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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무현대통령 충주지역 시민추모위원회
 
 
 
카페 게시글
추모게시판 스크랩 <펌>[윤태영의 기록-6] 행복유전자
체 게바라 추천 0 조회 28 13.12.14 01: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코 후비다 카메라에 찍히는 일 없도록 조심하세요”

[윤태영의 기록-6] 행복유전자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남다른 무엇이었다. 그냥 ‘유머’라고 하면 2% 부족한 듯싶고, ‘낙관’이라고 하기엔 초점이 다른 그 무엇이었다. 특유의 캐릭터였다. 애써 말을 만들자면 ‘행복바이러스’라고 할까. 유머는 기본이었다. 그것도 순발력과 재치가 곁들여진 유머였다. 그럼에도 ‘유머감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꼭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솜씨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1부속실장 시절 아침 회의를 위해 관저로 출근하면 응접실에 앉아 대통령을 기다렸다. 그날의 일정을 점검하는 간단한 회의였다. 가끔은 대통령보다 그의 노랫소리가 응접실을 먼저 찾아왔다. 내실에서 걸어 나오면서 그가 흥얼거리는 콧노래였다. 경쾌한 멜로디가 ‘ㄱ’자로 꺾인 관저의 복도를 따라 울려 퍼졌다.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허밍’도 절반은 되었다. 익숙한 노래도 있었다. ‘작은 연인들’이었다.
“언-제 우리가 마-안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분위기가 대통령의 콧노래로 반전이 되곤 했다.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마력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편하게 대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더욱 그랬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상대방을 압박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꺼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가까이 있는 참모들도, 외부에서 모처럼 온 손님들도 예외가 없었다. 때로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될 것을 우려해 회의에 앞서 먼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대통령 스스로가 분위기를 푸는 당번인 셈이었다. 임기 중 신축된 비서동인 여민1관의 대회의실에서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리던 어느 날이었다. 이 날부터 양쪽 벽면에 새로 설치된 카메라가 회의의 진행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한 비서들에게 주의 아닌 주의를 주었다.
“앞으로 회의 도중에는 코를 후비다가 찍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세요.”

때로는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우려하기도 했다. 2003년 12월 16일의 국무회의였다. ‘대선자금 수사’와 이른바 ‘재신임’ 논란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을 때였다.
“제가 들어올 때마다 여러분을 마주 보면서 자주 웃습니다. 여러분의 느낌은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웃을 형편이 아닌데…. 국민들은 대통령이 너무 웃지 않느냐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자주 웃는데 국민이 기분이 좋을까 모르겠습니다.”
이날도 그는 유머로 서두를 시작했다. 자칫 혼란스러운 정국 때문에 가라앉을 수도 있는 국무회의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었다.
“두 정치지도자가 얘기를 하던 중 번개가 치니까 한 사람이 갑자기 ‘씩’하고 웃었답니다. 다른 한 사람이 ‘왜 웃었냐?’고 묻자 ‘카메라 플래시인 줄 알았다!’고 대답했답니다. 한국의 농담이 아니라 미국의 농담입니다. 우리 모두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의 ‘행복바이러스’는 해외순방에서도 유감없이 발현되었다. 엄숙한 격식과 까다로운 의전 때문에 경직될 수 있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노력들이었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회의장은 물론 만찬장 등 다양한 행사장에서 그는 단연 분위기 메이커였다. 2004년 11월 남미 3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한 대통령은 미국 LA에 들러 연설을 했다. 이날 저녁의 일정은 제임스 한 LA 시장이 주최한 만찬이었다. 준비된 원고로 만찬 답사를 마친 대통령이 잠시 즉석연설을 했다.
“시장 부부를 처음 만났는데 영화배우를 만난 줄 알았습니다.……대통령이 되기 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기를 즐겼는데 오늘 제임스 한 시장이 큰 포장마차를 마련해 한잔할 수 있도록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좌중에 폭소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이날 만찬 장소가 야외 정원이라 행사용 큰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유머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어서 방문한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총장으로부터 명예교수 위촉장을 받았다. 여기서도 다시 특유의 입담이 작렬했다(아래 사진).

 

“감사합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 위촉장을 받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대통령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 교수가 됐는데 위촉장을 읽을 수 없어 큰일입니다. 위촉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를 다시 하겠습니다."
이어서 방문한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확대정상회담장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통상현안들이 해결되자 감사의 뜻을 그가 색다르게 표현했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룰라 대통령이 큰 웃음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5년 임기를 마친 후 돌아온 고향. 그가 다시 행복한 웃음을 선물한 대상은 봉하마을을 찾아온 전국의 방문객들이었다. 유쾌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방문객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대통령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저 보러 오셨습니까?”
“예. 얼굴이 너무 좋습니다. 잘 생겼어요.”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젊을 때 듣고 싶던 소리였는데, 그땐 아무도 그런 소리 안했는데.”
“(방문객)지금이 젊으세요.”
“아, 한물갔습니다.”
“(방문객)한 번 더 하셔도 됩니다.”
“또 나간다 하면 국민들이 벼랑 끝으로 차버릴 겁니다.”
대화의 끝에서 그의 노랫가락이 이어진다. 구성진 멜로디는 마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윤태영의 기록]이 담긴 수첩

"펜글씨로 쓰신 수첩 구경하고 싶어요"라는 herbeun님의 요청에 "워낙 난필이라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우실 겁니다. ^^" 라던 윤태영 전 부속실장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내 온 사진입니다. 말씀대로 해독하기 쉽지 않지만 소중한 기록의 원천이기에, 보물지도를 들여다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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