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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수 형, 만나러 왜 안 와?
강병철(소설가)
『인도로 간 예수』의 작가 송기원 선배님을 구천九泉으로 모시던 날 나는 몸의 절제를 거둔 채 한 달 만에 술떡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누가 먼저 떠나도 놀라지 않겠다’며 면벽 결의를 꿈꾸면서 고속버스 표를 끊고 계단을 오르는 찰나였다. 그즈음 남도의 작가촌을 순례 중이었는데.
어럽쇼, 안학수 형의 부음訃音이 이마를 ‘딱’ 때렸으니 '아닌 밤중에 청천벽력‘이다. 부릉부릉, 시동 소리를 뒤로 하고 부랴부랴 하차해서 대천역으로 갈아탔다. 조동길 교수님과 박명순 평론가가 동행이었다. 방명록 이름자 석 자를 적는 나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와의 마지막 약속’을 떠올리며 아, 삶과 죽음이 백지장 하나 차이임을 섬찟하게 절감하면서.
착한 성품부터 순서대로 부르는 조물주의 규칙에 절대로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의 정영상 시인이나 『본동에 내리는 비』의 윤중호 벗님이 그랬고『마을의 법칙』의 유지남,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의 송성영 르뽀라이터도 그렇게 서둘러 데려갔다. 구도의 소설가 송기원 형님과 『만다라』의 김성동 성님, 마침내 우리 모두의 스승 신경림 선생님을 모셔가더니 이번에는 안학수 형까지 놓치지 않고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 한꺼번에 예닐곱 명의 전화번호를 지우려니 씨헐씨헐 터지는 분통을 견딜 수 없다. 깊은 사랑마다 질투심에 불타는 하느님의 심뽀가 너무 노여워지는 이유이다.
이제 故안학수(1954-2024) 작가가 되었다. 그는 대전일보 신춘무예로 출발해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 『부슬비 내리던 장날』,『아주 특별한 손님』을 상재했다. 그리고 돌연 장르를 바꿔 장편소설 『하늘까지 75센티』, 『그림자 벗는 꽃(3권)』등 호흡 확장을 시도했다. 그렇게 여남은 권을 내놨으니 적당한 출산의 분량이지만 그 혼자만의 구구절절 문장이 가슴을 후비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죽자.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죽으면 아프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밉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연탄가스로도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연탄가스를 어떻게 가져오나? 목을 매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일어서질 못하는데 끈을 어떻게 매나? 안집 할아버지가 가끔 끓여 먹는 복어의 알을 먹으면 죽는다는데 어디서 그걸 구할까? 아버지가 저녁마다 반쪽씩 주는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 『하늘까지 75센티』 50쪽 -
네 살 어느 유년의 평온한 마당이 배경이었던 것 같다. 이웃 복성이네 삼촌인가 하는 웬 멘탈 나간 청년한테 갑자기 걷어차인 것이다. 그 무심한 발길질 한 방으로 한평생 장애의 운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년이 입술을 열지 않았으므로 집안 어른들도 까맣게 몰랐다. 그저 어린애 몸에서 열이 펄펄 끓으니 감기약이나 영양제, 진통제까지 닥치는 대로 먹이면서 조마조마 기다렸을 뿐이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열흘쯤 지나니 아차, 수상하다. 등허리에 뼈가 볼록 튀어나오는 걸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그 후 곱사등이 되면서,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키가 가장 작은 사람이 되었다. 하여, 절망을 견디다 못한 모친께서 그를 포대기에 업었으니.
소년의 첫 기억부터 비감의 수렁이다. 서해안 어디쯤 사무치는 물살이었을까, 시퍼런 수평선으로 잘름대는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 서 있던 젊은 엄마가 울멍울멍 고개를 들더니,
“존디루 가자.”
등에 업힌 네 살 피붙이가 엄마의 마음을 재빨리 알아채곤.
“죽기 싫어요. 무서워.”
고사리 손바닥을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말뚝처럼 먹하니 서 있던 모친께서.
“엄마랑 가는디 뭐가 무서워.”
