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萬曆) 15년 정해년 3월 22일(신해)
맑음. 황주에 머물렀다. 정여인 등 여러 친구들과 함께 광원루(廣遠樓)에 올라가 풍경을 즐기며 감상하였다.
晴 留黃州 與汝仁諸益 登廣遠樓玩賞
만력(萬曆) 15년 정해년 3월 23일(임자)
맑고 바람이 붊. 날이 정오가 되지 않아 출발하여 저복원(貯楅院)으로 들어갔다. 구현(駒峴)을 거쳐 생양관(生陽館)에서 묵었다. 고을 원 고경조(高敬祖)와 더불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양덕(陽德) 사람 황윤검(黃允儉)이 가찰방(假察訪)으로 왔다. 태천현감(泰川縣監) 이유(李愈)도 면직되어 이곳을 지나다가 함께 즐긴 뒤 자리를 파하였다.
晴而風 日未午 發行 入貯楅院 歷駒峴 宿生陽館 與主倅高敬祖相話 陽德黃允儉以假察訪來 泰川縣監李愈亦落職經過 同歡而罷
▶ 가찰방(假察訪) : 임시 찰방(察訪)이다. 찰방은 관찰사 아래에 소속된 종6품 지방관으로 각 역(驛)에 배치하여 역마(驛馬), 역민(驛民), 사신 접대 등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본래 역승(驛丞)으로 불렸으나 중종 30년(1535) 찰방으로 명칭을 바꿨다.
《국역 배삼익 조천록》 p150~151, 김영문(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