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임책방은 법곳길 주말농장에서 열렸습니다. 감자와 당근, 양배추, 상추 등을 뜯고 나서 갈증을 해소해 줄 막걸리 한잔을 걸친 채 책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염불보다는 잿밥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어수선한 환경이었지만, 토론은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이건 단순한 유태인 학살을 다룬 정치적 만화가 아니라 한 컷 한 컷 정성을 기울여서 적절한 내용과 장면을 멋지게 표현한 예술 작품이라는 의견, 팔레스타인이라는 현실적 약자를 억누르고 있는 가해자 (유태혁 아니고) 유태인 중 어느 하나가 이미 충분히 우려먹은 그들의 과거사를 다시 한번 상업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만든 또 한편의 시대착오적인 포르노일 뿐! 이라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이번에도 역시 다양한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젖 주면 좋아하고 배고프면 울음이 쏟아지던 영아기의 상태, 분리불안증에 힘들어했던 유아기의 딱한 처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득도하지 않는 한 영원히 달라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단일 해석이 불가능한 대부분의 책이나 사건들에서 어떤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는 일이 나라는 존재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허무감에 자주 휩싸입니다. 이번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ㅠ
하지만 임책방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책읽기나 토론이 아닙니다. 술과 노래가 이어지는 뒤풀이입니다. 다들 좋은 분위기에서 멋진 노래들을 한 곡조씩 뽑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희소성의 원리에 따라, 평소에는 잘 들어볼 수 없었던 보름달 트리오의 노래가 가장 멋졌습니다. 노래가 그칠 때마다 개구리들이 다음 노래를 재촉했습니다. 다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개구리 소리라며 즐거워했습니다. 다음 노래를 잠시 미루고 그들의 재촉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개구리 울음은 청개구리, 참개구리, 금개구리, 비단개구리 등 개구리의 종류마다, 그리고 크기마다 소리가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슷비슷한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착한 울음, 용감한 울음, 비겁한 울음, 간사한 울음 따위는 없습니다. 애초에 개구리는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건 뱀도, 지렁이도, 지네도, 딱정벌레 등등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와 의미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존재는 내가 의미를 부여한 만큼 보일 뿐이지, 내가 부여한 의미대로 존재하거나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임책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추신) 8월 26일 임책방은 카렐 차페크 저, “정원가의 열두 달”입니다. 살다 살다 이제는 정원(garden)도 아니고, 정원 가꾸기에 대한 책도 읽게 되네요. 다음 책모임에서 어떤 푸념 섞인 얘기들이 오고 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첫댓글 "존재는 내가 의미를 부여한 만큼 보일 뿐, 내가 부여한 의미대로 존재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공감이 가는 통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