“등 고쳐내라고 안 할껴. 나 이제 죽는다는 소리두 안 헌다구.”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수평선을 배경으로 오열하는 장면이 첫 기억이란다. 슬픔도 힘이 되는 걸까? 뽀드득뽀드득 어금니 깨물던 소년의 기억은 먼 훗날 ‘누에고치에서 실을 풀 듯’ 아리고 진한 소설 문장으로 복기되었다.
가슴 만져 보고 등 두드려도
바보처럼 그냥 웃더니
몇 살이냐고 다정히 묻는다
선생님이
마음 좋은 사람을 조심하라 했다
엄마는
친절한 사람이 위험하다 했다.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일 거야
아이를 꾀어 가는 못된 사람일 거야
괴상한 생김이 정말 그런 것 같아
침을 뱉어 주고 재빨리 도망쳤다.
-『낙지네 개흙잔치』의 「곱추 아저씨」부분 -
그래도 시인은 도망치다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고 ‘아가야, 돌부리를 조심해야지’ 타이르며 먼지를 다독다독 털어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 이유는 ‘친절한 우리 이웃 간첩인가 다시 보자’고 주입시키던 전봇대 표어의 영향도 있지만 기실 남들과 다른 그의 체형 탓이다. 그럴수록 그는 더 끈끈한 인내심으로 껴안으며 마음을 다진다. 겁먹은 아이의 몸에 더 큰 사랑이 잉태될 때까지 따사한 체온을 지성껏 적셔주는 흥부네 작가이다. 그렇게 맑은 눈을 가진 감상주의자라는 것도 진작부터 알았지만.
나도 미안하다.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작가대회’ 때이니 10년하고도 한참 지난 세월의 소환이다. 숙소에서 서귀포 바닷가까지 둘이서 200미터 남짓 거리를 걷는데 학수 형이 중간에서 세 번쯤 쉬며 숨을 고르는 것이다. 그가 주저앉았을 때 나도 아스팔트에 엉덩이 비비며 함께 낄낄낄 노닥거렸어야 하는데, (개념이 없는) 나는 그냥 전봇대에 기댄 채 담배 연기나 북북 날렸다. 심약한 그가 조바심에 시달리다가 가쁜 몸을 당기며 조금 빨리 일어섰을 게 확실하다. 그렇게 힘들게 바다에 도착한 후 어린이처럼 천진한 표정을 짓던 박꽃 미소도 잊히지 않는다.
신문으로
방송으로
세상 소리 듣던
어저께는 거칠었지만
아기 재롱을 보며
내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은 잔잔하다
아버지의 마음은 바다
날마다 이마에 물결이 인다
-『하늘까지 75센티』221쪽 「아버지의 주름살」전문 -
30년 전쯤 되었을까, 그는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 동시 작가이지만 그때까지는 ‘천보당 금은방’이 주 수입원이었다. 가끔 글 쓰는 후배들 몇몇이 들락거리며 술추렴이라도 벌일 참이면 화끈하게 통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니.
젊은 소설가(그 당시로는) 김종광이 대천에서 장가를 가던 날이다. 이문구 선생님이 주례를 맡았고 송기원 선배도 왕림하셔서 주거니 받거니 불콰하게 오갔던 것 같다. 학수 형이 내 옆에 쭈삣쭈삣 오더니 원고지 뭉치 하나를 슬쩍 찔러주며.
“전업 작가로 나가려는데 강 선생 생각은 어떠오?”
설레설레 도리질쳤다.
“보통 정글이간디요. 보시오. 기라성 같이 도열한 후배 작가들 모두 동업자 겸 라이벌입니다. 남은 자리가 너무 비좁을 거요. 그냥 지금처럼 금은방이나 번창시키고 가끔 작가들에게 술이나 사다가 그래도 아쉬우면 사업 와중에 새새틈틈이 쓰세요. 나도 선생 노릇하며 쓰잖수?”
그렇게 쌍둥 자른 말을 일주일 내내 후회한 다음 다시 반성의 전화를 했다.
“한 판 붙어봅시다.”
수화기 저쪽으로 결의의 표정이 무겁게 떠올랐는데.
