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미움이 반감되고
엘리 목사는 키예프가 막시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1939년 9월1일 독일의 폴란드침공 한 달 후에 키예프와 한나 그리고 교인들과 숲정이를 갔어요.
마을에 도착해서 키예프가 먼저 공동묘지자리를 보고 오겠다고 갔는데 막시가 아버지의 유품을 넣은
평토장 무덤과 묘비를 만들어 둔 뒤라 잠깐 이야기를 했어요.”
“무슨 이야기요?”
“막시가 너무 시간이 없다며 삼촌이 돌아가신 분들 장례를 해주면 마을을 위해 애쓴 수고의 빚을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람들을 피해 서둘러 갔다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엘리 아내가 막시의 성장과정을 이야기 해 주었다.
“키예프가 폴란드에서 왔는데 직장을 구한다는 말에 교인 건축가게에서 일하게 해주자 성실했어요.
막시는 머리가 좋아서 학교에 넣어 주고요. 막시는 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모세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 신학공부를 시켜 목사가 되어 군목으로 갔지요. 그런데 오랜 후에 막시가 건축가게
장로님을 만나서 부탁을 했어요.”
“무슨 부탁 요?”
“막시가 건축 회사를 만들었는데 회사 사장으로 세워 경영을 하게 했지만 직원 관리는 막시의 부하가 했어요.”
“조금 이상하네요. 직원관리가.”
“그렇지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로 군목이 종합 건축회사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상했어요. 하지만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니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막시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막시나 교회에 타격이 있지 않을까 매일 걱정을 했어요.”
“아~ 그랬군요.”
“그래서 방금 가신 장로님이나 아내에게 수상한 사람이 오면 조심하라고 정해둔 오른팔 왼팔로
안전하다 위험하다 수신호를 보낸 겁니다. 하하하.”
“예? 저도 깜빡 속았습니다. 하하하.”
잠깐이지만 지혜가 담긴 외부인 확인 절차에 웃음을 웃던 헤이든이 물었다.
“그럼 막시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언제였어요?”
“그러니까.....1915년인가? 1차 대전이 시작하고 몇 달 뒤였지요. 막시가 숲정이 고향엘 간다며
마을에 성경이 부족하다고 해서 내가 몇 권을 구입해 주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 같아요.”
벤은 자신이 보던 성경이 막시가 주었다는 생각을 하자 막시에 대한 미움이 반감되고 있었다.
헤이든이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아시나요?”
“그날 키예프가 막시에게 들었는데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살 것이라고 했다고 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지 못했는데 무슨 유언이요?”
“아버님은 훌륭하신 분이라고 들었으니까 본 받아 또 다른 선한 영향력으로 제2의 영웅을 꿈꾸고
있을 겁니다. 나는 막시를 믿어요.”
“영웅의 꿈이요?”
벤은 아버지를 영웅을 만들어 주겠다며 전쟁에 끌어 들인 일이 생각나 거부감이 있어 인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 막시는 어디에선가 어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미움이 조금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삼촌이 아기를 안고 숙모는 큰 딸 손을 잡고 들어왔다. 벤은 반가움에 만나면 쏟을
눈물을 준비한 사람처럼 눈물을 쏟으며 세 사람은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삼 초온~ 숙모님~”
“이게 누구야. 벤~ 살아 있었구나. 부서진 집에서 시체조차 찾지 못해서 죽었다고 묘비에 이름을
새겼는데 벤 이건 기적이다 신의 선물이다. 잃은 양을 찾았다. 부모님과 오스카 가족은?”
“요하나와 저희 식구들은 모두 안전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 새벽에 포격을 피해 살았지?”
“말하자면 너무 길어요. 오늘 오다가 숲정이 마을과 묘비까지 모두 살펴보고 왔어요.”
“오 그랬구나. 너무 처참하지?”
“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이요.”
삼촌부부는 그 날 새벽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숙모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날 아침 모습이 떠올라
너무나 무서웠다고 몸서리를 쳤다.
“독일 군이 밀려와 집안 수색을 하고 일부 마을 사람은 묘비가 있는 갈대숲으로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었던 사람들과 우리 작은 아이는 피 할 사이도 없이 그때 죽은 것 같았다.”
“죽은 것 같다니요?”
“그래, 그 참혹한 현장에서 시체도 찾을 수 없으니 죽었다고 생각 할 수밖에.”
