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을 사랑함에
밤을 세워 달려온 열차가 파리 근처에 왔을까?
2층 침대칸에서 내려와 복도에 나오니 새벽을 기다리는 몇 몇 승객과 기지개를 켜며 "봉~쥬흐" 새벽 인사를 나눕니다.
여덟 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파리의 리옹역은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부수수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순례자는 벌써 다음 순례지로 고개를 돌리며 매정하게도 파리와 정을 떼고 있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면 아침도 거른 채 집을 나선 파리지앤느들의 출근차량으로 도로는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서울이나 파리거나 사람 사는 모습은 매양 비슷한가 봅 니다. 버스가 씽씽 제 속도를 낼 때면 멀리서 에펠탑이 커다란 제 몸뚱이에 깜박거리는 전구를 달고서, 서둘러 달려온 새벽 여명이란 놈이 "방~빼" 하며 어둠을 향해 고집스럽게 달려드는 것을 달래고 있습니다. "야 임마, 해장국이라도 먹고 오지. 기다려, 밤이란 놈도 눈곱이나 떼야지 ... 어차피 저녁이 오면 너도 방 빼야 할 터인데 서둘기는...." 금방입니다.
어느새 차장 밖으로 싱그러운 아침 공기가 밤새 내린 빗방울을 한껏 움켜지고 맑디맑은 겨울 아침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도중에 아침 요기라도 하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서 저마다 전화기를 듭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멀리 떠나온 터라 아이들이 매우 보고 싶었습니다만 기껏, "밥은 제 때 먹었고,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제 주변머리가 이렇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루르드의 성모님을 네가 봐야 하는데 얼마나 예쁘신지, 또 루르드의 생명수에 침수예식을 할 때는 얼마나 차가운지 도망가고 싶었단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몸을 담궜는데말야, 오히려 몸속에서 따뜻하고 신비한 힘이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 너무 좋았단다. 너희들과 꼭 다시 와야 할 텐데..."
바게트가 싫어서 낮 익은 토스트랑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도 먼 이곳으로 불러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 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벨기에는 우리나라 충청도만한 크기에 약 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이며 수도는 브뤼셀입니다. 1831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는 남부의 곡창지대와 북부의 공업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북부의 플라망어(네댈란드어)와 남부의 왈롱어(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나라의 일체감이 부족하여 분리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브뤼셀의 중심가는 시청사가 있는 그랑팔라스며 고색창연한 건물이 빼곡히 들어 서 있는 길드 건물이 둘러 선 광장이 아름답습니다. 괴테가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다지요. 아름다운 꽃잔치 가 벌어지는 봄이 오면 관광객들이 많이 온답니다. 괴테가 제 2의 파리라고 불렀을 정도이니 브뤼셀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알 수 있겠지요?
그랑팔라스(la grand- palace)광장을 온통 둘러싼 게 제화공 길드와 제과공, 제분업자들의 길드 등 업종별 조합이 고색창연한 건물이 볼만합니다. 특색은 건물 특정 부위에 금박을 입혀서 햇빛에 반사할 때면 대단합니다. 그 옆에 사층 정도 되나 아주 좁은 건물이 바로 브뤼셀에서 최소 두어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이라기에 가보았습니다. 아무리 전통을 고수하는 유럽이지만 한 층당 사십 여 평도 채 안되어 보이는 좁은 식당하며 올라가는 계단에는 술에 만취한 술주정꾼이 정오 무렵인데도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밖으로 나온 메뉴판을 보니 거위 간으로 만든 요리가 이 레스토랑의 특급요리라네요. (너도 먹어봤냐? 여기서는 말고 파리에서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지요. 수준 탓인가 저한테는 별로던데요.)
벨기에는 수예품과 카페트가 유명하여 가게마다 즐비하게 걸려 있고 길가에 해바라기하면서 마실 수 있는 카페에는 유명한 벨기에산 맥주가 거품 가득한 채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골목이 좁아 소형차라야 다닐만해서인지 예쁘게 생긴 소형차들이 골목마다 정차해 있고 반시간이 채 안되어 중심가 구경을 다 해버립니다. 명동 정도 될거예요.
아~! 유명한 "오줌싸게 소년(Manneken Pis)" 동상을 길모퉁이에서 발견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을 여행 가서 실망하는 볼 꺼리 베스트 3위 안에 든다고 하더군요. 싸게 소년은 정말로 작습니다. 진짜 아기크기 정도의 동상입니다.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이 꼬마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1) 브뤼셀이 스페인에 점령된 17세기 초, 스페인군 보초에게 창문에서 오줌을 갈긴 꼬마.
