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어제 주일미사를 본당에서 드렸다. 다니는 직장 때문에 시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가 많았는데 어저께는 집에 올라갔기에 본당에서 드렸다. 자주 올라가지 못해서 낯선 느낌이 드는 거 참 기분이 싱숭생송하더군. 30년 가까이 다닌 본당이니까 내집 같았는데.....
미사 중에 새로이 뽑은 복사들 임명식(?) 뭐라고 들었는데 가물가물하네. 회중석 맨 앞에 올망졸망, 표현이 그렇다. 하얀 복사옷을 입은 아이들이 70명은 넘어보였다. 앞줄에는 조그만게 아직 유치원 다닐만한 이이들이 앉아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하나하나 호명하자 "예, 여기 있습니다"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제단 위로 올라가네. 아주 절도가 있었다. 열두 명의 새복사가 올라가니 제대가 꽉 찬 느낌이다. 이어, 보좌신부님이 독서대에서 손벽을 딱~하고 한 번 치니 함께 절을 하고 또 한 번 치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임명식이 끝나고 맨앞자리, 복사단 자리로 돌아와서 앉는다. 신부님 말씀이 백명이 지원했는데 6개월간 새벽미사를 꼬박 빠지지 않고 나온 아이들이 열둘, 단 한 번의 결석도 용납하지 않고 엄격한 커트라인으로 12/100이 오늘 이 자리에서 새복사로 선 겄이다. 가만히 보니 뒷줄에 앉은 아이들은 키가 훌적 크다. 아마 육학년이 되어보인다. 복사단복을 입지 않은 게 듬성듬성 보이기에 아마도 복사단 아이들 수자만큼 단복이 모자랐을 터이지.
여기도 확연한 여초다. 긴머리를 꽁지머리로 감싼 걸 보니 아주 단정했다.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보다 훨씬 크다. 들은 바로 여자애들 때문에 남자 복사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지 아마. 그래서 어느 본당은 남자애들로만 복사단을 꾸려간다지.
요즈음은 눈물이 흔하다. 오래전에 아들을 복사 시키려고 새벽에 아들을 깨워서 미사 가려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온갖 감언이설로 꼬셔서 끌고오면 저만큼 달아나며 "나 복사 싫어, 본당 다준다고해도 난 싫단말야!" 새벽미사 오는 자매님들이 킥킥 웃음을 참으며 지나간다. 이 창피 우야노! 수녀님이 관 두래요. 지 싫은 거 어쩌겠냐고. 애비 욕심으로 싫다는 놈 시킬 수가 없고. 그놈이 대학교 입학시험 미끄러진 뒤로 미사를 궐한다. 그렇게 합격시켜달라고 빌었건만, 예수님이고 성모님이고 다시 안 본대요. 아씨시 가서도 미안했는데(이놈이 프란치스코거든) 이젠 연구소에서 박사학위 준비하는 놈이 얼마나 열심인지 모른다. 밤 11시기 퇴근인데도 파티마 청년회 회장을 하더니 올해는 부회장을 하는 걸 보니 기특하다. 청년들이 모자라니 회장하다가 부회장 할밖에. 세상도 이랬음 좋겠다. 감투 욕심 없는 세상아! 어서 오려무나~
우리 아이를 두고 복사 시키려고 애를 쓰던 시절이 떠오르는 건 좋은데 눈물이 왠말이람! 저 아이들 중에서 사제 성소가 나올거고, 수녀성소가 나오질 않겠나 말이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복사하겠다고 새벽 미사를 다니는 저 아이들 뒤꼭지를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올밖에..... 엄마가 깨워주기 힘든 아이는 이웃집 아주머니(아이 입장에서)한테 새벽 미사 가실 때 절 데려가달라고 하더래. 겨울에는 새벽미사 가려면 컴컴한 길을 걸어가야니까 말이다. 캄캄한 새벽 다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집 앞에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더라고. 그 자매님 말이 시집살이 엄청 쎄게 했다더군. 물론 새벽 미사는 빠질 엄두도 못내고. 코끝이 시큰하더니 그예 눈물이 나오더라고. 시린 손을 비비며 이웃 아주머니를 기다리던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상큼한 세상, 그 아이들이 세상엘 나오면, 비록 성소를 받지 못했다하더라도 뭔가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또 한 사람의 톰즈 이태석 신부님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하는 새벽미사가 우리의 구원이 아닐까?
미사내내 눈물이 그치질 않았어. 내 사정도 딱하거든. 구정엘 다녀온 고향집엔, 아흔이 가까운 부모님만이 횅댕그런 집을 지키고 계시거든. 십오년을 넘도록 겨우 화장실 다녀올 정도의 거동을 하시던 어머님이 올겨울부터 귀저기를 차고 계시니 아버지도 기력이 떨어져서 외출도 혼자 하시기 힘들고.....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실까 했는데, 아버지가 눈물 글성하시며 그러시더라고 "임자, 혼자 거길 가면 난 어쩌노. 임자 없이 홀로 이 집에 살 순 있겠는가?" 종일토록 거실 쇼파에 앉아 서로 건너다 보는 두 분께 아무런 위로도 도움이 못되는 불효막심한 자식들이.....
십계명의 사계명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켠이 꽉 막히는 건 우짤꼬. 내 아무리 교리선상을 하고 병원에서 환우교리봉사를 한들, 지 부모 곁에 있질 못하는데 우예 하늘나라 가기를....... 언감생심이지 내 못가, 무슨 낯짝으로 구원받겠다고 갈거며
잘못 산게야,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산게 헛살았어. 이레 살 거 뭣하러 세상에 나왔을까? 커피를 마시다가도 세상은 왜 이리 쓴건지, 설탕을 두어 스푼 더 넣어도 내입은 쓰기만했어. 기도 중에 '그분'을 뵙기 송구스러워 고개를 숙일 따름, 내 인생은 이리도 쓰기만해서 공장엘 내려와선 커피에 설탕을 두개 더 넣었어. 오늘처럼 맵싸게 바람부는 날이면 덜컹거리는 창문 땜에 잠을 설치겠지. 몹시 부끄러웠어. 이렇게 사는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