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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어본 사람들에게 관우는 흔히 충과 의의 화신으로 그리고 장비는 용맹스럽긴 하지만 술을 너무 즐기고 난폭한 무식한 장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관우와 장비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고 싶다. 삼국지연의를 제대로 한번 살펴보면 정작 유비의 주요 전투에서 지략(智略)을 발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 장비고, 정작 관우는 지략과 계책면에선 별다른 활약을 보여준 사실이 없다는 꽤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삼국지연의만을 놓고 관우와 장비의 주요 전투 활약상을 살펴보자.
먼저 관우. (1) 반 동탁 17로 의군이 일어났을때, 화웅과의 전투에 마궁수 신분으로 자원 출전하여 단칼에 화웅의 목을 벰 (2) 유비군이 패해 일시적으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시, 원소와의 전투때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베고 조조곁을 떠나면서 오관의 여섯 장수를 벰 (3) 적벽대전때 제갈량은 화용도에 불을 피워 패배한 조조를 유인해내서 그를 죽이라 했으나, 관우는 옛적 조조가 자신을 보살펴준 정리를 생각해 풀어줌 (4) 유비가 형주를 공략할 때 황충과의 전투에서 접전을 벌임 (사실상 무승부) (5) 위,오 연합군이 형주에 쳐들어왔을때, 처음에는 위나라의 방덕,우금등을 죽이거나 사로잡는등 승승장구했으나 끝내 오나라 여몽의 계교에 빠져 패하고 결국 목숨을 잃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확실히 관우는 용맹도 뛰어나고, 조조나 황충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살려주는등 의리와 정도 있음을 확인할수 있지만, 정작 관우가 지략을 발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경우는 거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 있다면 형주를 지킬때 홍수가 날것을 예측하고 우금을 사로잡은것 정도 ?
그렇다면 장비는 과연 어떠했을까. 다음엔 장비의 주요 활약상을 살펴보자. (1) 유비가 서주를 맡았을때, 조조가 그를 시험해보기위해 유대와 왕충을 보냈는데 이때 병졸을 투항시켜 거짓 정보를 흘리게 한 뒤 유대를 사로잡음 (2) 장판교에서 조조군과 맞섰을때 숲속에 군사가 많은것처럼 위장 시간을 끔 (하지만 여기선 나중에 다리를 끊어버리는 결정적 실수를 함. 만약 정말 군사가 많으면 다리를 끊어버릴 이유가 없음에도) (3) 익주를 공략할 때 역시 거짓정보를 흘리는 계교로 엄안을 유인해내 사로잡음 (4) 한중전투때, ① 장합의 야습을 유도해내 그를 패하게 함 ② 매복계로 역시 장합에 승리 ③ 와구관에서 백성들을 길잡이로 이용 승리 (총 3연승) 이렇게 정작 유비가 익주를 공략하고, 한중을 빼앗는등 세력을 차츰 확장해 나가고 있을때 결정적 전투에서 늘상 계책으로 승리를 이끌게 한 사람이 장비다.
정작 관우는 제갈량이 형주에 관우만을 남겨놓고 장비,조운등과 함께 익주를 공략하러 떠날 때, 제갈량이 관우에게 ‘북거조조, 동화손권(북으로는 조조를 막고 동쪽으론 손권과 화친하라)’는 외교전략을 일러주고 갔음에도 오히려 손권의 혼인동맹 제안이 왔을때 ‘호랑이 딸을 개XX한테 주란 말이냐 ?’며 일언지하에 거절 결국 손권의 노여움을 사 위와 오가 함께 형주를 공략 위,오,촉 3국의 균형이 무너지게 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잃어버리게 된 결과를 만든 인물이다. 사실 말이 나온김에 덧붙이는 것이지만, 만약 관우가 형주만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촉나라는 위,오나라와 함께 충분히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삼국정립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훗날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할 때 동오와는 화친을 맺은 상태에서 그런대로 촉나라를 버틸수 있게 하고 북벌에 나섰던것을 생각한다면, 관우가 제갈량의 충고를 무시하고 끝내 형주를 잃어버리게 만든 일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결국 연의의 내용만을 놓고 봤을때 유비가 세력을 확장해나간 주요 전투때마다 가장 결정적인 활약을 한게 장비다. 익주정벌때는 계책으로 엄안을 사로잡음으로써, 자칫 길어질수 있었던 성도로의 진군길을 빠르게 만들었고, 한중전투때도 계책전으로 연전연승 초반의 승기를 잡았다. 당양 장판파때도 비록 다리를 끊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일시적으로나마 조조의 군사를 막아 시간을 끌게 함으로써 그 사이에 조자룡이 감부인과 아두 유선을 무사히 구출할수 있었다.
