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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11편 (간화선)과 도마복음 제38장》
오늘도 수행 이야기부터 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벌써 (알아차림 11편)인데요?
참 세월이 번개와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머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쓰다가 갈까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 노력이란 바로 이(후) 공부랍니다.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 깨닫고서 자기 자신을 보거나 세상을 보면요?
정말이지 일체 만물이 모두 무상한 것들 뿐이랍니다.
유일하게 딱 하나 무상하지 앓고 영원한 것은 우리들 마음(불성/성령)뿐인데요.
그래서 이것을 유일신이라고도 하는데요.
그러니 이 마음(불성/성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겠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세상을 살다가 간답니다?
평생을 헛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저도 그럴 뻔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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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화선(看話禪) 이야기인데요?
스마트폰으로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까 간혹 오타가 나오는데요.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냥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이해하시고 보셨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간화선만큼 힘이 좋고 활기차고 역동적인 수행 방법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왜냐하면 간화선은 앉은 자리에서 고성제부터 도성제까지 그것도 아주 빠르게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하더라도 그 무기를 다룰 줄 모르면 빛 좋은 개살구잖아요?
제 경우는 간화선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저도 해보니까 느낀 바가 많았고 지금도 잘 써먹고 있답니다.
제 경우는 수행 방법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리지 않고 하는 편이데요.
간화선 그러면 수행 이야기라 제가 처음 불교를 접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제 경우도 수행에 있어서 가장 먼저 들은 것이 간화선이라는 단어였는데요?
그런데 중국에 있을 때 큰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많은 것들이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부처님이나 예수님 말씀이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고 간화선 방법도 대념처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짧게라도 제 이야기를 하고 간화선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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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 경우는 간화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6년 중국에 있을 때 불교 방송 라디오와 유튜브 등을 통해서인데요.
이 당시에는 마음만 고요했을 뿐 아무것도 모를 때랍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2014~2016년까지는 전혀 불교에 불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법화경 내용이 궁금해서 해석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었고요.
나중에는 약이 올라서 "그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끝까지 해보자" 하면서 강짜를 부리는 도중에 보니까 법화경을 읽어주는 앱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고 잘 됐다." 싶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듣고 또 들으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가면서 2년이 조금 넘도록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한 번 이상은 들었던 것인데요.
그것이 천 번 이상은 된다는 것인데요.
저도 그 당시에 왜 그렇게 열정적이었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예수님도 "늘~.."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었고요.
풍선도 빵빵해야 잘 터지잖아요?
이것도 그렇답니다.
저도 그랬고요.
간화선에서는 이것을 [의단]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러다가 2016년 여름에 비자 갱신 문제로 한국에 들어와서 천안에 있는 한 당구장 선배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요일에 천안 시립도서관에서 오쇼 라즈니쉬라는 분이 지은 달마 어록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나 내 마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좀 놀랐었고 그날 도서관 문을 나오면서 문득 나도 염불을 하나 외우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염불]하고 입력하니까 쭉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중에서 반야심경이 제일 짧은 겁니다?
그래서 반야심경 앱을 하나 다운로드해서 외워보려고 했는데 평소 잘 쓰는 단어들이 아니다 보니까 입에 잘 외워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면서 외워나갔는데요.
그런데 이번에는 또 뜻이 궁금한 겁니다?
그래서 한문을 한자 한자 씩 풀이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 [~조견 오온] 까지는 한문 풀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개공~] 이후부터는 전혀 해석이 불가능한 겁니다?
법화경은 그래도 내용이라도 있잖아요?
그런데 반야심경은 아무런 내용도 없이 전부다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앞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벽에 딱 막힌 그런 느낌 있잖아요?
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답니다.
한 문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저도 고서(古書)들을 적지 않게 읽어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답니다.
나중에는 제 입에서 욕까지 나오더라고요?
"어.. 쓰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도 끊기 있게 일주일 정도 외우고 또 해석해 보려고 하는 도중에 어느 날 새벽 5시쯤에 천안역에서 단국대병원까지 개천가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색불 이공 공불 이색] 부분에서 문득 "몸이 공이라고?"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면서
"혹시 이거 마음을 공으로 만들라는 얘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있는 것들을 쓱 밀어본 것인데요.
그런데 뭔가가 쓱 내려가는 겁니다?
