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단상
홍윤경
어릴 때 비 오는 게 싫었다. 비가 오면 바깥 놀이를 할 수 없어 심심했다. 비 오는 날은 꼬마 손님 반기는 집이 없으니 마실 갈 곳이 없다. 같이 놀 형제자매가 없어 혼자인 나는 비 오는 날이 서글펐다. 괜히 할머니 꽁무니 따라다니며 칭얼거렸다. 농사일 바쁜 할머니는 비가 오면 집안일 하실 짬이 나셨다. 비설거지를 얼추 끝낸 할머니가 부침개를 곤로에 올리시면 쭈그리고 앉아 옆을 지켰다. 부침개 첫 소당을 어린애가 먹으면 죽는다는 반협박의 훈육은 오늘도 예외가 없다. 침 고이는 첫 장을 할아버지께 양보하고 내 차지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부침개가 나오길 기다렸다.
비 오는 아침이면 찌그러진 우산 들고 학교 가는 게 싫었다. 비 오는 흙길을 걷다 보면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고 양말까지 다 젖었다. 포장 없는 진창길을 가야 하니 바짓가랑이까지 흙투성이다. 옛날엔 우산이 귀했는지 교문을 들어서며 만나는 친구 중에 멀쩡한 우산을 들고 온 아이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대나무 살에 파란색 비닐을 씌운, 그날로 반쯤 벗겨지는 진짜 일회용 우산을 들지 않은 게 그나마 위로였다. 우리 집은 파란 비닐우산을 들고 갈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전 석가 탄신일 휴일이었다. 날씨 체크를 못 하고 외출했다가 일정 마치고 나오니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바람까지 스산하니 다시 추운 봄이 오는가 싶었다. 주변에 편의점이 없어 헤매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덜덜 떨었다. 혼자라면 택시 불러 타고 집에 오겠는데 일행이 있으니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 겨우 비닐우산 하나 사서 비를 피했지만, 머리와 옷은 벌써 반쯤 젖었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 꼴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며 택시비가 없는 것도 아닌데 택시라도 탈 걸 참 청승을 떨었구나 싶었다. 손에 든 7천 원짜리 비닐우산은 40여 년 전 파란 대나무 비닐우산에 비하면 아주 세련됐다. 한번 쓰면 망가지던 파란 대나무 우산과 달리 7천 원짜리 비닐우산은 실상 일회용이 아니다. 오랜만에 비닐우산을 사서 쓰니 옛날 파란 대나무 우산이 생각난다.
지금은 비 오는 걸 좋아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비를 감상할 여유가 있거나 빗길을 걷는 게 궁색하지 않을 정도의 빗줄기일 때만이다. 여전히 빗속을 걷는 일은 구질구질하고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비를 좋아하는 게 맞나 싶지만, 비 오는 날의 센치한 감성이 좋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한숨 쉬어가는 여유가 좋다. 눈부셔 멀리했던 하늘을 맘껏 올려다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추적거리는 비를 맞지 않고, 신발도 젖지 않고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 있어 행복하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있다면 아주 부자가 된 것 같다. 현관 우산함에 가득 꽂힌 우산을 보면 든든하다.
오네오네 비가오네
우륵주륵 비가오네
아침비는 해님눈물
저녁비는 달님눈물
오네오네 비가오네
우륵주륵 비가오네
밤에밤에 오는비는
청룡황룡 눈물인가
딱딱 맞는 글자 수만 봐도 황홀한 비 노래를 좋아하지만, 정작 비가 그쳤으면 하는 노래를 부르면 폐부를 찌르는 뭔가가 있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시집가는 누나의 가마에 비가 새면 새색시 저고리가 젖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누나를 떠나보내는 애틋함이 전해진다. 어쩌면, 내리는 비에게 더 많이 와서 우리 누나 시집 안 가게 해달라고 비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나를 보낼 수도, 안 보낼 수도 없어 쩔쩔매는 아이가 보인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꿩의길로 가거라
토끼길로 가거라
중의절로 가거라
우리누나 시집갈때
가마꼭지 물드가면
고운치마 얼룽진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베트남 출장 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왔다. 아침 비행기 타는 남편을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다 주는 길은 어둑어둑했는데, 남편을 내려주고 집에 오는 길은 그새 훤히 밝다. 말놀이 모둠 숙제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해가 뜨려면 좀 더 있어야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심상치 않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오늘 날씨를 검색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 올 확률 60 프로에 흐릴 거라고 나온다. 좁은 집이지만 각방 쓰며 대화도 안 하는 남편인데 곧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에 출장을 보내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조심히 건강하게 다녀오길 비 노래와 함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