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가방』 / 천화선, 시와사람
서승현
5. 근원적 슬픔 - 천화선의 『저녁의 가방』
천화선 시인의 첫 시집 『저녁의 가방』에는 인간의 근원적 슬픔과 변방에서 만나는 소외와 쓸쓸함 등이 주된 시적 정서를 이루고 있다.
비의 냄새는 다르다
오늘은 고기 굽는 냄새를 끌고 왔다
나는 처마 밑에 앉아
그 냄새를 오래오래 씹었다
너무도 질기고 질겨
그 맛이 슬펐다
질긴 슬픔을 불에 구워
다시 씹었다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검은 덩어리
지금도 슬픔은 입 안에 살고 있다
- 「질긴 슬픔」 전문
가슴에 담아 둔 슬픔
안으로 가둘 수 없을 때
밤바다로 나가
유등에 몸을 싣는다
밤바다에 흘린 눈물로
바다의 수위는 점점 올라가도
유등들은 노아의 노를 저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밤바다」 전문
비에 섞인 냄새는 현상적이다. 비가 내리면 습도 때문에 냄새가 낮고 강하게 퍼진다. 시적 화자는 비가 끌고 온 고기 굽는 냄새를 처마 밑에 앉아서 오래도록 ‘씹는다’고 표현한다. 비- 고기 굽는 냄새 - 냄새를 씹는다 - 질기다 - 슬프다 -검은 덩어리로 연속 이행된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질겨서 생긴 슬픔은 씹히지도 삼켜지지도 않고 검은 덩어리로 뭉쳐져서 아직도 입 안에서 살고 있다. 비가 매개체가 되어 고기 굽는 냄새를 끌어 왔지만 질긴 슬픔을 투사하고 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밤바다」에서도 슬픔이 넘쳐 ‘밤바다에 흘린 눈물로 / 바다의 수위는 점점 올라’간다고 한다. 천화선의 시에서는 이처럼 근원을 가린 채 슬픔이 표출되는 시가 더러 있다. 그저 ‘가슴에 담아 둔 슬픔’으로 진술될 뿐이다. 그런데 「밤바다」의 슬픔이「질긴 슬픔」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등들은 노아의 노를 저어 /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절에서 ‘노아의 방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성서적 시점에서 ‘노아의 방주’로 본다면 이 시에서의 슬픔은 인간의 타락과 동시대인의 사악함으로 인한 슬픔, 타락의 원죄에서 연유하는 슬픔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하선 시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의 근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이 사회의 타락하고 부도덕한 측면,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서 좀 더 깊고 폭넓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1
방안에 늙은 사마귀 한 마리
연잎 바랜 날개를 접고
모로 누워 있다
태엽 감긴 인형처럼
온 사지가 떨려오기 시작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평생 글 한 줄 써 본 적 없는 손이
허공을 칠판 삼아 알 수 없는 글씨를 새기는데
아무도 읽어 낼 수 없는 유서
누가 와서 거두어 갈까
2
가끔 면사무소 직원들이
독거노인 실태조사를 하고 나면
산 아래 사마귀의 집은
바람이 대문을 닫는다
- 「사마귀의 집」 전문
길가 화사한 꽃 속에서
외로움을 피워내는
아저씨
석양빛 구름을 안주 삼아
스치는 바람을 벗 삼아
스르르 지는 꽃잎
쓰러진 술병으로
기우는 하늘
- 「봄날」 전문
「사마귀의 집」 은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독거노인의 실태를 그리고 있는 시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화려함 뒤에 그늘지고 소외된 농촌지역의 독거노인이 ‘늙은 사마귀’ 한 마리로 은유되고 있다. 인적 끊긴 외딴 집에 드나드는 발길이라고는 가끔 실태조사 나오는 ‘면사무소 직원’들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봄날」 의 ‘아저씨’도 마찬가지이다. 봄날의 석양 무렵, 술에 취한 ‘아저씨’가 꽃 속에 흐드러진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지배적인 정조다. ‘화사한 꽃’과 ‘혼자서 피워내는 외로움’이 대비되면서 ‘지는 꽃잎’과 ‘쓰러진 술병’에 투사된 술 취한 ‘아저씨’의 쓸쓸함은 산 아래 ‘늙은 사마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어찌할 수 없는 걱정과 슬픔이 아릿하게 어려 있다. 그런가 하면 ‘목에 검은 머플러를 두르고 다녀서 / 까마귀라는 별명이 붙은 아이’의 모습 속에서 문득 자신을 자각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나’를 이겨 내려는 힘을 ‘나’보다 더 외로워 보이는 시적 대상에게서 얻기도 한다. ‘까마귀가 살아가는 힘’을 ‘구름처럼 떠돌지만 /쓸쓸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언젠가는 홀로 날아가야 한다’는 선명한 각성에 이른 시인은 ‘까마귀가 날아간 /텅 빈 교정’을 ‘나도 혼자 날아가는 중’ (「까마귀 새」)이라고 자신의 변화를 꿋꿋하게 천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길 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운명‘ 적 슬픔 속에서도 봄이면 ‘치마폭 한쪽이 훈풍에 부풀어’(「봄, 봄봄」) 오르는 보드라운 감성 속에서 ‘여수 앞바다’를 ‘한권의 푸른 책’으로 읽는 낭만적 서정도 지녔다.