하지만 관우는 제갈량의 신신당부를 듣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촉나라가 위,오나라와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형주를 잃어버리게 한 결정적인 실책의 장본인이다. 전투에서의 지략뿐만 아니라 외교적 전술마저 쓸줄 모르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식으로 따지고 보니 비록 소설속 허구이긴 하지만 화용도에서 조조를 죽일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마저 놓친것도 관우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관우는 충과 의의 화신으로, 장비는 술을 즐기는 무식하고 난폭한 장수로 이미지가 굳어져버린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 두가지 면모는 성품(性品)의 대비일뿐 전투에서의 지략 발휘와는 거리가 좀 있는것이기도 하다. 관우,장비 둘 다 일당백이었던 당대의 명장이었던것은 분명하나, 최소한 연의만을 놓고보면 유비의 주요 전투때마다 지략을 발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늘 장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관우는 어떤 인물일까 ? 보통 관우의 성격적 결함을 지적하는것이 ‘너무 자부심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조조나 손권을 늘상 ‘쥐새끼 같은 무리들’이라며 비웃는것이야 전쟁에서 적으로 맞서는 상대이니 충분히 할수있는 소리이긴 하지만, 최소한 혼인동맹을 청하는데 ‘호랑이 딸을 개XX한테 어떻게 주냐 ?’며 발끈한건 좀 어이없지 않은가. 실상 따지고보면 관우의 출신 역시 일천하기 짝이 없었는데, 혼인동맹을 청하는 상대방 군주에게 하는 소리가 ‘호랑이 딸을 개XX한테 줄수 없다’니...
조조의 후한 대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안량,문추를 목베어 그 보답은 했다’며 유비에게로 돌아간것을 보면 관우는 확실히 충의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관우가 충의와 용맹을 갖춘 인물인것은 분명해도 지략이나 외교에 있어선 별다른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흔히 말하기를 관우가 평생동안 읽고 다닌것이 바로 ‘춘추’라고 하던가. 헌데 생각해보면 춘추는 어디까지나 역사서지 병법서가 아니니, 관우가 군사적 지략과는 거리가 먼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회현에서 탐관오리 독우를 매질했던 젊은 혈기의 장비. 하지만 조조가 보낸 장수 유대와의 전투에선 처음 지략을 보여주고, 이후 작은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당양장판에서 이후엔 익주에서 그리고 한중에서. 그렇게 장비는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되며 지장으로 성숙해가고 있었던것이다. 그 절정을 보여준것이 바로 한중전투다. 그리고 그 장비는 관우에 대한 복수전을 앞두고는 ‘관우형님을 조상(弔喪)하는 전쟁이니 모둔 병사들에게 상복을 입히라’는 명을 내리나 며칠사이에 그 많은 병사들을 상복으로 갈아입힐수가 없다는 장졸들을 매로 쳤다가 바로 그 부하들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한편 관우는 어떤가 ? 17로 의군때는 마궁수 신분으로 동탁 휘하의 명장 화웅의 목을 베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을땐 원소의 수하명장 안량,문추를 베고 유비에게 돌아갈땐 오관의 여섯장수를 베는등. 실로 그 용맹함을 대적할만한 자가 없는 천하용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북으로 조조를 막고, 동으로는 손권과 화친하라’는 제갈량의 충고를 무시한채, ‘호랑이 딸을 개XX한테 줄수 없다’며 손권의 혼인동맹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결국 여몽의 계교에 빠져 오나라에 사로잡혀 목숨을 잃고 만다. 무엇보다 관우가 형주를 잃음으로써 촉나라가 위와 오에 맞설수 있는 중요한 힘의 균형점이자 교두보를 잃게 된 것이니 그 점에 대한 관우의 실책은 여러번 책망해도 부족함이 없을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제대로 음미해본 사람이라면, 유비의 두 의제(義弟)중 정작 지장(智將)이 장비였고, 관우는 용맹하긴 하나 지략은 별로 없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을것이다. 