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서 무시로 소식을 전하는 SNS모임에 연설을 한다는 소식이 올라왔을 때 누군가는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네,라고 운을 뗀 뒤 그 별짓에 함께합니다,라고 했고 두 남자를 보기 위해 멀리서 일부러 왔습니다. 작년 말에 처음 말이 나왔을 때 사람들 중 몇은 그게 가능해,라거나 나이 먹고 우리말 외우기도 힘든데, 따위의 말로 다소 회의적이기도 했지만, 재밌을 거 같은데,라거나 그러면서 한판 노는 거지 뭐,라며 기대하는 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겨울을 건넌 시간은 해를 지나 이듬해 3월에 도착했고, 리허설까지 마친 연설회장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닳고 헤지고 찢어진 연설 원고는 마지막 시간을 위해 다소곳이 테이블 위에 놓였습니다. 연설을 하기로 했던 3월 1일, 삼일절에 시간은 돌연 다시 겨울로 가는지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서 밭둑에 핀 매화를 흔들었고, 기온은 급강하해서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연설회장으로 모였습니다. 시간이 되자 피아노가 길을 열었고, 조명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숨죽이며 기다렸습니다.
I'm happy to join with you today.
낯선 땅에서 낯모르는 사람들을 울리던 이국의 목소리가 60여 년을 떠돌아서 오늘 여기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던 우리에게로 조심스레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봄을 시샘하는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매화 이파리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지난 겨우내 농사일에 종종거릴 때에도 이제는 침침해진 눈의 초점을 맞춰가며 그날의 목소리를 상기하며 읽었고 외웠던 원고가 한 장 한 장 넘어갔습니다. 흐름을 놓쳐서 잠깐 정적이 흐를 때 사람들은 박수로 응원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그는 다시 힘을 내 기억을 살피며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Now is the time.
We cannot walk alone.
이제 연설은 또 다른 그를 불러냈습니다. 혼자라면 하지 못 할 일을 벗이 있어서, 벗이 함께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벗은 벗의 방식으로 서로 짐을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60여 년을 떠돌던 목소리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일터에서, 길을 걸으면서, 집에서 원고에 집중하느라 곁에 있는 사람이 귀마개를 해야 했지만, 한 쪽 한 쪽을 넘기며 마지막 절규를 기약했었습니다.
I have a dream.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거나 빨라지거나, 낮아지거나 높아지며 사람들 사이를 유영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나라 말을 몰랐습니다. 더욱이 두 사람의 단어는 거칠고 문장은 두루뭉수리했지만, 사람들은 모르던 남의 나라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말로 되어지는 것은 한정적이고 말로 되어지지 않는 것은 무한했습니다. 사람들은 숨죽이며 무한의 세계 속에서 두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그것이 단지 재밌잖아요,라든가 외우는 게 치매 예방에 좋다잖아요, 우리도 이제 준비해야죠,와 같은 시답잖은 시작이었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는 잊어버리고 60여 년을 돌아서 찾아온 그의 외침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은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그렸으며, 사람들에게 찾아온 60여 년 전 목소리를 지그시 맞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뿜어내는 열정과 거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마지막 절규를 토했습니다.
We are free at last!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붓다는 말했습니다. <무소의 뿔의 경>에 따른 이 말의 본래 구절은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복을 기린다. 휼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 없음을 즐기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라고 합니다. 붓다는 좋은 친구를 선우善友라고 하면서 이는 도반이자 스승이며 또한 이는 좋은 법, 좋은 후배와 더불어 도를 수행하는 전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은 결국 <좋은 벗과 함께 가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라고 고미숙 선생은 <청년 붓다>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벗이야말로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 오늘 사람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가는 좋은 친구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피아노가 멈추고, 조명이 꺼지고 사위가 밝아지자 사람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했습니다. 사람들은 환한 불빛 아래에서 비로소 서로 인사하고 격려했습니다. 배움터에 볼일이 있어서 들른 사람들, 아이와 함께 면담을 하러 온 사람들, 연설회를 모르고 그냥 들렀던 사람들, 여러 사람이 예기치 않게 두 사람의 연설을 들었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공양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고 인사를 했고 노래했습니다. 밤이 늦도록 공양간이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