(제 경우는 생생히 느꼈음)
그래서 "어라?" 하면서 또 밀어보았더니 또 쓱 내려가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도 또 밀어보았는데 이번에는 미친 듯이 막 뭔가가 마음에서 쓸려 내려가는 겁니다?
제 느낌은 마치 공사장 2층에서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고 쓰레기들을 내려보내듯이 그런 기분이 들었답니다.
대략 1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요?
그러더니 갑자기 제 허리 두게 만한 포도주 코르크마개 같은 것이 "뻥~!" 하면서 배꼽 밑으로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 들면서 뭔가가 한꺼번에 쭉~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
대략 1~2초 정도?
아무튼 순식간에 쑥~ 빠져내려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고 이번에는 배꼽 밑에서 뭔가가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기쁨과 환히 행복감 그런 것이 막 올라오는 겁니다?
마치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 보면 바닥에서 구름 같은 것이 "푹~푹~" 하고 올라오잖아요?
제 입에서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딱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새벽 5시부터 저녁에 당구장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잠이 들 때까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답니다.
(어느 스님 말로는 부처님은 7일 동안 그랬다고 함)
그러고는 다음날에 일어났는데요?
그런데 어제 그렇게 즐겁던 현상들은 없어지고 이번에는 너무나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겁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고요한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와..? 정말이지 저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마음은 처음이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저를 보아온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인척 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라는 놈은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한 놈이었거든요?
아주 번잡하고 항상 복잡한 마음이 제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고요해지니까 그것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답니다.
그렇잖아요?
지랄 같은 마음이 갑자기 조용해져봐요?
정말로 이상하답니다?
더군다나 제 경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했고요?
그런데 문제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자꾸 생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지금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 하는데 화가 안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그 후부터 스님들을 찾아다녔던 것인데요.
그 이유는 내 마음을 다시 예전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진실)
그만큼 제 경우는 이쪽으로는 1도 몰랐답니다.
그러다가 남양주에 계시는 청운 스님과 오산에 계시는 구담 스님을 만나 뵙고 이때부터 저도 불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인데요.(2018년)
이런 글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종손 큰 형님과 신당동에 있는 형님 한 분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인데 아쉽게도 그때 쓴 글들은 당시에는 카톡으로 보낸 글들이라 지금은 그때 제가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에 없답니다?
그 당시에는 불교도 잘 모를 때라 제 느낌만 썼는데요.
아무튼 그 당시에는 누가 때려도 화가 안 일어날 정도로 바보 그 자체였는데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경전을 통해서 방편 법을 배워서 지금은 정상적으로 상황에 따라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마음을 쓰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예전에는 제가 제 마음에 끌려다니면서 살았다면 지금은 한결 마음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대처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혹자들은 깨닫게 되면 막 하늘이 열리고 모든 것이 보이고 그러는 줄 알잖아요?
아니랍니다.
이쪽으로 모르면 그냥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경전이 필요한 것이고요.
그래서 깨닫기 전에는 경전을 보지 말라는 것이고 깨닫고 나서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공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이전부터 유명한 스님들 법문은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모르고 들었었답니다.
뭘 알아야 법문이 귀에 들어오지요?
그러나 2016년부터는 경전이고 법문이고 잘 알아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제 경우는 이때부터 오로지 경전이 내 스승이라 생각하고 경전만 파고들었던 것인데요?
이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공부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경전 속에는 모든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경전은 깨닫고 나서 봐야 한다고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깨닫기 전에 보면 알음알이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행 내용들은 [대념처경] 속에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요.
그래서 제 경우는 대념처경을 보면서 혼자서 부처님 방법을 터득한 경우랍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최근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스리랑카 수행 방법과 제가 터득한 방법을 비교해 보니까 한 가지만 빼고는 완전히 일치했다는 것인데요.
그 한 가지도 스리랑카 스님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었답니다.
부처님이 고대에 전수했다는 스리랑카 수행법도 기회를 봐서 이번에 설명을 드릴 것인데요.
아무튼 오늘은 간화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신기했던 것은 대념처경에 나오는 사성제를 3년 정도 터득하고 나니까 모든 수행 방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수행에 관한 법문을 들어보면 무엇이 빠져있고 무엇이 잘 못 들어가 있는지가 훤히 보이는 겁니다?
오늘 설명할 간화선도 물론 오정관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 자신에게 놀랐답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2016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갈리는 경우인데요.
그러나 이때에는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제가 무슨 스님도 아니고요.