국내에서 방영한 몇몇 영웅사극중 주연급 인물들을 마치 삼국지연의의 유비,관우,장비 같은 인물을 설정해놓고 늘상 관우형 인물을 지략가로 그리고 장비형 인물은 그야말로 ‘낫놓고 ㄱ자도 모를것’ 같은 일자무식의 단순무식형 인물로 그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그런 사극작가들은 삼국지연의를 제대로 음미해보지 못 한 사람들 같다. - ‘대조영’의 작가 장영철이나 ‘광개토태왕’의 작가를 두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헌데 그렇다면 소설속에 묘사된 관우와 장비는 그렇다치고, 실제 역사속의 관우와 장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두 사람의 인물됨을 단적으로 엿볼수 있는 일화 하나가 정사(正史) 삼국지 배송지 주(注)에 나와있어 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마초가 처음엔 유비를 만만하게 보았는지 한동안 그의 자(字)를 불렀다. 관우는 이를 노여워하여 그를 죽이기 바랬고, 유비가 이를 만류하자 장비는 ‘그러면 마초에게 예를 가르치십시오’ 하고 말했다. 다음날 회의실에 마초가 들어가는데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양 옆에 칼을 쥐고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마초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이후로 유비를 깍듯이 주군으로 섬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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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초가 유비의 막하로 온 시점에...
관우는 형주에 있지 않았으려나.... ㅡ.ㅡ
장비는 고향에서 나름대로 뼈대있는 집안이었습니다. 학식도 있었고요. 삼형제중에 학식, 재산등은 장비가 가장 우월할겁니다. 말은 종친이라곤 하지만 증거도 없고, 돗자리 짜던 유비, 살인자에 도망다니던 관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죠. 유비의 아들 유선이 장비의 딸과 혼인을 하죠. 초기 유비 수하들중 출신(?)이 가장 좋은 인물로는 미축, 미방과 함께 장비도 수위를 다투었을 겁니다. 근데 마초가 유비한테 완전히 쫀건 조운때문 아닌가요? 조운이 어떤장수 2명의 목을 빠르게 베와서? -_-?
그렇군요.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연의에 나오는 장비는 그 이미지와 달리 지략을 쓰는 장수의 면모를 많이 보였군요.
그러나 관우와 장비는 그 비중 자체가 다릅니다. <삼국지> 촉서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에 대한 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관우는 단순 장수의 자질을 넘어 한 주(州)나 한 지역을 맡아 다스릴 만한 인물로 나타나며 장비는 뛰어난 장수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성격 차이에서도 기인하는 것 같은데, 위 기록에서는 관우는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러우나 상류층 사람(사대부)에게는 교만하다고 나오고 장비는 반대로 상급자나 지위가 높은 자
또는 상류층 사람, 존경받을 만한 자 등(군자)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부하나 약자(소인)에게는 가혹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비가 '부하장수' 로 기능하기에는 좋은 인물일 지 몰라도 하나의 독자적인 '지도자' 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관공은... 위에서 장수 하나 때문에 수도를 옮기네 마네 난리 법썩 떨었으니 말 다했죠.
관우는 정치가 스타일, 장비는 장수 스타일이라 보면 되겠군요.
유비는 유방과 상당히 비슷하고.
저는 삼국지를 읽을때 의외로 유비의 존대감이 희박하다는걸 많이 느낍니다.
특히 제갈량 등장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