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가. 그럴수도 있다. 뭔가 조금, 혹은 많이 뒤틀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것 부터. 착한 사람이 더 많은게 사실인데도 그 착함에 대해서까지 의혹의 눈으로 본다. 악한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는 "그럼 그렇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일탈을 꿈꾸지 않던가. 억눌려 사는 무능한 사람들이 특히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령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아무것도 되는게 없는, 되어지는 일이라고는 없는, 말이 좋아 무탈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사실은 무탈이 아니라 막막하고 숨막히는, 질식 직전에 가있는 그런 상황에서 판타지에 나오는 일탈을 맹목처럼 바라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종착점을 바라는 것도 그래서다. 아침에도 일어나는게 싫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나를 이르켜 새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안일어나면 어쩔건데? 얼마를 버틸수 있는데?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임이 따르게 되는것을! 지난해 이맘때보다 2K가 더 늘었다. 더 많이 먹었다는 증거겠고, 더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증거겠다. 덜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로 맛있다는 생각을 안하면서도 식사를 챙기면서 보면 양이 너무 많곤해서 스스로도 웃는다. 작년 이맘때엔 감기를 두차래나 앓은 중이었다. 입이 쓰고, 걷는것도 힘들었다. 지금은 코로나 이전 상태로 회복되었다. 따라서 체중도 그랬다. 어디에서 왔는지 힘도 느껴진다. 처음엔 회귀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내가 돌아갈 증좌일까. 더러는 자기가 갈때를 알기도 한다고 한다. 영이 맑은 사람이 그렇다나. 나는 영이 맑은 사람이 아니니 바라지 않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속히 왔으면 하는 바람은 갖어도 되지않을련지,,,. 다 피곤하고 다 쇠락했다. 유지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바라보건데 희망적인게 없다. 손주들 일상이 안타가운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도움이 되는것도 아니다. 집없는 아들을 위해서도 내가 속히 가는게 더 낫지않을가도 싶다. 현제도 짐이 되고있는거니까. 노인들, 노인들. 자신의 몸하나 가누지 못하고 짐이되고 있는 인생들, 주님, 이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살피소서. 주님만이 구원이 되심입니다!
오늘날엔 어디까지가 친인척일까. 손위 시누이님이 손주 결혼식을 알려왔다. "얼굴이나 보게 오소. 그때 입었던 한복 예쁘게 차려입고 와" 하셨다. 카톡을 열심히 보내주셔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시댁 인척인것은 맞다. 얼굴 본지는 얼마나 됬을까. 확실한것은 우리집엘 단 한번도 온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생존했던 시절을 더듬어 생각해봐도 그렇다. 내 존제가 언제나 그랬다. 가령 가까히 해봐도 아무련 이득이 없는 허접한 존제말이다. 내가 아래사람이니까, 내가 다가가고 살펴는게 먼저일수도 있겠지만,,, 내 잘못이 더 큰가. " 오나가나 치이는게 나이먹은 사람들인데요. 아이들이나 가겠지요."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바로 전날 00형님이 전화로 "지팡일짚고 가야할지"하셨던게 생각났다. 차려입고 외출할 기회마저 없게된 분이다. 한때는 나도 그분의 많은 옷들을 탐했었고, 몇벌인가 나누어 주신적도 있는데,,, 아직도 요긴하게 입고있는 옷도 있고, 장농속에서 잠자고 있는 옷도 있지만, 우리형님은 그 많은옷들 어떻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미 90을 바라보고 있으니 거동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 옷이 무슨 소용인가 싶고. 우리형님 참 멋쟁이 셨는데, 세월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나보다. 비켜갈 생각도 없나보다. 애증이 엇갈린 그분들과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갈날이 남았을 뿐이다. 떠나기전에 얼굴한번 보는 것도? 아니, 전혀 생각없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00형님마저도 뵌지가 오래다. 내가 찾아다닐만끔 여유롭지가 않아서다. 오늘 하루, 나는 꼭 그만끔만 살고있다. 지경을 넓힌다는게 내 일은 아닌듯 하다. 가만, 오늘이 몇요일이지? 머리속이 엇칠엇칠하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 요양원 갈일뿐이니까. 주님, 도와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