그러나 남쪽과 북쪽과 중간을 만나보고 대실망을 한 후 그때부터 나서기 시작한 것인데요?
저라고 왜 제가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저 같이 건방진 소리를 하는 스님들이 한국 불교에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불교 큰 스님들은 해도 해도 너무하답니다.
아니? 최소한 젊은 사람들을 출가를 시켰으면 4대보험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튼 제 경우는 그 당시에 육성으로 남아 있는 큰 어른들의 법문들은 거의 다 찾아서 들어보았다고 자신하고 있는데요.
간화선만 예로 들면 제 경우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 북쪽의 어느 어른 법문과 그분의 스승 법문까지 죄다 찾아서 들어보았답니다.
그 이유는 이분들이 간화선에는 최고로 큰 스승들이라고 해서 저도 듣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진실)
그런데 듣다 보니까 이상한 겁니다?
왜냐하면 화두만 여법히 들라고만 했지 뒤에 내용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분 말씀은 화두를 여법히 들어 의단이 맺히면 그 의단을 타파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의단과 타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본인이 의단이 맺혔으면 그 느낌이나 그 느낌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어떻게 관리를 하고 어떻게 타파를 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들도 배우지요?
그런데 이분 말씀은 화두를 여법히 들면 의문(의단)이 앞뒤로 꽉 막히게 되는 데까지만 이야기를 하시고 타파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어떤 구체적인 말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화두 타파 부분인데요?
여러분들도 궁금하시면 불교 방송 라디오 [다시 듣기]에 있으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분의 스승 되시는 분의 법문은 녹음테이프가 유튜브에 나와 있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다른 스님들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간화선의 최고 어른도 여기까지만 법문을 하고 있는데 괜히 물었다가 어색해지기 싫어서인데요.
그럴 수 있잖아요?
그전에도 별의별 스님들이 저의 글을 보고 욕을 해대는 판이데 괜히 질문을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게요?
그래서 한동안은 간화선에 대해서는 글을 올리지 않다가 2년 전부터 인가? 조견오온 이야기를 올리면서 나중에 간화선 이야기도 올리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 이유는 저도 조심성이 많이 갔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스님도 아니고 어디서 이상한 놈이 갑자기 하나 나타나서 한국 불교에 최고 어른들을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뭐 해서랍니다.
그것도 간화선의 대가라고 하는 분들을 상대로 말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몇 년 동안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다가 갑자기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이 궁금한 겁니다?(2019년 경)
그런데 2019년 경에 집 근처에 있는 한 공원에서 남방 불교 스님 옷차림을 한 젊은 스님이 산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잘 됐다 싶어서 이 스님과 친하게 된 것인데요?
지금은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 년도 안 돼서 저를 멀리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아무튼 그 당시에 이 젊은 스님에게 처음으로 남방불교 수행과 남방 불교 스님들 문화를 많이 듣게 된 것인데요.
그러다가 제가 자꾸 "부처님 수행법" "부처님 수행법" 하니까?
[대념처경]에 다 나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저는 [대념처경]에 푹 빠져서 지냈던 것인데요.(2019~2023년 경까지)
이때는 정말이지 절이고 선원이고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대념처경]만 따라 하면서 익히고 또 익혔었답니다.
3년 반 정도는 완전히 대념처경 내용에만 집중해서 보고 따라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처음에는 알아차림을 하기가 참 힘들었답니다?
분명히 부처님 말씀은 알아차림을 확립시켜야만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잘 안되는 겁니다?
현재 이 순간에 알아차림을 하려고 하면 의식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가고?
마음에 것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알아차리려고 하면 자꾸 의식이 다른 곳으로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환장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의식이 다른 곳으로 가면 다시 돌려놓고 또 다른 곳으로 가면 또 돌려놓고 하기를 1년 정도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했었답니다.(진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말입니다?
이렇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지금은 완전 자동으로 된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75~85% 정도를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러면서 느낀 점은 저도 쑥쑥 성장하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런데 제가 대념처경을 따라 하면서 또 느낀 점은 부처님이 왜 조견오온을 하라고 했고 왜 알아차림을 하라고 했는지 등을 1년 정도 열심히 따라 해보니까 왜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이 알아차림 속에서 자동으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지금은 완전히 확립된 경우이고요.
그런데 더 신기했던 것은 사성제를 터득하고 나니까 모든 수행 방법들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어떤 수행 방법들은 [고집멸도]로 하는 수행도 있었고
또 어떤 수행 방법들은 [고→멸]로 곧바로 가는 수행 방법도 있었고
또 어떤 수행 방법들은 [집→멸]로 가는 수행 방법도 있었답니다.