(2) 역시 스페인군의 공격으로 도시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불을 끄기 위해 오줌을 갈긴 꼬마.
(3) 도시의 유력자의 아들이라는 주장. 어느 날 그의 아들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 온다면 발견될 그 순간의 포즈를 조각상으로 만들어 도시에 기부하겠다고 그가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기적적으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 순간 오줌을 누고 있었더래요. 또한 브뤼셀의 이 소년은 전 세계의 동상 가운데 가장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꼬마 줄리앙’으로도 불리는 이 청동상은 몇 번이나 침략자들에 의해 약탈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는데, 루이 15세는 당시 침략을 사죄하는 뜻으로 이 동상에 화려한 후작 의상을 입혀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브뤼셀을 방문하는 많은 국빈들이 줄리앙의 옷을 만들어 와 입히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고, 명절 때마다 줄리앙은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네요. 그 의상들은 그랑 팔라스에 있는 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고, 우리나라 꼬까옷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옷만 해도 600벌이 넘는데, 계속해서 옷이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저희가 갔을 당시에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싸게 소년을 나체상이라고 합니다. 이 동상은 1619년에 제작되어 ‘브뤼셀의 가장 나이 많은 시민’으로 여겨지고 있답니다.
참, 그의 친구, 오줌싸게 소녀(Jenneken Pis) 동상도 그 근처에 있지요. 이건 그냥 관광용으로 80년대에 제작한 것이라 합니다만 엽기입니다. 아무리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해도 소녀가 쭈그려 앉아 오줌 누는 모양은 엽기적이구 말구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이내 돌아섰지요.
저희 내외는 와풀의 본고장인 여기서 와풀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습 니다. 싸게 소년 근처에는 기념품 가게도 많고 와풀 가게도 많이 있습니다. 이곳은 밤에 가는 게 더 좋더라구요.
발길을 돌려 중심가에 위치한 "노트르담"성당에 갑니다. 왜냐고요? 미사 시간에 맞추려고.
혹시나,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 편에서 올렸잖아? 항의하실까봐 그 노트르담은 파리에 있고 오늘 제가 간 노트르담성당은 브뤼셀의 노트르담입니다. 유럽에 노트르담 성당은 아주 많대요. 유럽 사람들이 성모님께 보이는 사랑은 여간 지극한가봐요.
브뤼셀의 노트르담 성당은 중심가의 상가가 즐비한 도로에 자리했는데 대개의 성당과는 달리 계단이 없이 성전으로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와 높이가 같아 참 편하더군요.
로마, 파리 등 대형 성당만 봐오던 터라 알맞은 크기와 편안한 입구 땜에 뭐랄까 미사드리기에는 오히려 맘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너무 좋았다고 해야겠지요. 물론 이 성당도 퍽 오래된 듯 제대에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성모님과 성인들이 계셨고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제대가 동시에 자리하여서 퍽이나 기품이 흘러 넘쳤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히브리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봉사해 왔고 아직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보여 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여러분 각 사람이 희망을 성취하기까지 끝내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써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으십시오."
독서를 낭독하는 대학생(우연하게 한국인 대학생 배낭족이 함께 미사를 드렸거든요)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노트르담의 성전을 퍼져나가고 있는데 미사에 참례하는 벨기에 사람들도 이 말씀을 이해하는 듯 엄숙했소이다. 송 신부님의 오늘도 "성인되십시오" 라는 강론이 더욱 절실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영성체 때는 여러분의 벨기에 교우들과 순례자인 듯 아시아 사람들도 함께하여 매일 매일 바치는 미사는 여러 인종의 신도들이 함께 하는 국제적 미사(?)가 되어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 사고쳤어요, 여기서.
눈이 파란 예쁜 처녀랑 친교의 시간에 뺨을 대어봤다니까요. 며칠간 세수를 하지 않으려했는데.....
깊은 묵상에 잠겨있다 밖으로 나오니 바깥은 바로 분주한 번화가인지라 길에 좌판을 벌인 집시여인이 관광객을 부르고 있네요. 집시여인의 검은 눈이 무척 고단해 보였습니다. 황혼녘이어서 그리 보였는가, 모르지요. 흥정을 벌이며 몇 가지 토산품을 사는 일행과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도 만났지요. 대단한 일이잖아요. 우리나라가 세계화 되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햐흐로 유럽은 온통 성탄세일 끝 무렵이어서 가난한 순례자를 자꾸 유혹하는데, 우리는 브뤼셀의 명동에 서 있습니다.