“주여~”
삼촌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우리는 아이 걱정에 독일 군이 빠져 나가자마자 허겁지겁 내려 왔는데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숙모는 실신을 하고 눈만 뜨면 울어서 마을을 그대로 둔 채 독일 아버지 교회로 온 거야.”
“예. 잘하셨어요. 근데 그 먼 거리를 차도 없는데 걸어 오셨어요?”
“아니야. 큰길로 나왔다가 부상병을 실은 차를 보고 세워서 다섯이 함께 타고 왔지.”
“예? 셋이 아니고 다섯이요? 또 누가 있었어요?”
“아 그 이야기는 목사님께 못 들었구나?”
그때 숙모가 웃으며 ‘쉿! 키예프 그건 비밀’ 하고 말했다.
키예프와 가족들이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자 벤은 더욱 궁금해서 물었다.
하지만 숙모는 나중에 말해 주겠다며 연신 웃기만 했다. 그러자 키예프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는 시신을 수습 할 수도 없어 고인이 쓰던 애장품과 옷가지 등을 한 두 개씩 가져다가
평토장을 하고 묘비에 새겼다. 생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죽은 것으로 알고 썼는데
벤과 요하나 가족은 모두 살아 있었다니 정말 반갑다.”
“예. 또 다른 사람들이 살아 있을 거 에요. 그리고 삼촌네 아이도요.”
“아멘. 그럼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잃은 양을 찾은 기쁨으로 아주 큰 잔치를 벌여야겠다.”
헤이든은 가끔 메모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곤 했다. 숙모는 벤과 요하나의 두 가족이 어떻게 살아
있었느냐고 물었다. 벤은 막시에 대한 반발로 폴란드 군에 입대를 하고 상관과 다투어 탈영한
사건과 현제 소비에트 주상절리까지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숙모가 말했다.
“오 그랬구나. 참 다행이다 하루만 늦었어도 너희 가족도 무사하지 못했을 건데 신께서 너를 도우셨구나.”
“예. 죽음이 내 뒤를 따라와도 믿는 자에게는 창조자께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시잖아요.”
“아멘~”
숙모는 아멘 후에도 신바람이 났다. 엘리 목사는 신바람 난 딸과 벤을 보며 말했다.
“벤. 우리 딸이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저렇게 밝아 진 것은 키예프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인데 벤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하.”
“예? 제가 어둡게 보였어요?”
“아 그건 아니고 사랑이 넘치면 한나처럼 더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다는 말인데.”
“아버지 쉿!”
숙모는 아버지의 말도 끊고 비밀에 쌓인 이야기를 꺼냈다.
“벤 우리가 숲정이를 떠나올 때 가장 잘한 일이 하나있었다?”
“뭔데요? 슬픔 중에도 기쁜 일이 있었나 보네요?”
“그래 맞아. 포탄이 빗발치는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큰 아이들 둘이 살아나온 거야.
바로 그 애들과 부상병을 실은 차를 타고 왔지 하하하.”
“예? 그럼 누구누구가 살았어요?”
“이름처럼 행운을 지닌 남자 아이 알지?”
“아~ 필릭스요? 나보다 3살 아래니까 지금 스물 세 살 인데 어디에 있어요?”
“응 우리 교회 장로님 건축회사 직원이고 기숙사에서 사는데 열심히 일하고 있지.”
“와! 보고 싶다 얼마나 컸는지, 근데 또 하나는 누구에요?”
벤의 궁금증이 발동했다. 키예프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겨우 참았다는 듯이 장난 끼가 들어있는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 동생은 아주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 향수회사에서 조향사를 하고 있지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있다?”
“이상한 거요? 뭔데요?”
“궁금하지? 하하하하.”
키예프가 웃자 모두 따라 웃었다. 벤은 점점 궁금해졌다. 숙모는 삼촌처럼 개구 진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벤, 제인 알지?”
“알지요 당연히.”
“하하하 서로 마음이 통하나 보네?”
“예? 마음이 통하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신바람이 난 숙모는 눈이 커진 벤에게 말했다.
“제인이 주일이면 꼭 오는데 그때마다 벤을 생각하면 꽃향기가 난다고 하더라고?”
“예? 무슨 꽃향기가요?”
“그렇지 이상하지? 그래서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니까 옷에서 나는 거라고 했지.
그런데도 옷을 갈아입고 목욕까지 했다며 기어이 아니라고 우기며 벤을 생각하면
꽃향기가 났다는데 이상하지 않아?”
벤은 꽃향기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