나중에 하겠지만 예수님 방법은 [고→멸] 또는 [집→멸]로 자유자재로 곧바로 가는 수도 방법이었답니다.
그리고 간화선은 [고집멸도] 수행 방법 그대로였답니다.
고 = 화두알아차림
집 = 의단
멸 = 화두 타파
고 = 동일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린 북쪽에 큰 스님은?
(고)에 해당하는 화두 알아차림만 설명하고?
집 = 의단
멸 = 화두 타파
고 = 동일
내용들은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말은 이분들이 실제로 의단을 거쳐서 타파를 했다면 그 느낌이나 과정 등을 설명을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겁니다?
선문답 같은 것이야 (공)과 (무)에 대한 흐름 만 자세히 알려주면 누구나 잘 할 수가 있는 것인데요.
저도 선문답은 최고 어른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답을 못한 경우는 없는데요.
오히려 큰스님들이 거시기 했지요?
제 경우는 선문답은 한국 스님들은 안 했으면 하는데요?
왜냐하면 한국 스님들은 선문답을 할 마음 그릇들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질퍽거리면서 대들기 때문인데요.
큰 어른 들도 한두 분만 빼고는 그랬었고요.
그런데 중국 스님들은 달랐답니다.
제 경우는 중국어가 조금 되는 경우라 홍콩 쪽 스님이나 대만 쪽 스님들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선문답이나 법담 등을 많이 나누어 보았고 지금도 서신을 주고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분들은 처음에는 말문이 막히면 화를 내다가도
제가 "看看现在你的心?(지금 너의 마음을 봐라?)"
하면 바로 알아듣고 (👍🏻)이 올라오는데요.
그런데 한국 스님들은 끝까지 화를 내면서 질퍽거린답니다.(진실)
그래서 선문답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요.
괜히 서로 이런 문제로 등을 돌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모르고 했었지만 지금은 제가 선문답을 피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불법이나 성경 속 내용들은 마음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몇 마디의 말과 글로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고요?
말 같은 소리를 하셔야지요?
물론 본래 마음을 깨달으면 선문답 같은 것은 그냥 눈에 들어온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 한 사람들도 그 흐름만 파악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내가 속았다" 하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선문답 같은 것으로 깨달은 척 속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깨닫고 못 깨닫고의 기준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이나 글이 아니고요?
그 마음의 기준점들이 도성제 안에 있는 팔정도라는 것이고요?
팔정도의 기준으로 보면 북쪽이고 남쪽이고 중간이고 이분들은 모두가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승이라는 분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제아무리 선문답을 잘 하고 법문을 잘 하면 뭐 하겠습니까?
마음은 쓰레기통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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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앞으로는 간화선을 이렇게 해보십시오?
화두를 스승에게 받았을 때 또는 본인이 화두를 골랐을 때 지금처럼 화두를 여법하게(이치에 합당하게) 드는 것은 맞답니다.
그리고 화두를 분석하거나 해석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화두의 뜻을 알고 간화선을 하면 화두로서의 역할은 끝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간화선은 화두를 푸는 것이 목적이 아니랍니다.
제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어떤 스님들은 화두 타파를 설명하면서 화두를 푸는 것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또 어떤 유명한 스님은 "화두를 묻고 묻고 또 물어서 그 몰입력으로 "툭~" 튀어나온다"라고 법문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또 어떤 아주 유명한 큰 스님은 화두를 뚫는 것이라고 법문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그리고 어떤 스님은 화두는 어떤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법문을 하시는 스님들도 계셨는데요?
이런 분들은 모두가 본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같은 내용을 놓고도 스님들마다 다 다르게 법문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참으로 웃기는 한국 불교 아닙니까?
왜냐하면 어느 종단이든 누가 통제를 하는 스님들도 없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화두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포함해 모든 경전들은 본래 마음 이야기라는 것인데요.
문제는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흐름만 파악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선문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간화선으로 할 때에는 절대로 화두를 풀려고 하지 말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화두만 관(觀) 하셔야만 한답니다.
여기서 관(觀)은 알아차림을 뜻하는 것이고요.
화두를 알아차리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만 뒤에 것들도 할 수가 있답니다.
모든 수행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고요.
