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유채꽃이 만발하던 지난 봄 '집밥나누기'때다.
반갑고 기발한 교수님의 제안이 있었다.
"나홀로 여행 보내주기"
누구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건사해야할 식구 걱정에,
여자 혼자선 위험할거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쉽게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워낙 걷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기다렸단듯이 두 손 들어 환영하며
머릿속으로는 벌써 '어디지? 어디로 갈까?' 머릿속이 온통 와글와글이다.
젤 먼저 지리산이다.
서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 그래 장터목에서 자고 새벽 일찍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는거야.
와아~ 떠오르는 태양의 기를 받으며 나의 몸은 빛에 싸여 따사로워지고 천사인양 가볍게 둥실둥실 하늘로 올라가는......
가만!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지?
갑자기 현실 도래.
길가에 내놔도 아무도 안잡아간다는 환갑 지난 여자라지만 위험이란 글자가 눈 앞에 아른아른.
과연 남편의 결사 반대.
그렇다면 제주 올레길이다.
산티에고행 워밍업 차원이란 셈치고 올레길로 정하자 동행요구조건을 내세운다.
그러면 원래의 취지인, 사색과 성찰의 기회일 나홀로여행의 의미는?
어렵게 생각하지말자.
하하에서 보내주는 1박2일 여행은 뒤로 미루고 더워지기 전에 말 나온김에 서둘러 떠난 제주 올레트레킹.
즉흥여행의 무계획 걱정은 1도 없는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시간은 금이다 로 여기는 남편이지만 하해와 같은 양보로 홀로 여행은 물거품이 되고
드디어 일욜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아웃도어차림에 최소화한 배낭을 각자 메고 10시 제주 도착,
곧바로, 귤을 상징하는 주황색과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의 두 가닥, 올레길 안내 리본을 따라 걷는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길가의 형형색색의 꽃들은 우리를 반기고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둥실둥실이다.
공항에서 제주 원도심까지의 17코스 중간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어느 한 곳 그냥 지나치지않고 성실하게 완주하리라는 굳은 의지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라봉 착즙인 진짜 맛있는 주스를 마시며
용두암을 지나 18코스 시작점인 간세라운지에서(간세란 게으름뱅이라는 제주 방언으로 꼬닥꼬닥 오르는 조랑말)
호기롭게 스탬프를 쾅쾅 찍을 패스포드를 구입, 전 코스 완주를 다짐한다.
18코스는 제주 원도심에서 조천읍까지인 19.7km로 소요시간은 대략 6~7시간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해찰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올레 초보자답게 리본이 이끄는대로 가다보니 동문시장이다.
오래전에 다녀간 추억에 젖다보니 현실감을 잃었는지 '김만덕기념관'으로 이어져야할 리본이 보이지않는다.
시장 상인들께 물어봐도 현지인들은 전혀 모른다.
아니 관심도 없다.
그걸 왜 가냐고한다.
두 가닥 리본이 눈에 띄는 색상이긴하나 가늘고 바람에 나부끼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적당히 건너 뛸수도 있겠으나 둘 다 원칙지키기를 고수하는 성격인지라 한참을 헤메다가 카카오앱을 통해 기어코 제 길을 찾아
간신히 아스팔트길을 벗어난다.
마침내 368개의 오름 중 하나인 148미터의 '사라봉'에 오른다.
오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제법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
일본군들이 파놓은 동굴진지를 지나니 마침내 사라봉 정상인 망양정에 이른다.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확 트인 드넓은 바다를 보며 땀을 식힌다.
사라봉의 사봉낙조는 영주십경 중 하나로 매우 아름답다고하나 일몰때까지 기다릴수없어 그냥 패스~
애기업은 돌을 지나 4.3사건때 마을이 전소되고 많은 희생자를 낸 곤을동을 비롯, 전역에서 3만명이 학살되는 처참한 일이 벌어졌지만
지금도 규명조차 되지않는다하니 울분을 금할수없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4.3추모비를 곳곳에서 만나게된다.
적의 침입과 위급을 알릴때 빠르게 연락하는 통신망의 하나인 화북연대를 지나 검은모래해변인 삼양해수욕장에 다다른다.
18코스 중간지점이니 딱 한 코스를 걸어 온 셈이다.
그러나 준비없이 떠나온 나는 중간스탬프를 찍는 간세라운지를 보고 그곳이 끝점인줄 알고
아~ 목표한대로 17코스 중간부터 19코스의 시작점이자 18코스 끝점까지 달성했구나 싶어 여정을 풀기로했다.
하루에 한 코스 반을 걸었다는 엉터리 성취감에 취한채
앱을 통해 찾아 들어선 게스트하우스는 친절하고 인상좋은 노부부가 맞이해준다.
맛집에 들려 점심도 먹고 정자에서 쉬기도해서 총 24.12km 31528보를 걸은 오늘 하루는 그래도 힘들지않았다.
깨끗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때까지는 행복했다.
다음날 있을 38 km에 5 만보를 걷게 될 최악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모른채.
첫댓글 한번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추가 글이 있어야할것 같습니다.
어제 귀가한지라 아직 피로감에서 못벗어났지만 재잘거리고파 무리했답니다.
저만 재밌어하는 글이 될까 심히 걱정됩니다.
죽을둥살둥 걸은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힘내어 또 써볼께요.
언니~~ 재미날 뿐만 아니라 유익하고요, 동기부여가 팍팍 되는 기분입니다. 2탄을 학수고대합니다~^^
나도한번 꼭 올레길 도전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계속 올려주세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유로운 여행가답습니다. 생명 운운할만큼 ^ 극한 상황에 처했던 이야기 당연 궁금하지요. 푹~쉬시고 이야기보따리 풀어주세요.
나는 배고픈 놈 식은밥 먹기식으로 첫날 28km 겉고는 발병이 나서 다음날은 그냥 빈둥대며 쉬다가 다음날 12km, 그 다음날은 12,3.km걷고는 5코스부터 12코스까지인가 걸어보았는데 별 재미 없데요. 역시 걷기는 너무 느리고, 차는 너무 빠르고 해서 자전거가 적격인데 자전거는 오르막이 많으면 힘드니까 평지가 좋은데 평지는 모두 해안이라 그래도 시원합디다만, 순환하는 버스도 좀 이용하고 전기 자전거도 좀 이용하고 걸어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 좋겠습디다. 목적하지 않고 그냥 가는 것만으로도 큰 사색과 여유를 갖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는 영희씨 보면서 역시 재주가 많구나 생각합니다.
2년 전, 딸과의 제주 올레길 여행이 그리워집니다. 발로 하는 여행의 참 맛을 함께 느끼며 저 또한 기회만 되면 제주 올레길 차근차근 돌아 보렵니다.
최악의 여정이라니요? 몹시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