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말이 안 통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저 사람은 싸가지가 없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왜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
상대를 이해시킬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해란 무엇인가.
다른 것을 풀어서 알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보고 들은 지식도 다르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서로 다른 것이 보인다.
형제자매도 혈육으로 만났지만
사회에 나가면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같은 집에서 태어났어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이유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업종이 울리면
선생님을 맞이하며 인사를 배웠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그것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자세였다.
자식이 사회로 나간다는 것은
지금부터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공부하러 간다는 뜻이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멀어진다.
상대를 무시하면 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없다.
반대로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오며 배운 것을 나누어준다.
이해는
내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바라보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갈 때 비로소 이해가 시작된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고집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환경만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상대를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라고 판단하기보다,
“왜 저 사람은 저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까?”
그 원리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런 순간들이 다가올때
나의 습관과 나의 환경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남을 이해하는 일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순을 찾으면 이해는 스스로 이루어진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 생각 속에서 모순을 하나 발견하는 순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순을 하나씩
내려놓을수록
삶은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이해는
배워서 가지는 답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모순을 발견할 때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먼저 나의 모순부터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길이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8월 16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바둑 격언중에
아생연후에 살타라는 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나로부터 시작이 된다.
자신이 바르게 서면 세상도 바르게 다가온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