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는 말(김진해)
‘반빈곤 네트워크’ 활동가 가토 미와(왼쪽)와 히라타 세이코. 사진 강내영
‘반빈곤 네트워크’ 활동가 가토 미와(왼쪽)와 히라타 세이코. 사진 강내영
지난주 단골집에서 일본 사회의 빈곤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민단체 ‘반빈곤 네트워크’의 활동가인 히라타 세이코씨와 가토 미와씨를 만났다. 빈곤에 맞서는 한국 시민사회의 노력을 배우고자 8월29일부터 9월9일까지 관악주민연대, 반빈곤특별위원회 대학동 프로젝트, 노숙인 지원단체인 다시서기센터와 열린여성센터, 강남구 1인 가구 커뮤니티센터 등을 방문한다.
두 사람은 경계선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과 공생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스스로 빈곤과 정신장애에 시달렸던 히라타씨는 어느 날 빈곤이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고 생활상담사가 되어 고립무원에 처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생 가토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난민 문제에 직접 뛰어들어 난민 자녀의 학습과 장학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일본 청년들의 무기력증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의 지역 운동과 청년들의 정치 참여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찾는 길이 말의 기원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모르지만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이 말을 발명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함께 있기. 그 말을 알고 싶어 눈을 떼지 않기. 화자가 먼저 말한 다음에 상대방의 말로 통역하는 장면은 그걸 확인해 준다. 이를테면, 나는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치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하듯이 두 사람의 눈을 보며 말한다. 두 사람도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모르겠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옆에 앉은 강내영 선생이 통역을 해 주면 그제야 알아듣는다. 말은 그렇게 천천히 오나 보다.
공생은 시혜나 위력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다그칠 수 없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