6. 낭만적 서정과 긍정
여수 앞바다
한 권의 푸른 책이다
유조선이 해를 안고
책 속을 느리게 기어 간다
물음표 위에 앉은 오리갈매기들
흔들리는 문장을 해독하느라 하루해가 기운다
눈 먼 불가사리들
그물에 걸려 생의 해답을 묻기도 하지만
생의 갈피를 채운 실마리는
넓고 깊은 책 어디에도 없다
배는 문장을 따라 길을 내며
행간의 어디든 달려가지만 책장을 떠도는 물거품과
파도의 슬픈 얘기를 다 읽고 나야
책 한 페이지 겨우 넘어간다
- 「푸른 책」 전문
이러한 낭만성은 부정적으로 작용하던 원형적 슬픔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물안개 속 피어나는 꽃을
새들이 물어와 물가에서 집을 짓는 곳
바람도 쉬어가고 구름도 잠들다 가는
수면은 고요하고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연분홍 꽃으로
곱게 피어나고픈 새벽 물안개
-「세량지에서」 전문
화순에 있는 세량지는 봄이면 잔잔한 물결과 주변의 풍광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한 폭의 이발소 그림같은 정경을 볼 수 있다. 벚꽃 만발하는 춘삼월의 새벽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고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속도전이다. 기차라는 조직체계가 자본의 이익과 창출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가운데 시인은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 연분홍 꽃으로 피어나고’ 싶은 ‘새벽 물안개’에 자신을 투사한다. ‘달리는 기차’는 ‘비우고 비워도 다시 차오르는 욕망들’(「굴다리」)이 반복되는 상징물로 현대 산업사회를 반영하기도 한다. 직장일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인은 긴장과 피로감, 슬픔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자연의 품속에서 지친 자신을 달래보는 것이다.
7. 나오며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살고 있는 김황흠 시인과 도시적 공간에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천하선 시인이 바라보는 독거노인이나 이웃의 모습은 쓸쓸함과 소외된 고독함에 대한 연민이 공통적으로 스며 있다. 천하선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비우고 비워도 /다시 차오르는 욕망들’로 혼탁해진 ‘보이지 않는 길목’도 ‘여자라는 원죄’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슬픔을 떨쳐내지 못하고 모성애적인 눈으로 바라보지만, 또 한 켠으로는 자연물에서 시적 동일성을 발견하면서 봄향기 같은 부푼 희망을 찾아간다. 김황흠 시인은 허물어져 가는 농촌 공동체와 쇠잔해 가는 이웃들을 쓸쓸하지만 애틋하고 정감어린 시선으로 녹여내는 한편, 자연과 일체되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들을 드들강변으로 편안하게 이끈다. 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마스크로 표정을 봉쇄당한 황량함 속에서 벌써 세 번째 맞는 봄이다. 이 봄에는 드들강과 여수의 푸른 바다, 세량지의 잔잔한 풍경을 담은 두 시인의 서정성에 푸근하게 동참해 보아도 무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