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갑자기 알츠하이머, 즉 치매라는 판정을 받는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의 하나였다. 대학에서 신경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저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라고 한다. 그동안 치매로 알려진 병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환자를 바라보는 보호자 혹은 제3자의 입장에서 논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치매에 걸린 당사자를 등장시켜, 그 증상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바로 그런 내용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이 ‘나였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50세의 나이에 이른바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 기억을 잃으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앨리스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대부분 치매가 65세가 넘은 나이에 진행되면서 발병이 확인되지만, 유전적인 요인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것을 ‘조발성 알츠하이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앨리스는 젊어서부터 패기만만한 성격으로 하버드대학의 종신교수에 오른 인물이며, 대학교수인 남편과 세 자녀를 둔 여성이다. 앨리스에게 늘 진행하던 수업에서 너무도 익숙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집을 찾을 수 없는 증상이 갑자기 찾아온다. 폐경기의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기에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증상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게 된다. 결국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앨리스에게는 사랑하는 세 자녀가 있고, 자신의 활동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남편이 곁을 지키고 있다. 더욱이 학교에서는 언어심리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 수업과 연구에 몰두하며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동안 대학과 단체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고, 전공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바쁘지만 만족스러운 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더. 그런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자신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힘든 생활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애써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힘겨운 노력이 이어진다. 하지만 조금씩 지워지는 기억으로 인해 일상생활마저도 위협을 받게 되고, 남편과 가족들에게 차례로 자신의 발병 사실을 밝히게 된다. 앨리스 본인도 발병 사실을 자각하면서 인정하게 되고, 스스로의 삶을 직시하며 그 경험을 세밀하게 담아낸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라고 하겠다.
앨리스의 관점에서 상세하게 묘사되고 설명되는 내용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알츠하이머의 진행 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휴대폰에 미리 입력한 질문들에 대해 하나라도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역시 자신이 미리 작성한 컴퓨터의 파일을 확인하고 그에 따르라는 지시까지 마련하였다. 아마도 앨리스의 이러한 행위는 치매에 걸려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저 치매로만 알고 있었던 알츠하이머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보고, 그러한 병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비록 그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