내가 나를 못 알아차리는데 무슨 수행을 하겠습니까?
지금 이름난 큰 스님들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알아차리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만] 이란 부처님이 강조하신 [알아차림의 확립]이랍니다.
그래서 어느 수행 방법으로 하시든 알아차리는 연습이 안 되어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수행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알아차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화두 알아차림을 할 때에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도 같이 알아차려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간화선의 최대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답니다.
모든 수행은 [몸(오온)과 마음]에서 일어나 줘야 소멸을 하든 말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간화선이 왜 좋은 수행 방법이냐 하면 앉은 자리에서 (고집멸도)를 한꺼번에 다 싸잡아서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수행자들은 최고 어른들부터가 이것을 모르고 있답니다.
처음에 좌선을 하고 화두만 들면 오만가지의 번뇌와 망상들이 들끓는 것이 간화선의 최고 장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에서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데 무슨 수행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수행 대상이 있어야 수행을 하지요?
그런데 지금 수행자들은 좌선을 통해 [내 몸(오온)과 마음] 적응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적응이 매우 빠른 동물이기 때문에 처음에 좌선을 할 때에는 힘이 들지만 좌선에 적응을 하게 되면 [몸(오온)도 마음]도 평온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몸이 적응을 해서 편한 것이지 선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무기공)
이런 것을 지금 큰 스님들은 깨닫고 증득을 했다고 착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이 내용은 사오정(沙悟淨)이라는 이름 안에 아주 자세히 들어있답니다.
사오정도 좌선을 하고 앉아 있을 때에는 깨달은 손오공과 붙어도 조금도 밀리지를 않는답니다.
어쩔 때에는 손오공을 도와줄 때도 있고요.
그런데 좌선에서 나오면 중생을 뜻하는 돼지 저팔계가 조금만 꼬셔도 홀라당 넘어가서 손발이 묶이고 그물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오정(沙悟淨)의 뜻이 모래(沙) 위에서 깨달음(悟)과 선정(淨)을 구하고 있다고 하는 거랍니다.
지금 어른들도 좌선만 풀면 천도재다 명패 봉안이다 친견비다 뭐다 해서 사오정처럼 중생들에게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마조도 좌선만 하고 앉아 있으니까 스승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고요.
백날을 좌선을 하고 앉아 있어봐야 말짱 꽝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2시간을 앉아 있었네? 4시간을 앉아 있었네 하면서 말이지요?
어떻게 앉아 있는 시간을 놓고 수행을 잘 하네 못하네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앉은뱅이는 수행에 도가 텄겠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은 화두를 들었을 때 [몸(오온)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있을 때가 찬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좌선으로 적응을 시켜서 뭉개지 마시고요?
왜냐하면 [몸(오온)과 마음]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손가락(화두)과 달(마음) 이야기도 하는 것이고 마차의 말(마음)과 수뢰(화두) 이야기도 했던 거랍니다.
아무리 수뢰(화두)를 때린다고 말(마음)이 가겠습니까?
말을 때려야 수뢰가 가지요?
그래서 화두를 통해 [몸(오온)과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이것이 고성제)
이렇게 화두의 의심을 보고 있으면 자동으로 [몸(오온)과 마음]은 의심 덩어리로 뭉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집성제)
그런데 북쪽에 그 스님은 화두를 여법히 관하면 마음이 꼼짝 달싹 못하게 앞뒤가 꽉 막힌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꼼짝 달싹 못하게 앞뒤가 꽉 막힐 수도 없을뿐더러 그 어떤 것도 물이 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혀 마음자리를 모르다 보니까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아니라 몸(오온)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경허스님 내용에도 아주 자세히 비유로 나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는 우리들 [몸(오온)과 마음]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그중에서도 몸(오온)을 뜻하는 것이고요.
제가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깨닫기 전에는 마음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라는 동물은 코로 숨을 쉬는데 코에 구멍이 없으면 소의 [몸(오온)과 마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을 맛이 아니겠습니까?
당시에 경허스님의 마음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사미거마사도래)라는 화두에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꼼짝 달싹을 못했을 것 아니겠어요?
깨닫기 전에 사람들은 마음이 그런 줄 알고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혜가처럼 마음이 아파요? 괴로워요?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본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몸(오온)이 잠깐 그러다가 말겠지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몸(오온)이라는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몸(오온)이 공하면 모든 것이 공하다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경허스님 같은 경우는 이때는 경허스님도 깨닫기 전이라 화두만 들고 있다 보니까 의심이 앞과 뒤로 꽉 막힌 상태에서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를 하니까 거기서 힌트를 얻고 크게 깨달은 것인데요?
