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자꾸 먹고싶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손이 간다. 당연히 세끼 밥을 잘 챙겨먹고 있다. 좀 적게 먹으려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도 만만치가 않다. 한끼 먹을량을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과하다 싶어지곤 하니다. 잉, 이렇게나 많이? 이게 소식은 아니지? 할때가 있기 마련이다. 입이 쓰고, 혹은 씹기가 불편하다고 투정하면서도 그렇다. 그러고도 아쉬운지 뭔가 먹고 싶어한다. 배가 고픈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대도 그렇닫. 속이 허한가. 그럼 음식으로 채울수 있는게 아닌데. 특히 저녁에, 저녁밥을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이것저것 먹거리를 스킨하는 나를 보면서, 깊은 어딘가에서 바람이 부는것을 감지하곤 한다. 곧, 후년이면 80이다. 식탐은 그칠때도 되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때 부터 식탐이 있었다. 고구마 , 감자, 옥수수등등 광주리에 가득한 먹거리들이 여러사람 손에서 마구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늘 조바심을 갖고 슬그머니 내 치마앞에 쌓아두려 했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늘 그랬다. 누군가 눈치를 주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다들 너그러웠다. 내가 끌어안았던 것들이 결국엔 상해서 돼지먹이통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봐주곤 했다. 이런 응석이 언제까지 통했을까. 어디까지 통했을까,,, 내가 연화리를 그리워하는 것 중에는 이런 철없던 응석이 가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고모님들, 작은아버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자꾸 끌어당겼던게, 그때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으면서도? 실상은 내려놓을것도 움켜잡고있을것도 없다. 사는게 변변치 못했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나 시원찮을수가 있는지,,, 창조주를 낙심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분은 실패가 없으신 분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 용도가 있었을까. 이제껏 발견못했으니 끝 아닌가. 심심한 소설을 읽고있다. 그속의 주인공들도 참 심심했다. 그럼에도 열심인걸 보면 소제거리가 되기에 합당했나보다. 작가는 또다른 창조자이니까.
오늘은 주일이다. 예배를 드리려 교회에 출석한다. 예배를 드리려 간다는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그냥 습관은 아닌지. 아니,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대. 그습관이 그 습관 맞아? 내 신앙은 나를 닮았다. 뜨뜨미지근 하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게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시댄가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불사하기도 했다. 그런분들께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내가 그럴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빠르게 머리를 젖는다. 목슴은 말고 회초리를 맞는일도 사양이다. 나는 쉴곳을 찾아 날아든 곤충 한마리일 뿐이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것 같은 위대한 믿음은 아니다. 그냥, 지치고 힘든 인생길에서 잠시 몸을 쉴곳이 없어서 날아들었다. 다 쉬었으면 어느때고 다시 날아갈것이다. 영혼이나 영생에 대해서 관심은 없다. 아니,영생이라니, 끔직하다.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게 영생이라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잠시 사는것도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나만 그럴까. 아직 넘겨지지 않는 책장이나 같은 것일까. 어쩌면 나는 첫 페이지에서 멈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서 엇 페이지를 넘기고 계속 읽기를 해야하는 것일수도 있다. 내 신앙이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보자. 은혜라고 한다. 내 노력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희망인가.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다. 그게 바로 희망인가. 90억에 달하는 인생들이 오늘 이 하루도 분투하고 있다. 인생들이여! 오늘도 파이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