5년 전이었나, (이제 수치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연희동 창작실에서 우연히 해후했으니 뜨악하면서 반가웠다. 쿠데타 정권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처와 담벼락 하나 차이로 구별되는 도심 속의 솔밭이었다. 우리는 이따금 시내버스로 시장 구경 겸 크리넥스나 오뎅을 사고 짬뽕도 먹다가 골목길 구석에서 흡연 좌담도 나누었다.
그날도 작가촌 솔밭에서 그와 일대일로 오붓하게 마시는 중이었다. 그는 분단을 소재로 한 청소년 성장소설 『그림자 벗는 꽃』 다섯 권을 집필하면서 고무된 상태였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줄여 집필하기를 요구한다며 ‘살점을 도려내게 아프다’라고 고백했다. (나중 얘기지만) 나 역시 2년 후 성장소설 『해루질』을 2,300매에서 300매를 잘라낼 때 비슷한 심정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는 자신의 탈고작을 내밀며 읽어주기를 강권했고 나도 고개를 끄떡대며 돌계단을 엉금엉금 내려왔다.
“여기서 끝낼 수 없잖아?”
다시 학수 형의 숙소에서 2차 한 판 더 깔았는데 이 또한 순간에 바닥이 난 것이다.
“더 사올깡?”
그는 주량은 약하지만 술잔을 물리는 법은 없다.
“기다릴 껴.”
그렇게 나 혼자 심야의 도심지 마트 찾아 검정 봉다리 하나 꽉 채우며 배가 불렀다. 그런데 의기양양 돌아왔을 때 그가 쓰러져 쿨쿨 삼매경에 빠진 것이다. 툭툭 건드렸으나 꿈틀조차 없다. 다독다독 흔들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도 쇠붙이처럼 움직이지 않는 찰나 아차, 불안감이 엄습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순간적 소심증으로 신음을 누르며 방을 살금살금 빠져나왔다. 그리고 새도록 초조함에 시달리며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이튿날 벌떡 일어나 찾아가니 그 혼자 느긋하게 밥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반듯한 상차림 앞에서 조신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드는 학수 형을 보며 나 혼자 ‘대한독립만세’ 소리치며 두 팔을 번쩍 쳐든 건 일체 비밀에 부쳤다. 쌀밥에 대천김 하나를 싸서 입에 넣은 다음 나는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변신한 채.
“술 사 오라더니 왜 혼자 잤냐구? 성님, 완죠니 허당 술꾼이더구만.”
옆구리 찌르며 놀려대었다. 에 – 하면서.
여치만큼 연주를 못해도
매미만큼 노래를 못해도
나비처럼 날개 춤을 못 춰도
풀 죽지 마라 땅강아지야
여치도 나비도 매미도
어둡고 답답한 땅속 길을
너처럼 다니지 못한단다
불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흙 속을 헤엄치는 넌
대견하고 귀여운 땅강아지란다
-『아주 특별한 손님』- 「땅강아지에게」전문 -
대천에 가면 푸른 바다와 정 많은 글벗들을 세트로 우르르 만날 수 있다. 박경희. 송계숙, 황선만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의 삽화 작가 김환영 화백 등 모두 살갑고 푸짐한 표정의 합체이다. 그중에서 왕림한 글벗에게 가장 공들여 접대하는 보령 토종 하나만 딱 찍으라면 그게 안학수 서순희 부부였던가. 그들 부부는 기다렸다는 듯 배춧속처럼 푸짐한 웃음으로 감싸안았다. 그리고 한사코 술값을 장악하는 것이다. 나는 연신.
“그만 사요, 돈 좀 작작 쓰라고요.”
몸을 밀치는 척하면서도 꽁술에 취해 해롱거렸고 그는 열심히 빈 잔을 채워주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은 노래도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곱사춤도 추면서 낄낄 웃으며 서로 등을 기댔다. 그러다가 헤어지기 한 시간 전부터 예정된 작별을 아쉬워하며 가슴을 여미는 것이다. 외로움도 잘 탔으나 소년의 감성으로 금세 회복했으니 천성이 쾌활한 성품이다. 그래서 열한 살에 재입학한 초등 동기생들과도 어우렁더우렁 잘 어울렸단다.