어린아이에게 무슨 힌트를 얻었느냐 하면 콧구멍 없는 소가 당시 경허스님이 처해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콧구멍 없는 소처럼 경허스님 자신도 화두 의심으로 앞뒤가 꽉 막혀서 [몸(오온)과 마음]이 꼼짝 달싹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소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경허스님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겁니다?
그 콧구멍 없는 소를 쳐서 죽이던지? 아니면 소를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두를 버리던지 아니면 죽이든지 해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왜냐하면 콧구멍 없는 소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경허 자신만 죽을 판인데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경허스님도 지금은 깨닫기 전이라 [몸(오온)과 마음]을 구분을 못하고 있을 때라 헤매고 있던 차에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를 들었으니 귀가 번쩍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콧구멍 없는 소(화두)를 들고 있어봐야 자기만 죽을 판인데요?
그런데 그 의단이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콧구멍 없는 소처럼 그 답답한 마음이든, 몸이든 그것이 어디에서 왔겠느냐 이겁니다?
화두 아닙니까?
화두 의심으로 의단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러면 뭐를 내려놓고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허 스님도 지금은 아직 깨닫기 전이라 흑지범지나 주리반다가 처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든?
아니면 몸(오온)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죽이든?
아니면 화두를 내려놓고 버리든 해야 그 소가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계속해서 화두를 들고 있으면 들고 있을수록 자기만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니까요?
경허스님도 당시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화두라는 것은 의단이 깊어졌으면 이미 화두가 할 일들은 끝난 것인데 바보처럼 계속해서 손가락이라는 화두만 보고 앉아 있으니 화투타파가 어떻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 수행자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고요?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라 뜻은?
말(馬)은 이미 와 있는데 앞에 있는 나귀라는 똥차가 빨리 빠져나가 줘야 뒤에 있는 말이 갈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마차의 수뢰를 뜻하는 화두를 때려봐야 뭐 하겠느냐 이겁니다?
[몸과 마음]을 뜻하는 마음은 그대로 서 있는데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미 화두를 통해서 [몸과 마음]은 이미 도래(到來)를 해서 폭발 직전에 있는데 바보 같은 지금 수행자들은 화두가 무슨 신줏단지나 되는양?
버리지를 못하고 모시고 앉아 있으니 언제 타파를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혹시 타파(打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아시나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타파(打破)하라!
타파(打破)하자!
같은 말이요?
타파(打破)라는 어원은 "구 시대 것을 깨뜨려서 버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쉽게 말해 "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화두타파란 화두를 버리리라는 뜻입니다.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dict.naver.com/dict.search?query=%ED%83%80%ED%8C%8C%ED%95%98%EB%8B%A4&from=t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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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화두타파(話頭打破)라는 글자 안에는 화두를 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린다"라는 어원은 강조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화두를 통해 의단이 생겼으면 화두를 들고 있지만 말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원리는 이렇답니다?
저는 간화선이 기가 막힌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요?
앞에 설명드렸던 (오정관)도 마찬가지의 원리랍니다.
비유가 좀 거시기 합니다만?
저는 간화선 그러면 좌변기가 생각나는데요.
좌변기 통을 [몸과 마음]으로 비유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간화는 변기 안에 싼 똥으로 비유해 보는 겁니다?
우리들 마음에 응어리가 쌓여 있는 모양을 좌변기 안에 싼 똥으로 비유해 본다는 뜻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본 원리는 이렇습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멸성제에 해당하는 마음의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기인데요?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마음의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변기 안에 물은 없고 똥만 있으면 그 똥이 제대로 내려가겠습니까?
어렵잖아요?
그러나 물과 함께 내리면 잘 내려가잖아요?
그런데 그 물이 힘까지 좋은 겁니다?
화두가 힘까지 좋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좌변기 안에 똥은 얼마나 시원하게 잘 내려가겠습니까?
그런 원리랍니다.
느낌이 오시나요?
화두라는 물과 함께 마음의 겉들을 같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기 안에 똥이 뭉쳐 있으면 얼마나 시원하게 내려가겠어요?
그런 느낌으로 하는 겁니다.
경허 스님도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를 듣고 그랬다는 것이고요.