어스름 어둠이 짙어 오는 번화가는 일상을 끝낸 연인들이 도로마다 가득 밀려옵니다.
이제 활기가 넘쳐나기 시작하네요. 역시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곳이어야 장사도 잘 되고 사람 사는 듯 생기를 느낄 수 있나 봅니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황금빛 "생 미셀"조각이 눈부신 생 미셀 성당이 보여 얼마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성당 꼭대기에 성 미카엘 천사가 창을 들고 서있던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게 낮에도 일품인데 밤에는 오죽하려고요. 황궁, 그 앞에 넓게 펼쳐진 황실 정원,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공원 ...어둠이 짙어진 밤거리를 버스투어로 즐기며 일행들 표정은 심드렁해 하는 것이 역력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데요? 로마와, 아씨시, 루르드와 파리에 길들어진 한껏 도도한 눈에는 심드렁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여행갈 때는 제일 마지막에 로마를 들려야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가 봅니다. 오늘 숙소는 번화가에 자리한 현대식 호텔이어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화반점, 중국식당으로 갑니다. 한국식 다음으로 중국집이 입에 맞아서 루르드에서 프랑스 요리에 질려있던 제게는 상당히 신나는 메뉴였습니다. 깔끔하게 중국 전통 옷을 입은 종업원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교포가이드가 서빙하는 청년을 가리키며 한국인이라 합니다. 젖먹이 때 이곳으로 입양해 온 탓이라 우리나라 말도 못하지만 한국에서 온 순례자를 보면 저렇게 반가워한다는 말을 들으며 잠시 묘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저 청년도 자기를 낳아주고 어쩌면 버리다시피한 자기 친부모를 찾고 싶을까요?
화제를 돌려 은발이 잘 어울리는 가이드를 소개합지요.
60년대 후반 고향을 떠나서 프랑크프루트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다가 이곳 벨기에의 루뱅대학에서 공부를 했답니다. 당시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만나 아이를 키웠고,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근무하던 학교마저도 은퇴하였답니다. 아마 일찍 떠나 온 조국이 그리워서 일까, 가끔 한국에서 오는 여행자들 가이드를 하며 소일한다는 곱게 나이든 가이드에게 "한국에는 가끔 나가십니까?" "왠걸요,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고향이 너무 낯설더라고요, 조카들도 있지만 ...또 너 무 멀고요...." 말 꼬리를 흐리는 가이드의 눈 주위에는 주름도 주름이지만 못살던 시절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만 했던 한 여인의 신산한 삶의 피로와 고향도 가물 가물거리기만 하는 짙은 외로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60년대 말인가? 탄광 광부와 간호사로 조국의 젊은이들을 떠나보낸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자신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이역만리 외국 땅으로 고생시키려 떠나보낸 조국의 못난 대통령을 원망하십시오. 고생해서 모은 돈을 조국으로 보낸 여러분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저와 고국에 남은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다시는 이 땅의 아들딸들이 먼 이국땅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잘 사는 날이 올 때까지 몸성히 계십시오."
북받치는 울음을 참으며 연설을 끝낸 대통령은 모였던 간호사와 광부들을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는 글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지.
찹찹한 마음으로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벨기에 맥주를, 평소 눈에 전혀 익지 않은 놈으로 한 병 사들고 호텔로 돌아옵니다. 못난 조국을 만나 고생하다가 결국은 이방인이 되어 살갗을 파고드는 처연한 겨울비 내리는 유럽의 깊어가는 밤, 레인코드 깃을 올리고 돌아가는 가이드를 배웅합니다.
그대는 깊숙이 들이마시면 만져지는 이 외로움의 정체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제법 잘 살게 되었는데도 바깥으로, 바깥으로 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린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시킨다고 내보내는 이리도 잔인한 내 나라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유럽의 겨울은 하루도, 단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없나보네요!
멀리, 내가 태어나서 부댓기며 더러는 고달픈 삶을 원망하던 그곳은 지금 한낮인가요?
그리운 이여 ! 차가운 겨울비가 창문을 적시는 깊은 밤, 내 안부에 혹여 감기라도 옮길까 염려되어 차마, 전화기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