수 있었냐는 것이죠
지금이야 방앗간은 별거 아닐지 몰라도 제가 시골에 살았던 80년초에만 하더라도
시골에선 부잣집이였습니다 방앗간 하는 집은
대단한 위치에 있던 김좌진이 변절했다면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일본에 제공했겠습니까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신문인 동아일보에서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고 기사가 나있습니다
(신문기사를 민족반역자카페에서 봤었는데 제가 카페에서 찾아서 여기에 올릴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못찾아서 올리지는 못합니다 )
이건 김두한을 띄어주기위한 기사이죠 깡패인데...옛날이나 지금이나 김두한이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잖아요
어쨌든 그렇다면 김좌진을 위대한 인물로 인정한다는 것이죠 그건 지금은 독립군은 아니다 다만 일반 민중들은
독립군의 위대한 인물로 알고있으니 이걸 이용하는것이죠
김두한이가 위대한것은 그만큼 김좌진이란 장군이 위대하고 그 아들이다란 것이니까요
역사적으로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상을 스승을 높이죠 신적존재로 까지 승화시키잖아요
건국신화에서요
얼마전에 김좌진장군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왔는데 국적 승인도 못받고 불럽체류자로 있다고 하더군요
아직 판단을 못내리겠어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
변절자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하다고 자신은 못하겠고 ,독립운동했던 후손들이 제 나라에서 대접못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신채호나 그외에도 많아서 ..민족반역자가 나라의 정권을 잡다보니....
김좌진이 대단한 반공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좌진을 홍범도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띄어주는건가요?
현대사에서.....이승만때부터였나요??
이 대한 민국이 다시 위태로워지면 굳이 애국할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사는 인생이기에 철저히 변절할 생각입니다 역사를 통해 배웠으니까요
김두한....김좌진이 도망다니다가 우연히 기생의 도움을 받았고 우연히 그 기생이 임신을 햇는데..
그것이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이라....김좌진은 김옥균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론 김옥균의 후손이 없는걸로 아는데
김일성이 우상화하였듯 김두한도 우상화인셈인듯싶어요
김을동이나 송일국은 좋겠어요 위대한 독립군 김좌진의 후손이요 깡패가 아니라 민족상인들을 위해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국회에서 똥물을 끼얹을 정도의 집념이 있었던 분이라 세상이 인정해줘서
얼마전에 김을동이 아침 프로에 나와서 아버지 김두한 이야기하면서
나라를 위해 애쓰니라 가정은 돌보지않앗다고...힘들게 살앗다고 울더군요
그리고 김을동의 할머니가 김좌진장군의 유골을 찾아오기위해 만주까지 가서 찾아왔다고....
그땐 전쟁시기라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강단있게 행동하셨다 합니다 김을동의 말이
홍범도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아니였죠 김좌진은 반공주의자였고
그리고 홍범도는 원래 집안 신분이 낮았죠 김두한이가 안동김씨라고
김옥균의 후손이라고.....권력세력,뼈대있는 가문이라고
그 시절 신분사회의 흔적이 있던 시절이라 이것 역시 홍범도를 김좌진보다 낮은 인물로 보는 인식이 ....
총사령관이였고 봉오리전투승리 그리고 청산리천투 승리도 홍범도의 공이 없엇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꺼란 역사의 기록을 볼수있는데...
김좌진을 변절자로 보시나요???
첫댓글 글쓴 분이 먼저 사소한 것이라고 자료를 찾아 올려 주시면 어떨까요? 위 글에는 '~라 카더라' 라는 이야기 외에는 본인이 직접 확인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는 찾질 못하겠습니다 민족반역자카페에 실렸었는데...오래되어서 없어졌나봅니다 전 여기 계신 분들에게 질문을 드린겁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윗내용에서도 그렇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질문드린겁니다 저도 판단하기 힘들어서요 여기분들은 어느정도 역사적 지식이 있으시니까요
자유시참변 이후 김좌진 장군은 반공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이 통설이죠...봉오동, 청산리 전투 이후 혼춘사건, 간도참변이 일어날 정도로 일본 관동군의 보복이 잔인하였고,, 31년엔 만주사변. 32년엔 만주국 탄생...30년에 공산주의자가 김좌진 장군이 반공주의자 였기 때문에 죽였다 라고 하는건 조금 문제 있는 해석이라고 보여지고요..김좌진 장군이 만주에서 방앗간을 운영하였다 하면 그 동네는 쑥대밭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아무리 한적한 시골이라도 말이죠...저는 김좌진 장군이 방앗간을 운영하였다..이 말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되는군요..
김옥균은 1884년에 일본에 망명하였고,, 김좌진 장군은 1889년에 태어났는데..어떻게 아들이 되고 양아들이 될 수 있는지...또한 ,,,김두한이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는 건 논란이 너무 많아서 정확히 말을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아니라고 봅니다...ㅜ.ㅜ
김좌진이 변절을 했기에 방앗간을 할수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김좌진이 김옥균의 아들이란 말은 김두한이가 거짓으로 만들어낸 것이구요 자신의 신분을 올려볼 요량으로요 그땐 지금보다 더 가문이 중요햇으니까요
김두한은 서당이나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일자무식입니다. 그런데 안동 김씨 이름에 돌림자도 모르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억지로 가져다 붙일 리는 없지 않나요? 김두한 출생 때에 주변인물이 가계를 조작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주먹질하고 다니면서 그 시절에 이름을 개명이라도 한 것일까요? 출생에 의문이 있다고 해서 남의 가문과 가계까지 함부로 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