경허스님은 당시에 똥이 한가득 뭉쳐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화선으로 수행하시는 분들은 지금 이 내용이 확 느낌이 오셨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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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안에 똥을 싼 것이 없으면 즉 마음이나 몸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고 일어남이 없으면 무엇을 버릴 것이 있겠습니까?
쉽게 말해 내 몸과 마음에 똥과 같은 응어리가 없으면 내려놓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간화선이 좋은 수행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화두만 들고 좌선만 하면 별의별 것들이 마구마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 주니까 얼마나 수행하기가 좋겠습니까?
쉽게 말해 처음 좌선을 하고 화두를 들면 [몸과 마음]에서 별의별 것들이 다 일어나잖아요?
이것이 [사성제]로 하면 (고성제)라는 것이고 싼 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괴로움과 고통을 주고 있는 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의단이 된다는 것이고요.
이것이 [사성제]로 하면 모여서 자리 잡고 있는다는 뜻에서 모일 집(集) 자를 써서 (집성제)라 하는 것이고요.
좌변기로 비유하면 좌변기라는 [마음이나 몸] 안에 많은 똥들이 자리 잡고 모여서 뭉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변기 물을 화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물과 함께 똥을 밀어내면 훨씬 더 잘 내려가잖아요?(※ 화두 타파의 핵심)
쉽게 말해 마음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싼 똥을 억지로 밀어내려고 하면 쓸려내려가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쉽게 말해 좌변기 안에 물이 없으면 싼 똥이 잘 내려가겠느냐 이겁니다?
마음속에 있는 메마른 똥을 어떻게 쉽게 내려가게 할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화두라는 물과 함께 쌓인 똥을 내리면 훨씬 더 잘 내려가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려면 화두에 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매가리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속에 있는 바짝 메마른 똥들을 밀어낼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화두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 간화를 확립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화두 알아차림을 확립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오랫동안 마음에서 메말라 비틀어진 똥들을 쉽게 밖으로 밀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모여 있는 것들을 타파하라고 하는 것이 화두 타파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소멸을 뜻하는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간화선의 묘미는 굳이 [몸과 마음]을 내려놓지 않더라도 들고 있는 화두를 버리기만 해도 마치 좌변기에 물처럼 똥들을 같이 쓸려내려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간화선 멸성제 즉 화두 타파의 핵심)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해 보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간화선은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승에게 처음 화두를 받아 앉기만 하면 수많은 똥들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서 쌓이고 쌓여서 모여주니 얼마나 편하게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조견오온(위파사나) 같은 경우는 무슨 일이 있어야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간화선은 화두만 들고 앉아 있으면 자동으로 똥들이 모여주니 처리하기가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도성제는 더 좋답니다?
저도 이뭣고 화두와 무자 화두로 선정에 들고는 있지만 "이뭣고..?" 하면서 또는 "무..?" 하면서 화두를 들고 마음속으로 파고들면 마치 압축기로 누르듯이 힘이 엄청 좋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한 분들은 수행하기가 엄청 편해짐, 왜냐하면 화두의 힘을 느끼고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뭣고?" 화두 같은 경우는 저는 양날의 칼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뭣고?"라는 어원 안에는 예를 들면 귀한 손주 새끼를 처음 보았을 때..
"아이고 이뭣고?😁"
하는 어원이 있는가 반면
반대로 더러운 것을 보거나 재수 없는 것이 왔을 때에는 밖으로 매몰차게 내치듯이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내면서?
"이뭣고!"
하면서 밖으로 내치는 어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원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잘 활용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마음에 무언가 들어오려고 하거나 이미 들어왔을 때에 화를 내는 기분으로?
"이뭣고!"
하면서 밖으로 내 쫓을 수도 있고
반대로 편한 마음이나 고요한 마음이나 좋은 마음 등이 들어올 때에는?
"아이고 이뭣고?😁"
하면서 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화선의 화두는 어느 수행 방법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답니다.
예를 들면?
[조견오온]을 하든 [수식관]을 하든 이뭣고나 무자 화두를 같이 섞어서 해보십시오?
그러면 힘이 엄정 좋아진답니다.
아이고? 아직도 해줄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벌써 지면을 많이 써버렸네요?
나머지 이야기는 뒤에 해보겠습니다.
제가 말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저도 그만큼 간화선을 많이 써먹고 있다는 증거인데요.
문제는 아무리 무기가 좋으면 뭐 하겠습니까?
