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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고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의 본질과 의미를 짚어내고 있는 이 책의 독서 경험이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역사학 전공자로서, 학생들에게 역사학을 체계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하여 강의 교재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목차나 구성도 짜임새가 있고, 무엇보다 역사와 역사학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에는 ‘오늘날 역사학에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모두 6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역사학자로서의 저자의 답변이 주요 내용들을 채우고 있다.
먼저 저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하나씩 검토해보기로 하자. 1장에서 ‘누구의 역사인가’라는 제목을 통해서, 기존의 주류 역사학에 대한 반성적 검토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기존의 역사서들은 주로 남성들이었던 영웅적 개인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또한 과거 학교 교육에서는 특정 사건이 발생한 연대나 각종 수치들을 제시하여, 마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암기력이 좋아야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점차 개인이 아닌 사회적 변화상에 초점을 맞춘 사회사가 저술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자본주의 성립 시기의 노동운동이나 노동계급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면서 역사 서술의 내용이 변화했다고 한다. 이제는 영웅적 인물에 초점을 맞춘 서술보다는 오히려 대중의 저항과 피억압집단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그동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사와 사회적 약자의 시각도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변화는 역사학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어디의 역사인가’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국가’ 중심으로 다루어졌던 기존의 주류적 경향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실제 앤더슨에 의해 국가는 근대적 산물로서 실체가 아닌 ‘상상의 공동체’라는 견해를 제기되었고, 그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기존 역사 서술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가와 국가 혹은 지역과 지역의 경계에 놓인 중간지대에 대한 관심이 더 중요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 서술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미 대서양과 태평양 등을 오가면서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역사는 관심도가 줄어들고, 이제는 세계사 혹은 지구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법칙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역사관이 지닌 의의를 설명하고, 그동안 서구 중심으로 바라보았던 역사관의 시각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무엇의 역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 서술의 대상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성사와 같은 관념사를 비롯하여 과학사의 중요성, 그리고 초콜릿과 같은 사물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이 역사의 흐름에 적잖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점차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대해 논하는 자연사에 대한 관심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4장에서는 ‘역사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제 전문적 역사와 함께 대중적 역사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실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자만이 아닌 구술 자료와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 자료도 중요한 역사 자료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역사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도 상세히 짚어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 자료들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5장의 ‘원인이 중요한가 의미가 중요한가’라는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 실제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역사 연구는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이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동안의 주류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를 탐구하는 미세사가 출현하고, 이제는 더 이상 역사에서 인과 관계만을 유일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후대 역사관에 큰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와 아날학파의 성과에 대해서 이 항목에서 상세히 예증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제는 당대의 문화를 따져 기술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미시적 분석과 이를 통한 일반화를 통한 서술이 주가 되는 ‘신문화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라 하겠다.
마지막 6장에서는 ‘역사는 사실인가 허구인가’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가의 역사관과 역사 서술의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비단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특정 사건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적 형식 논리에 따른다면, 서로 다른 시각 가운데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역사 서술에서도 역사가의 시각으로 인해 특정 사건을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를 허구냐 사실이냐의 관점에서 논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주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나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메타역사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저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에 관한 기록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주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실상 이 책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중요한 논점들이 제시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진지하고 전문적인 답변이 펼쳐지고 있다. 모두 6개의 질문으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들에 대해서 저자는 다양한 전거와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정 개인을 중심으로 역사적 흐름을 논하는 기존의 주류적 관념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향의 역사 서술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더 넓어졌다는 것을 큰 성과로 꼽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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