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과자는 높은 선반 위에…
류 엽
어린이 명절이 다가왔다. 나의 딸은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을 위하여 수정궁이나 유명 랜드에 데려가 같이 놀아 주는 것도 필수지만 어떤 맛있는 음식을 사줄까 하는 것에 꾀 신경이 쓰이는 일인 것 같다. 지금의 영양과잉으로 눈에 띄게 불어나는 아들애의 몸무게를 바라보며 어김없이 또 사달라는 피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미국에선 한국 돈으로 만 원 대라도 크고 맛있는 피자를 사 먹을 수 있는데 한국에선 애들이 선호하는 이삼 만 원 대의 치즈피자라도 몸에만 좋다면야 당연히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딸은 아들애와 “진지”한 상의에 들어갔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 어떤 것일가를.
행복하고 넉넉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 보늬라니 가슴 깊숙이 묻혀있던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힘든 시골 생활은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시가지 거리에서 우리 맞벌이 부부의 낮은 봉급의 젊은 가정은 언제나 바쁘고 빡빡하였다.
그때 우리는 설 명절이 되면 친척이나 직장 간부들에게 작은 선물이나마 마음을 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그믐날 오전이었다. 남편 직장의 나 어린 동료 부부가 선물 하나를 가져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선물은 역시 그 당시 제일 유행하던 계란빵( 鸡蛋糕 )함이었다. 빨간 모자, 빨간 치포를 입은 두 남녀 신동이 두 손을 한데 모으고 공희(恭喜)를 하는 전통 설 인사 표지를 한 계란빵 봉지는 그 시절 유행 선물이었다. 그나마 남편이 직장에서 작은 “깨알”( 芝麻 )급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 집에도 가끔은 이런 것들이 들어 왔다.
직장 동료가 정중히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기가 바쁘게 애들은 쪼르르 옆으로 달려와 계속 나에게 물어댔다.
“엄마, 저거 우리 언제 먹어? 오늘 그믐날 저녁? 아님 낼 설날 아침?”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저거 너네 주라고 사 온 거 아니라니까.”
거듭되는 해석에도 애들의 끊임없는 보챔에 끝내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랬다. 그때 우리 생활에 들어온 선물을 성큼 풀어 애들을 먹일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도 또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데 그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것 뿐 이었다. 그해는 우리가 이미 선물을 줘야 할 집에 다 준 뒤여서 나는 그것을 애들이 걸상을 놓고도 닿지 못할 높은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설 명절이 아니어도 또 다른 명절, 혹은 또 다른 수요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해는 그“기회”가 금방 닥쳐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급급히 밥 한술 지어먹고 애들 챙겨 유치원, 탁아소에 보내고 하루 종일 밖에서 팽이처럼 돌다 밤늦어서야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지어먹어야 했고 애들을 건사하여 녹초가 된 몸을 잠자리에 쓰러뜨리고…계란빵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체 어느 듯 한해가 지나가 버렸다.
또다시 설 명절을 맞이하였다. 선물들이 오고 갔다. 나는 갑자기 그 계란빵이 생각났다. 그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정말 저 선반위에 올려놓은 선물 깜박 했네요.”
“그래? 나도 몰랐는데.”
성질이 급한 나는 더는 남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앉은뱅이 걸상을 잡아당겨 올라서서 그 계란빵을 내려놓았다. 손엔 뽀얀 먼지가 가득 묻었다. 그 당시 가장 인기 간식을 드디어 먹게 된다는 들뜬 기분에 애들은 마구 이리저리 퐁작퐁작 들뛰었다.
포장을 풀었다. 순간, 우리는 모두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모양새를 분간하기 어렵게 새까만 곰팡이가 빵표면을 쫙 덮고 있었다. 냉장고라는 것도 모르고 살던 그 시절의 비극이었다. 애들은 와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애들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지하고 무정하고 바보 같은 엄마라는 생각에 눈에 눈물이 나 애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냄새 때문에 나는 급급히 봉지를 손에 움켜쥐고 집밖의 쓰레기 무지로 달려 나갔다.그런데 곰팡이 속에서 계란빵이 하나하나 땅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글쎄 계란빵 속엔 먹다 남은 반쪽자리가 하나 있었고 전통적인 전체 숫자에서도 하나 모자랐다. 새 상품이 아니였나? 나는 불끈불끈하는 혼잡스런 생각을 머릿속에 주먹다짐으로 꽉꽉 억누르며 집안에 들어오기 바쁘게 남편에게 화를 내였다.
전번에 이거 선물한 그 직장 동료 말이에요. 과자 새로 사서 가져온 거 맞아요?
왜?
나는 방금 목격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실 그 시절, 우리같이 빡빡한 생활을 하는 소시민들의 생활 습성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하느라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혹은 포장도 제대로 점검안한 채 빙빙 돌려 선물하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그럴 생각이었긴 하지만, 그 동료의 성의가 못 마땅해 내가 비양 거리는 말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미쳤어? 제 정신이야, 남의 성의를 어떻게?!
남편의 꽥 하는 말투에 나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한참만에야 나는 중얼 거렸다.
그럼 그건 뭔데?
애들이 잠든 그날 밤, 남편은 소리친 것이 미안했던지 조용히 나에게 사과 하였다. 어느 날인가 자기가 집에서 술 한 잔 하는데 안주가 마땅치 않아 조금 꺼내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어처구니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 입에도 넣어 주지 못하고 올려놓은 것을!… 하긴 결혼 때부터 남편이 애들처럼 과자나 면식을 유별나게 좋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부대에 갔을 때 제일 기분 좋았던 것은 끼니때 나오는 만두( 馒头 )때문이었다고 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심부름 시킨 돈에서 가만히 과자 한 쪼각 샀다가 밥도 못 먹고 쫓겨났었다는 얘길 듣기도 했었다.
그날 밤, 나는 서른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 하였다. 도대체 남자들은 언제가야 철이 드는 걸까?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그와의 동고동락 속에서 그의 사람 됨됨을 잘 알게 된 나는 엉뚱한 생각을 떠 올렸다. 끝까지 큰 벼슬은 하지 못했어도 직장에 충실했고 동료들을 항상 그처럼 따뜻이 포옹하며 살아 온이 “깨알”벼슬의 당원간부가 그때 혹시 그 동료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던지?…
아아, 사랑하는 내 새끼들아, 그땐 엄마가 너무 미안했어!
2007, 5. 8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