중년의 늦가을 즈음이니 벌써 30년 전 스크린인데.
그러니까 ‘대전·충남작가회의 발기인대회’ 예비모임을 대천의 ‘임해수련원’에서 가졌다. 뒤풀이에서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이차저차 보령의 시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뒤풀이 자리가 익어가면서 차츰 취기가 올랐고 나는 두 살 아래의 어느 보령 문인과 술잔을 나누는 중이었다. 초면의 맞은편 사내는 사이사이 나에게.
“말씀 낮추십시오.”
정중한 주문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 심지어 술잔도 자기는 두 손으로 따르면서 나에게는 한사코 한 손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가 옆자리 안학수 선배를 가리키며.
“저 학수 친구가 원래 심성이 착해서.”
어쩌고 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중이다. ‘어럽쇼, 뭐지?’ 나한테는 꼬박 형님 대우를 하는 2년 연하의 예법 바른 시인이 학수 선배에게 감히 친구로 호칭하는 게 마음이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술자리에서 시비를 거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지만 서열 정리에 민감한 체질인지라 대뜸.
“호칭이 왜 그럽니까?”
돌직구를 지르자.
“……엣?”
“학수 칭구라니요? 학수 형님은 나보다 두 살 선배님이십니다.”
‘형’도 아니고 일부러 ‘형님’이라고 꼬박 올리며 상대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사표 착한 사내가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바로 세우며.
“앗, 죄송합니다. 사실은 학수 형이 우리보다 네 살 많지만 저희들과 국민학교 같은 학년으로 댕긴 동기생인지라 어렸을 때의 호칭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학수 칭구의 호칭을 형님으로 하라고 다른 벗들에게도 당부하겠습니닷!”
“네 살은 좀 그렇지요. 잉. 아무리 동기라고는 해도.”
대번에 정리시키며 마음이 편안해진 게 맞는 타법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리 없는 아랫도리엔
지느러미 옷을 못 입고
검은 고무 자루를 입었다
갯바위를 밀어 대던 밀물 그린다
모래톱을 쓸어 주던 썰물 그린다
바다로 가야 하는데
언제나 갈까?
입김에 시린 볼보다
더 차가운 동전 몇 개.
-『낙지네 개흙 잔치』의 「장터의 노래」부분-
시장바닥에 던져진 인어 하나.
검은 고무 자루로 아랫도리 감춘 채 시장바닥을 쓸고 다니는 리어카 상인에게 인어라고 칭하는 것은 호사스러운 시적 오만일 수도 있다. 초록빛 바다를 잃어버린 채 지금도 시장 골목 어디쯤 좌판 사이로 미끄러지며 노래 부르는 중이다. 바퀴 좌판에 가지런히 쌓인 수건이나 빚, 비누나 고무줄 모양들이 찢어진 차양 아래로 번뜩번뜩 노랗고 파란빛을 터뜨리기도 한다. 진열대 너머 바라보던 시인의 눈이 재빨리 모래톱과 썰물을 배경으로 바다 인어를 오버랩시킨다.
중요한 것은 ‘안학수의 눈’이라는 점이다. 얼핏 타자화된 표현도 목소리의 주체와 몸의 진정성에 따라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 역시 소싯적부터 몸의 신산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언제라도 알몸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언어가 아픈 영혼들에게 ‘안개 나라’ 커튼을 열어주는 안학수식 특허 메타포가 된다.
부모와 누이 그리고 동생까지 피붙이 모두 가난하고 착한 천사표 가족들이다. 수나가 시장통 인절미 파는 할머니에게 3원에 한 개짜리 사 먹으려다가 보니 돈이 한 푼도 없었단다. 쭈삣쭈삣 다가섰으나 차마 돈 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3원만 달라’고 간신히 얼버무리자 아버지가 허허 웃고 ‘그 말 하기가 어려우냐?’ 하며 아들의 손을 잡고 인절미 30원어치를 사준다. 그 횡재의 꿀맛이 생의 환희로 각인되니 잠시나마 몸의 불편이나 가난을 잊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숙이 누나의 사연은 가난하면서도 더 아프다. 누나는 심성도 착하고 공부도 잘했으나 가난의 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중학교 진학은 엄두조차 낼 수 없으므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점방 직원이나 남의집살이로 전전하는 삶을 당연한 운명으로 수긍했다. 그나마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아픈 가슴으로 집에 데려온다. 그런데 막상 집에까지 온 숙이 누나는 차마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 부모님이 ‘왜 그러느냐’며 소매를 잡아끌어도 눈시울만 그렁그렁 적시는 중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에미 애비가 원망스럽냐?”
