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공원에서 만난 운명의 선율 산책 삼아, 운동 삼아 아파트 앞 공원에 나갔다. 겨울 공기는 날카로웠고, 하늘에는 낮게 드리운 구름이 회색빛을 뿌리고 있었다. 공원의 산책로는 이미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길로 변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조심스레 걷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한산한 모습이었다.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고, 마른풀 위를 지나는 소리가 왠지 더 쓸쓸하게 들렸다. 그날의 공원은 말 그대로 고요하면서도 차가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고요 속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은 차갑기만 하던 공기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기타 선율은 낮고 부드러웠다. ‘이 추운데 기타를 치다니, 누구일까?’ 궁금증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소리가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기니, 공원의 높다란 축대 밑에서 한 남자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저녁 햇살이 기울며 축대에 부딪혀 붉게 번지고 있었다. 그 햇살 속에서, 그는 기타를 품에 안은 채로 한 음 한 음을 울려 퍼뜨리고 있었다. 검은색 오리털잠바를 입고, 청바지 차림의 남자는 고요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의 기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공원 전체를 감싸 안는 듯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익었다. 늘 공원에서 하모니카를 불던 그 남자였다. 악보를 펼쳐놓고 조용히 하모니카를 불던 그는, 오늘은 기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겨울 추위 속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한 그가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그의 기타 소리가 공원을 넘어, 멀리 도로에까지 퍼져갔다. 도로에 서 있던 신호등의 붉은불이 켜지고, 자동차들이 멈추는 순간에도 기타 선율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기타 소리를 따라 걸음을 늦추며 그를 바라봤다. 잠깐 멈춰선 뒤, 다시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추위 속에서 기타 소리는 더욱 또렷하고 깊게 울렸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귀에 익은 멜로디가 선명히 들려왔다.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였다. 이 곡은 내 젊은 날의 기억과 함께하는 노래였다. 선율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아스라한 젊은 시절의 풍경이 다시금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그 시절, 통기타를 치던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았다. 나는 음악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 노래를 들으며 느꼈던 그 따뜻한 공기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통기타의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라면 어떤 날도 밝게 느껴졌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의 기타 선율은 어느새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로 넘어갔다. 경쾌하면서도 단단한 리듬이 발걸음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의 연주는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공기를 부드럽게 녹이고 있었다. 신나는 리듬이 내 마음에 불을 지핀 듯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노랫말이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추위 속에서 마주한 기타 연주는 내게 작은 선물 같았다. 기타 소리와 노랫말이 함께 춤을 추듯 공기 속을 채웠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이 가사가 이토록 마음을 따뜻하게 할 줄 몰랐다. ‘아모르파티(Amor fati)’는 라틴어로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철학자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삶을 긍정하는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후회 없이 살라는 메시지였다. 그 심오한 철학이, 김연자의 노래로 이렇게 쉽게 풀어졌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기타 소리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끊어질 듯, 그러나 끝내 살아남아 맴돌았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선율이 공원의 나뭇가지 사이로 퍼져 나가고, 서산으로 기울어 가던 노을마저 기타 소리에 머무르는 듯했다. 그의 연주는 삶을 찬미하고, 그 안에서 순응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했다.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는 마지막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났고, 나도 걸음을 돌렸다. 차가운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오늘 하루, 나는 그 선율 덕분에 조금 더 따뜻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누군가의 음악이 내게 작은 빛이 되어준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