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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부 운문부
남원도통초등학교 5학년 1반 방알리나
동행
홀로 걷는 밤길
너무 무서워
자꾸자꾸 되돌아보면
시커먼 그림자
소름 끼치네
내가 뛰어 가면
그림자도 쫓아 오네
왜 그럴까?
하늘을 보니
아하! 보름달
무서운 내 마음이
확 풀렸네.
친구야
나도 너처럼 그런 적 있니?
마치 어둠 속을 걷는 듯
막막한 적 있니?
보름달이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너의 보름달이 되어줄게.
초등부 산문부
남원 용성 초등학교 6학년 1반 강희정
동행
나는 외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2년 전 동생을 떠나 보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슬픔에 빠졌었다. 아버지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어머니는 회사에서 짤리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압류라는 빨간색 딱지가 붙여졌고 우리 집은 점점 망해갔다. 1년이 지난 햇빛이 짱짱한 그 때 나는 지금의 나에 한 줄기 빛을 보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을 가던 도중에 한 박스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았다. “안녕? 혹시 이름이 뭐야?” 당연하게도 강아지는 말을 못 하였다. 나는 지금의 나에 한 줄기 빛을 보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을 가던 도중에 한 박스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았다.
“안녕? 혹시 이름이 뭐야?”
당연하게도 강아지는 말을 못하였다.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강아지가 멍멍하며 짖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꼭 이 강아지를 데려가야 된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우리 집은 사정이 좋지않아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나는 계속 졸라댔다.
결국 하룻동안 졸라댄 끝에 부모님도 마음을 결심 하였다.그 강아지의 이름은 운명이가 되었고 운명이는 지금도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잇는 주이다. 운명이는 말대로 운명처럼 내려왔고 나에겐 정말 동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운명이를 키우고 점점 우리 집의 생활은 좋아지고 있다. 정말 운명이는 우리 가족과 운명인가 보다. 운명이와 나는 언제나 동행하며 살아 갈거다 꼭 반드시....
중등부 운문부
남원용성중학교 2학년 1반 정주연
오월
오늘은 오월의 첫 날이다.
어젯밤 계속 자세를 뒤척이다 결국
밤을 세버렸다.
나는 오늘이 싫다.
또또 시작이다
아침부터 창문 밖 너머로
옆집은 가족끼리 도시락 싸오고
놀이 공원에 간다하고
윗집은 가족끼리 바다구경에 간다 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두배는 더 크게 들린다.
오월 첫 날부터
다른 집들은 시끌시끌
거리는데 우리집은 조용하다
오월이니까
학교에서는 옆 짝꿍 성민이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무얼 해드릴 거냐며 묻는다.
생각이 많아진다.
내 대담 한번에 남들의 시선이 달라질테니까
나는 대답한다.
우리집은 그런거 잘 안챙겨
나는 가족이 없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내 부모님들은 내 곁에서
더 좋은 저 달 옆으로 이사를 가셨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던데
나 같은 사람들은 부러워만 하라고 그런걸까?
나는 오늘이 싫다
나는 오월이 싫다.
중등부 산문부
남원용성중학교 3학년4반 김한울
동행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는 줄곧 혼자였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잘 지내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을 가진 아이, 그때 까지만 해도 조금은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바뀔 수 있게 해준 것은 특별하고 귀한 2학년 때 만난 친구들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던 때 나는 보통 다들 있는 가장 친한 친구, 흔히들 말하는 절친이 없었다. 게다가 소심한지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한 친구를 만났다. 매우 밝고 긍정적인 그 친구는 내게 먼저 다가왔다. 학기초만 해도 어색했다. 하지만 꾸준히 내게 말을 걸어주는 그 친구 덕에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다른 친구들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매일 함께 다른 친구들과 놀았다.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하고 운동도 같이하며 지냈다. 서로가 힘들때는 고민을 나누며 희로애락을 함께하였다. 서로의 좋은 모습을 본 받으며 함께 성장하였다. 우리서로 공부를 열심히,잘하는 편이라 반에서 1,2등을 차지할 정도로 서로 도우며 열심히 공부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과연 저친구는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을 할까? 이런 생각이 들자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꼭 그렇지않아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는데 욕심내는 내 모습이 창피했다. 우리는 이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다. 그런데 왜 의심이 들까? 아마 내가 친구를 시귀어본 경험이 부족한 데서 나온 부족한 면모일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이로 인해 성찰을 많이하게 되었다.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근본적으로 내가 왜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런데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체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있다. 하루의 시작부터 생각해 보았다. 학교에 가서 먼저 친구들과 얘기하고 놀았다. 그 후엔 독서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점심시간 에는 노래를 들으며 친구들과 놀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잠깐씩 놀았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영어학원,태권도를 했다. 이후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즐겼다. 밤에는 누나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생각해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까지 혼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들을 더 좋아했다. 동행하는 것 그게 내 삶의 의미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함께하는 것을 좋아할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과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글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저 함게 하는 것 이아닌 교감이었다. 서로를 도우며 생화하며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동행을 통해 얻는 것 같다. 나와 비밀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다. 우리가 얘기를 할때면 요천강을 따라 걷는다. 동쪽 변두리를 지난는 곳으로 우리는 동행을 한다.동쪽의 상징인 시잡! 우리는 동행을 함으로써 우리 삶을 개척하는 것을 시작한다. 이럼면에서 나는 동행 같은 길을 가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짝눈이라 왼쪽 시력이 않좋다. 1학년 때까지는 왼눈으로 세상을 봐 흐리고 불안한 것 인줄 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오른 눈으로 세상을 선명하고 밝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지금까지 잘 못된 방법으로 봐왔다. 하지만 동행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보게되었다.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 결말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함께하는 과정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니까.....