어머니도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숙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금방 눈치를 챘다. 제 딴에는 수나를 못 보겠던 것이다. 수나가 기어서 마루로 나서자 숫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누나 아무것도 못 사왔다…….”
-『하늘에서 75센티』- 67쪽 -
도넛 딱 한 개가 그리도 먹고 싶었단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밀가루 튀김이 수나의 입으로 들어가 말랑말랑 씹으면 달콤한 설탕 범벅 밀가루 튀김이 내장을 거쳐 사르르 내려갈 것 같다. 웬일일까? 몰래 하나를 잡자마자 후닥탁 도망쳤으니 얼떨결이고 뜨악한 행동이다. 누군가 쫓아오는 발자국 낌새를 느끼며 겁이 나서 제재소 나무판자 뒤로 숨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우투투. 나무가 쏟아지면서 이마에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도넛 한 입 깨물으니 꿀맛으로 술술 넘어간다. 그뿐이었다. 착한 눈빛의 주인아줌마는 목재 뒤에 갇힌 소년의 옷깃을 스쳐보다가 슬픈 표정으로 돌아갔다. 숙이 누나가 찾아가 동생의 도벽을 사죄하고 돈을 지불한 건 나중에야 안 사연이다. 다시 수나를 만났을 때.
아주머니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도넛을 일곱 개나 종이봉투에 싸서 내밀었다. 그리고 수나 등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도너스 먹고 싶으먼 언제든 오너. 돈 웂어두 줄 텡께. 니 누나가 다 계산혀 주기로 했은께.”
“죄송헤유.”
수나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려. 제재소 나무 틈서 다치진 안었제?”
-『하늘에서 75센티』135쪽 -
수나를 사랑했던 인물들이 새새틈틈이 등장하면서 이따금씩 숨통을 틔워주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니 그게 안학수 표 서스펜스이다. 교실에서 만난 스승 장안선 선생님도 그렇게 선물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신기루로 사라졌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서 이슬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그 처녀 선생님이다. 첫 만남에서 동화책을 꺼내주셨고 정다운 사연을 나누면서 조근조근 친한 사이로 발전한다. 수나도 혼자 누워있다가 천장에 떠오르는 선생님의 모습을 되새기며 흐뭇하게 웃는 날이 늘어났다.
“어땠어?”
수나는 머뭇거리다가 볼록한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가 막 뛰었어요.”
“그랬어? 그럼 이것도 한 번 읽어봐.”
선생님은 책꽂이에서 동화책 한 권을 빼서 수나 손에 들려주었다. 두껍고 붉은 표지에는 『소공녀』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하늘에서 75센티』190쪽 -
그의 운명과는 클라스가 다르지만, 주인공 ‘세라’의 축축한 눈시울 그리고 절망과 희망을 따로따로 만나며 감동에 젖는다. 행복과 불행이 시계추처럼 오르내리는 삶에 그렇게 자신을 동일시시키며 스토리에 빠진다. 수나가 책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인생 사연의 두근거림을 겪었으나 딱 거기까지이다.
선생님이 고정간첩과 내통한 죄로 교사직을 박탈당한 것이다. 낙도에서 근무할 때 태풍으로 묶인 어느 관광객을 도운 일이 있는데 그게 간첩과 내통 혐의로 엮인 것이다. 당연히 진실이 아니다. 성적 숫자 올리기에 급급한 교장님과 참교육을 실현하려는 선생님과의 교육철학이 부딪치면서 시작된다. 다툼의 골이 깊어졌다가 엉뚱한 죄를 덫칠 시키면서 해직이 되셨으니 분하고 억울한 일이다. 그 대신 처음 만난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진해지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외로움의 힘’이 새로운 길을 만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눈 앞으로 흐르는 스크린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매의 눈’이 있어야 한다.
