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재골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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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두 살 새마을 시국의 막바지,
체육관 대통령 뽑는 간접선거 오픈 게임 통일주체 대의원 투표 날이 맞을 것 같다 마감 30분 전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이장님 소매 끝 당기며 왈 ‘내가 찍어줬어’ 투표 협조 고백으로 빙긋빙긋 웃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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