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생 이후의 세대부터는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배운 것도, 내가 이룬 경제도,
내가 누리는 환경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부모가 나를 키웠지만,
부모 역시 사회가 만들어 준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공부할 수 있었던 학교도 사회가 만들었고,
내가 일할 수 있었던 직장과 경제의 기반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 자식을 공부시켰다고 해서
그 경제가 아버지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었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으며,
그 시장을 만들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사회에 닿는다.
그렇다면 자식을 가르치는 목적도 달라져야 한다.
너의 자식만 잘살게 하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자식만을 위한다는 생각에 갇히면 결국 가족만 바라보게 된다.
내 자식, 내 재산, 내 집, 내 성공만 지키려고 하면
사회와 멀어지고,
결국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반대로 내가 받은 것이 사회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바르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소유의 공부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어진 것은 바르게 쓰고,
성장하는 데 사용하고,
역할을 다했으면 내려놓는 것이다.
돈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다.
권한도 그렇고 자리도 그렇다.
내가 가진 지식이 필요할 때는 사람을 위해 쓰고,
내가 가진 경제가 필요할 때는 사회를 위해 쓰고,
내가 가진 자리가 필요할 때는
다음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내가 쓰고 난 것은 다음 사람에게 두고 가는 것이다.
쓰고 나면 두고 가라.
이것이 공인의 공부다.
공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나 혼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면
자식은 부모에게만 갚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키우고,
다음 세대가 또 그다음 세대가 살아갈 길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이어지면 희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시대의 자산이 된다.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후손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움켜쥐면 작아지고,
사회에 바르게 쓰면 다시 돌아온다.
내가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하여
성장한 뒤에는 그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떠나는 것.
이것이 무소유의 공부이고,
이것이 공인으로 살아가는 공부다.
자식을 가르치는 마지막 목적은
잘살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는 데 있다.
내 자식만 위하면 가족도 결국 어려워진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이 사회를 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곳마다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받은 것은 성장의 재료이고,
사용한 것은 사회의 자산이며,
두고 가는 것은 다음 세대의 길이다.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고,
세대가 세대를 이어주는 것이
사회의 발전이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8월11일 사회 연구원 김수길
나라가 어려운것은
사회 부모님들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융합해서 새로움이 만들어진다.
영웅소설이 아니라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는 사회가 된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