“근데 이름이 안서나가 뭐냐? 뭐가 안 서?”
“서나가 아니구 수나여! 윤수나! 성 이름은 뭔디?”
“나? 난 그 이름두 찬란헌 지만태다.”
“쥐만허다구? 뭐가 지만캄?”
-『하늘에서 75센티』 236쪽 -
그렇게 아이스케키 장사 지만태(15세)와도 한동안 깊은 우정을 쌓아갈 수 있을 뻔도 했다. 다섯 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가던 아버지가 여관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외팔이 소년을 돌보던 할머니마저 11살 때 세상을 떠나면서 완전히 고아가 되었단다. 일곱 살 때 선로변에서 놀다 기차 바퀴에 손목이 나간 불우한 소년은 다행히 싸움을 잘했다. 악동들이 수나를 놀릴 때마다 날아차기나 외팔이 업어치기로 제압하면서 행보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도 부산에 사는 엄마를 찾으러 간다며 수나와 작별을 했다. 수나와 정이 든 벗들은 모두 그렇게 그림자처럼 사라지곤 했다. 마찬가지다. 개펄에서 능젱이도 잡고 전단지도 돌리던 착한 벗 영주도 어디론가 이사가면서 또 헤어졌다. 수나는 다시 혼자에 익숙해지면서 장차 ‘무엇을 할까’하는 철든 번뇌가 시작되면서 ‘홀로서기’에 돌입한다.
돈을 벌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돈으로 물건도 살 수 있고 자립으로 읍내 어디쯤에 방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스케키 장사도 따라다니고 김 포장용 발도 짜면서 자립의 발판 마련에 도전한다. 나중에는 직업훈련소를 찾아 야무지게 공부도 하고 책과도 친숙해졌지만 그때까지 자신에게 문장 능력이 있다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한때 전파사를 평생 생업으로 삼기 위해 청사진도 그려보았다. 실제로 기계 부품을 잘 만지고 꼼꼼하게 고치는 기술도 있었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칠 때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기뻤다.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금속성 생명들과 그 심장 소리를 듣는 경이로움도 느꼈다. 그러나 제품을 운반하기에는 힘이 부쳐 관절에서 삐끄덕 소리가 나면서 전업을 떠올리게 된다.
마침내 귀금속 사업으로 정착했으니 그게 소설 속의‘만보당 금은방’이다. 보석이나 시계들을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깊은 정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섬이나 산골에서 찾아온 손님들의 애정과 믿음도 한동안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개펄에서 캐낸 비단 자개
등딱지에 담아 지고
지금은 잊혀진
무지개 마을을 찾아간다.
비단 무지개를 띄우겠다고
길 없는 길로 구불꼬불
마냥 가는 꼬마 고둥이다.
- 『낙지네 개흙잔치의 「비단고둥」부분 -
그 만보당에서 웬 장년의 사내에게 슬쩍 곁눈질 당했다가 발목을 잡혔으니 그가 소설가 이문구이다. 먼저 습작 노트를 빼앗긴다. 그때 강탈당한 노트가 수나에게 새로운 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문구(소설에서는 이촌민) 작가로부터 조언을 받기 시작하면서 처음의 껄끄러움보다는 기다리는 초조함이 더 진해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동시 작가가 돠었으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출구가 열린 것이다. 외로움이 몸에 배어 고독 자체를 모른 채 살아온 그에게 햇살이 쏟아지면서 ‘고뇌의 돛단배’ 출정식을 올리게 되었다. 목표가 또렷했던 건 아니지만 글 쓰는 도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희열이 되었는데.
“저기 윤수나 선생님 계신가요? 여기 신문사인데요.”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아, 예, 저 그 신문 구독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을 알아보셔유.”
“아, 아녀요! 저는 문화부 기자인데요. 동시 쓰는 윤수나 선생님 좀 바꿔주세요.”
“제가 윤수나인데요. 왜 그러슈?”
