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감상할 詩의 포인트
비늘 / 이서진
(제12회 해양문학상 당선작)
햇빛이 가장 깊은 시간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비늘이다
골목 구석에서 웅크린 것들조차 파르르 몸을 떨며 떠오르고
깨진 병조각과 찌그러진 캔, 버려진 채 비린 시간을 견뎌온 것들
출렁이는 각자의 길을 따라 헤엄친다
후포 어시장 한 가운데
비린내 가득한 천막 안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
도마를 내리치는 예리한 칼 위로 비늘이 날아든다
그녀는 온몸에 반짝이는 비늘을 붙이고
얼음 위에 몸을 내민 생선들의 숫자를 센다
고무장갑을 벗은 여자의 손바닥 위
지워진 지문의 흔적을 바라본다
수많은 세월을 흘러온 그녀의 지문은
비늘처럼 떨어져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을까
햇살이 굴곡 없는 여자의 손끝을 더듬고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생물을 골라낸 여자의 손끝
어두운 뒤편에 버려진 것들은
문신처럼 박힌 지문을 끌어안고 잠들었을까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벗겨진 손끝을 닦아냈을지
마치 수조 같은 천막아래 갇힌 여자의 눈동자가
투명한 벽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허공을 헤엄치는 골목의 비늘들은
찬란한 햇빛의 궤적을 따라 거리 사이사이로 쏟아지고
사람의 정수리가 하늘을 향해 반짝이고 있다
손바닥 끝 지문들은 마지막 남은 비늘의 흔적일 것이다
출렁이는 햇살의 벌판을 힘차게 떠돌던
싱싱한 어조이었음을 증명하듯
그녀는 쏟아지는 한낮을 향해 반짝이는 칼날을 들어올린다
클릭-> https://youtu.be/xlvClN92fXM
첫댓글 작품의 처음과 끝의 비늘이라는 낱말이 글의 이해를 돕습니다. 수미상관의 형식을 이용한 접근법이 좋은 것 같습니다.
치열한 여인의 삶이 파도처럼 다가오는 듯 합니다. 작품해설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수미상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