고등부 운문부
서진여자고등학교 2학년 1반 김소연
징검다리
징검다리 넘어있는 너
어서 이 돌 넘고 싶어 발을 동동
물이 두렵지만 우스꽝 스러운 모습 보이기 싫어
당당한 척하는 달팽이 되어
돌 하나 둘 건너갈 때마다 내 마음 하나 둘
건너갈 때 마다 내마음 하나 둘 더 커져가네
기다리다 못해 건너오는 너를 보며
너의 마음도 나와 같다는 생각에 내 마음에 입하나붙어 미소 짓네
너와 손잡고 하나 둘 건너가는 징검다리
이 시간이 달팽이가 되었으면.....
고등부 산문부
서진여자고등학교 2학년 1반 이정은
징검다리
2015년 여름방학에 가족과 함게 할머니를 보러 시골에 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워메, 드디어 왔네. 내 똥강아지--”
할머니는 나를 반겨주며 안아주셨다. 나는 언니와 같이 할머니가 주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동생은 아버지와 정자 밑에서 까르르대며 뛰놀고 있었다. 유난히 햇빛이 세고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던 날이었다. 모두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셨다 “ 할머니, 어디 가세요?” 너희들 왔응게 할애비한테 가야제“ 나는 할아버지께 가신다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할머니는 주름지고 따뜻한 손으로 나 작은 손을 잡아주셨다. 갑자기 산속을 들어가자 나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할머니는 나를보고 웃어주시며 울퉁불퉁한 산길을 가다보니 겁이나는 징검다리가 나왔다. 너무무서워서 할머니 뒤에 숨었고 뭐가 무섭냐며 나를 업어주시며 웃으셨다. 할머니가 웃으시는 이유를 몰라서 등에 업힌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돌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고 강물은 빠지면 못 나올 정도로 깊었고 어떤 돌은 할머니가 밟으면 흔들거렸다. 나는 얼굴을 할머니의 어깨에 파묻었다. 할머니의 냄새와 포근한 등이 너무 좋았다. 할머니는 나긋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나는 할머니의 품에서 잠이들었다.
”아가, 밥 먹게 일어나라“ 할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는 산이 아닌 집에서 깼다. 마당에서 아버지가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침상에 누워 할머니께 산에서 무얼 하셨는지 물었다. ” 우리 똥강아지랑 할애비한테 노래 불러줬지?“ ”무슨 노래요?“ ”우리아가랑 할애비 지켜주는 노래지요.-- 불러주랴?“ 나는 할머니의 노랫소리에 잠이 들었다
5년 후 나는 시간이 갈수록 시골에 가는 횟수가 줄고 할머니와는 영상통화로 보는 횟수가 늘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보고 싶다고 했지만 바쁘다고 모른척했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병원에 문안을 가셨고 나는 한번 가보고는 가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계에 생명을 의지하셨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할머니를 보지못했다. 어느날 언니와 방과후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빠른 걸음과 다급하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고모가 데리러 오신것이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면서도 실감이 나지않았고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면서 우리를 안아주실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고모를 따라서 들어가니 어머니는 검은 옷을 입고 울고 계셨고 고모께서 할머니께 인사하라고 하셔서 할머니의 사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사진 속에 계셨다. 우리 삼남매는 절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우리는 울고 말았다. ” 이제 할머니 못 봐“ ”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나는 깊은곳의 참던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례식을 하는 내내 울고 몹시 슬펐다.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모셨다.
며칠후 할머니의 텅빈 집으로 갔다 . 할머니가 똥강아지 왔어? 하시며 반겨주실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짐을 치우며 계속 우셨다. 나는 할머니의 산소쪽으로 걸어가며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울음을 참고 산에 오르고 징검다리가 나왔다. 어릴 때 보던 그 징검다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돌다리를 보고 무섭던 징검다리는 소박하고 별볼일 없어 보였다. 그러자 나는 징검다리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계속해서 울었다. 징검다리가 물에 잠길만큼 울었다. 나는 할머니가 업어주고 같이 건너던 이 징검다리를 혼자 건너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