“선생님께서 신춘문예에 응모하신 동시가 당선되셨어요.
-『하늘에서 75센티』330쪽 -
그 후 몇 년 더 운영하다가 마침내 금은방을 접었으니 엄정한 결단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귀중품을 만지다 보니 사기꾼이나 도둑들에게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아 어지러운 사태까지 겪던 차이다. 느닷없는 경보음에 헐레벌떡 달려오면 취객의 발길질로 비상벨이 울린 적도 있었다. 성정이 민감한 그로서는 그 전쟁터를 벗어나 가난한 작가의 꿈을 기획한 게 ‘신의 한 수’이다. 살아, 그의 글이 헝클어진 마음의 한을 풀어내는 생명수가 되었기를 기대하며.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며 주인공은 성장한다. 그럼으로써 『하늘까지 75센티』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마침내 소설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면 이야기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사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 박상률 작가의 발문에서 -
재작년 어느 봄날 내가 진도에 거居할 즈음.
송기원 형님과 윤재걸 형님이 섬마을에 찾아오셨으니 귀한 발걸음이다. 윤재걸 선배님은 1986년 『신동아』에서 비정규직으로 밥벌이할 때 그의 집에서 잠도 잔 사이이고 송기원 형 선배님은 이미 여기저기서 술벗으로 익숙한 관계이다. 두 선배님 모두 ‘70-80년’ 폭정의 시국에 지하실에 끌려가 겪은 고문의 후유증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하여,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끊으면서 해안선 여기저기를 투어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는데, 이를 본 학수 형이.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은데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네.'
그 문자를 보고도 ‘당장 날아오시횻!’ 말이라도 흔쾌히 답변하지 못했던 사연조차 이제는 아픈 기억이다.
그러다가 담양 ‘글을 낳는 집’에 살던 찜통더위 어느 날, 그러니까 2024년 7월 말쯤 스마트폰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만나러 갈게. 남도 한 바퀴 한 바퀴 돌고 싶어. 귀도 잘 안 들리는 게 아무래도.’
『내가 뭐 어때서』의 황선만 작가와 함께 나의 거처에 기습할 테니 조인트 기획표를 짜라는 뜻으로 재빨리 이해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접대하려 했는데 그 문자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지 나 혼자.
‘일단 창평 사거리에 모텔방 잡아놓고 막소주에 국밥 한 그릇부터 뚝딱 해결하고 점방 파라솔 아래 길거리 맥주부터 시작하는 게 가성비에 좋겠지. 담배도 피울 수 있고. 이.’
그런 주안상의 상상으로, 오 - 하는 감탄사도 터뜨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식이 없는 것이다. ‘왜 안 와?’ 하고 재촉할 수도 없는 애매한 며칠이 지났다.
나중 얘기지만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은데.”
슬쩍 한 마디 던졌는데 그게 진짜 마지막이 되었단다. 아, 나는 늘 그런 식으로 허를 찔리며 삶의 의욕을 잃곤 했다. 어떻게 하나?
그를 호위무사처럼 보살폈던 황선만 소설가의 메모 한 토막으로 끝내야 할 것 같다. 안학수 형이 떠난 다음 날짜에 황 작가의 수첩 메모록에는.
‘안학수 선생님 강병철 작가에게 전화하기.’
이렇게 적혀 있었단다. 나를 만나러 담양 ‘글을 낳는 집’ 방문 날짜를 전화로 의논하려다가 하루 먼저 바삐 거셨다. 하여, 사연 많던 그의 행보가 마감되었으니 그게 운명이다. 지금쯤 구천에 이틀 먼저 자리잡은 송기원 형님께서 '어서 오게 아우님' 소매 끝 당기시며 개다리 술상을 마주할지 모른다. 그가 세상을 떠난 개 같은 여름이었다.
시집 『유년 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몽땅』 『다시 한판 붙자』 발간, 장편소설 『해루질』 『닭니』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등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열네 살 종로』 『초뻬이는 죽었다』 등 발간, 산문집 『어머니의 밥상』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작가의 객석』, 교육산문집 『넌, 아름다운 나비야』 『난, 너의 바람이고 싶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등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