그 좋은 무기를 다룰 줄 모르면 말짱 "꽝"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한국 수행자들은 의단까지는 많이들 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 의단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고 보고 있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화두를 몇십 년씩 들고 있는데 의단이 없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요???
(끝🤗)
♡ㅡ♡
그러면 오늘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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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74) ]
20261026
칠십네 번째 이야기
♡ㅡ♡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이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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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의 가르침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上慈庵居士書
天藏庵好一面山一面海然雖如是非但翫景者不到處通人達士亦不交涉非但通人達士不交涉佛也祖也猶較些子苦哉苦哉是豈可言處所聞道候以病此廼修行人降伏魔軍處也驚覺精神處也遊戱幻境處也何足以憂之喜之哉況病從心生心如陽焰者乎鏡虛飢則言飢寒則言寒餘外睡而已了無修行相狀而幸有二三禪侶共唱和山歌野曲幸何可盡達又聞有垂訪之意思何待明年冬候寒嚴往來難通則幸當風日熙和時不忘好因緣乎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자암거사(慈庵居士)에게 보내는 글
천장암이 좋다고 함은 한쪽은 산이요 한쪽은 바다라 비록 그러하나 경치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만 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통인달사(通人達士)도 교섭을 할 수가 없다. 통인달사들만 교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처와 조사도 오히려 그러하다. 괴롭고 괴롭도다. 이곳을 어찌 가히 말할 수 있으랴.
듣자니 도체후 병으로 매우 고생을 한다 하니 이것이 바로 수행하는 이가 마구니를 항복받는 곳이며 정신 차려서 정진하는 곳 이며 헛된 경계에 유희하는 곳이니 무엇을 족히 근심하고 기뻐하리오. 하물며 병이란 마음으로부터 나는 것인데 마음이란 저 아지랑이 같은 것이다.
이 경허(鏡虛)는 배고프면 배고프다 하고 추우면 춥다 하고 그 밖에는 잠이나 잘 따름이로다.
수행하는 모양은 도무지 없고 다행히 두세 명의 도반이 있어 산가(山歌)ㆍ야곡(野曲)을 함께 부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또한 듣자니 방문할 의사가 있는 것 같은데 어찌 내년까지 기다리랴마는 겨울 날씨가 몹시 추워서 내왕하기가 어려울테니 날씨가 화창할 때를 기다려서 좋은 인연을 잊지 않도록 하소.
♡ㅡ♡
(2) 예수님의 가르침
제목 : 도마복음 제38장
(아래 하단 숫자 :20:28754:36)
https://m.youtube.com/watch?v=8fLKlrmCvGI&pp=iggCQA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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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러 번 너희는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고 있는 이 말들을 듣기를 갈구하였도다. 그리고 너희는 이 말들을 나 이외에 어느 누구로부터도 들을 수 없도다.
2. 너희가 나를 구하고자 하나 나를 발견치 못하는 그런 날들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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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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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
오늘 경허집 내용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자암거사(慈庵居士)라는 분이 천장암에 오려고 하니까 지금은 날씨도 춥고 수행하는 도반들도 두세 명 박에 없으니 수행하기에는 좋겠으나 날씨가 추워서 병에 걸린 사람도 있으니 날이 풀리면 그때 오라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ㅡ♡
그러면 오늘도 예수님 가르침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도마복음 제38장 내용인데요?
★
[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러 번 너희는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고 있는 이 말들을 듣기를 갈구하였도다. 그리고 너희는 이 말들을 나 이외에 어느 누구로부터도 들을 수 없도다.]
(해석: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서 말하는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고 있는 이 말들"
이란 도마복음 1장부터 지금까지의 말들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중동이나 로마제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들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
[2. 너희가 나를 구하고자 하나 나를 발견치 못하는 그런 날들이 있으리라."]
라는 뜻은?
(해석: 이런 내용들을 너희는 구하고자 하나 구하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고요.
쉽게 말해 성령을 깨닫고 영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쪽도 마찬가지시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셔서 성불이든 성령이든 꼭 증득하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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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가을 태풍이 온다고 하네요?
큰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집안 단속, 몸단속, 마음 단속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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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_()_
감사합니다 스님..😁🙏🏻
가을 태풍이 온다고 하네요?
큰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집안 단속, 몸단속, 마음 단속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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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가을 태풍이 온다고 하네요?
큰 염려는 없겠지만 그래도 집안 단속, 몸단속, 마음 단속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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